[단독] 아무도 안오나... 긴박했던 의·정 첫 대화 [오늘의 정책 이슈]

정재영 2024. 3. 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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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모르는 전공의 5명 ‘왜 2000명이냐’ 부터 물어

서로 모르던 전공의 5명, ‘왜 2000명인지’부터 물었다.

정부가 의대 증원 2000명 방침에 반발해 집단이탈한 전공의들에게 제시한 복귀시한이 하루 지난 1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등 13명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공시송달하면서 의·정간 긴장감이 고조된 가운데 전날 의·정간 첫 대화에 나선 전공의들은 ‘증원 규모가 왜 2000명인지’부터 따져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건강보험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에서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과의 면담을 마친 전공의로 추정되는 참석자가 관계자들과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
◆‘왜 2000명인지’부터 먼저 물었다

정부가 전공의 집단이탈 이후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안과 ‘거점 국립대병원 교수 1000명 이상 증원’ 등의 방안을 내놨지만, 전공의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타협할 수 없다고 수차례 못박은 ‘증원 2000명’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2000명 증원 방침의 근거가 합리적인지 여부를 떠나, 그간 이 방침을 고수하면서 정부가 수십차례 이유를 설명한 게 전공의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에 대화를 제안한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그간 의대 정원 필요규모와 관련한 연구보고와 증원 규모 논의 과정 등 정부 방침을 상세하게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첫 대화 자리에선 건강보험 재정 문제도 소재가 됐다. 

전공의들 사이에선 의대 2000명 증원으로 인한 비용이 건보재정에서 나오는데, 증원이 현실화하면 건보료가 2배 이상 인상될 수 있다는 등의 얘기가 나왔다. 박 차관은 매년 2조원씩 5년간 10조원을 들여 내과·소아과·산부인과 등 필수 진료과 수가와 지방 병원 수가를 인상하는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외에 필요하면 추가 대책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3시간 가량 진행된 대화에서 향후 행정처분과 사법처리 등도 대화 주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건강보험공단 회의실에서 전공의들과 3시간 가량의 대화를 마친 뒤 브리핑 하고 있다. 이날 대화에 참여한 전공의는 10명 이하로 파악됐다.   공동취재
◆박 차관도 기대 안했지만...

정부가 전공의 복귀 시한으로 정한 날 대화 자리를 마련한 데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보여주기 위한 쇼’라고 평가절하했다. 약속시간인 오후 4시를 앞두고 ‘00시 현재 참석자 0명’이라는 기사도 여럿 나왔다.

실제 이 자리를 마련한 박 차관조차도 전공의들이 급박하게 마련한 대화 자리에 나타날 것을 예상못한 것 같다. 이는 한 언론사 카메라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의 핸드폰 화면이 포착되면서 알려졌다.

조 장관은 전날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시작된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안 공청회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전공의와 대화자리를 마련한 박 차관과 문자 대화를 주고 받았다. 공청회 당일 오후 2시11분 문자를 보면, 박 차관은 조 장관에게 ‘대화 노력은 기대를 많이 안 하는 게 맞는 듯합니다’라고 보냈다. 오후 4시로 약속한 대화자리에 전공의가 참석하는 데 박 차관 조차도 회의적이었던 셈이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며 의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제시한 복귀 시한 마지막 날인 지난달 29일 오후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3명은 화물 엘리베이터, 2명은 기자들 뚫고 회의장으로

정부는 당초 전공의들과 대화를 비공개로 하려 했다고 한다.

박 차관은 전날 밤 각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 94명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연락이 닿지 않아 시간과 장소를 정해 알린다”면서도 “전공의 누구라도 참여 가능하다”고 전했다. 전공의 대표들에겐 ‘일반 전공의들에게도 내용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문자 메시지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사실상 전체에 공지됐다.

오후 4시가 다가오자 여의도 건강보험공단 6층 대회의실 앞엔 기자 100명가량이 진을 쳤다. 박 차관은 회의실 건너편 화물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의장에 들어섰다. 

예상과 달리 전공의 5명이 차례로 현장에 나타났다.

화물엘리베이터 앞에 대기하던 복지부 직원은 전공의로 확인된 3명을 차례차례 올려보냈고, 나머지 2명은 기자들 천지인 6층 복도를 지나 회의실로 유유히 들어갔다. 기자들과 나이대가 비슷하고 직원들이 회의실을 수시로 드나들어 신분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 도움이 됐다. 

서로 모르는 사이로 알려진 전공의 5명은 “밖에서 사진이 많이 찍혀 걱정된다”고 했고, 3시간 대화가 끝난 뒤 복지부 직원 십수명이 우루루 회의실로 들어갔다가 전공의를 한 두 명씩 데리고 나가는 등 전공의 얼굴 노출을 피하기 위한 ‘작전’을 펼친 끝에 첫 대화 자리는 마무리됐다. 전공의들은 언론에 얼굴이 노출되는 것보다 집단행동에 나선 동료들에게 배신자로 비춰지는 것을 염려했을 것 같다.

5명의 전공의가 대화 후 병원에 제출한 사직서를 철회하겠다고 했는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번 만남이 정부 방침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의견이었다고 한다. 

정재영·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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