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문재인과 이별 감수? ‘이재명당’ 창당 선언
“지금 이 대표와 그 주변엔 응축된 분노의 감정, 비주류 정서만 가득”
(시사저널=김종일 기자)
"이재명은 지금 사실상 '이재명의 민주당' 창당 작업을 하고 있다." 내전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갈등을 유심히 지켜보던 민주당의 베테랑 당직자는 지금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의도를 이렇게 진단했다. 지금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 대표가 극심한 당내 반발과 정당 지지율 추락 등을 감수하면서까지 진행하고 있는 공천의 배경과 노림수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은데, 민주당 내부에서 흥미로운 관점이 제시된 것이다.
창당에는 세력과 대권후보, 조직 등이 핵심적으로 요구된다. 즉, 이 대표가 지금 공천 과정을 통해 '세력 재편'(민주당의 최대주주인 친문계 밀어내기)과 '대권후보 재편'(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경쟁자 몰아내기)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것이다. 특히 민주당의 오랜 비주류로서 경북 안동 출신의 1964년생 이재명 대표에게 친문·86그룹의 대표주자인 전남 장흥 출신의 1966년생 임 전 실장은 미래의 적수로 인식될 수 있다.
여기에 이 대표는 이미 '개딸'이라고 통칭되는, 민주당보다 자신에게 더 일체감을 느끼는 강성 지지층 조직을 대거 확보한 상태다. 한마디로 이 대표가 '이재명의 민주당'이라는 절대적 목표를 향해 계획된 정치적 수순을 밟고 있으며, 그에 따른 반발은 감수하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내줄 것은 내주더라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취할 것은 꼭 취하겠다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설명이다.
사실 이 대표가 임종석 전 실장 같은 상징적 인물을 사실상 '컷오프'(공천 배제)시키고 '멸문'이라는 거친 표현(홍영표 의원)이 나올 만큼 친문(親문재인)계를 대거 밀어내는 공천을 했을 때 어떤 정치적 반발과 후폭풍이 뒤따를지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현재까지 경선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는 의원 평가에서 자신이 하위 20%에 속했다고 밝힌 면면을 보면 거의 전원이 비명(非이재명)계다.
이에 '내홍'과 '심리적 분당'을 넘어 '실제 분당'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이 대표는 현재 이런 기조를 멈출 뜻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이 대표는 지금 최고위원직 사퇴(고민정 의원), 릴레이 탈당(김영주·이수진·박영순·설훈·이상헌 의원 등), 집단 반발(친문계의 공동 행동 움직임) 등도 모두 감수하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대표는 설훈 의원이 탈당한 2월28일 "입당도 자유고 탈당도 자유"라면서 "변화에는 반드시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냈다. 계속 마이웨이를 하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은 셈이다.
'릴레이 탈당' '지지율 추락'에도 이재명은 '마이웨이' 왜?
이재명 대표가 이번 총선을 통해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드는 것은 물론 '정치적 홀로서기'도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금까지 자신의 정치적 우산 역할을 해온 이해찬 전 대표의 영향력에서 일정하게 벗어나는 것은 물론, 잠재적 경쟁자일 수 있는 김부겸·정세균 전 국무총리와도 정치적 거리두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 흐름대로라면 이 대표는 최종적으로 현재 민주당 최대주주인 친문계의 구심점이자 상징적 존재인 문재인 전 대통령과도 '헤어질 결심'을 했다는 분석이 나올 수 있다.
이 대표의 이런 의지가 확인된 결정적 장면들이 있다. 이 대표는 최근 이해찬 전 대표와 김부겸·정세균 전 국무총리,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제안을 사실상 모두 거절했다. 현재까지 발표된 일련의 민주당 공천을 보면 이 대표는 '임종석 전 실장 공천의 필요성'(이해찬 전 대표), '공정한 공천'(두 전직 총리), '명문(明文·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 정당과 단합'(문 전 대통령) 등의 입장을 모두 거절했다고 해석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보면, 이 대표가 어떤 결심을 했다는 분석이 나올 수 있다. 당장 이해찬 전 대표는 공천 갈등을 수습하고 총선을 진두지휘할 선거대책위원장의 가장 강력한 후보였다. 김부겸·정세균 전 총리도 유력한 후보군이었다. 특히 두 전직 총리는 공정한 공천을 선대위원장직의 수락 조건으로 내건 바 있다. 이 대표가 '뺄셈 정치'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우리(친명)끼리 해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특히 이해찬 전 대표는 그간 이재명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우군이었다. 지난 대선 과정부터 최근까지 이 대표가 흔들릴 때마다 방패막이 역할을 든든하게 해준 장본인이 바로 이 전 대표다. 오랜 비주류로서 '언더독' 서사를 가진 이 대표를 이해찬 전 대표가 보증하고 지켜 그는 숱한 위기를 넘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이 전 대표의 제안을 공개 거절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보여지는 것보다 이해찬 전 대표가 이재명 대표를 돕는 역할이 컸다. 이에 이재명 체제는 '이재명-이해찬 공동체제'라는 분석까지 나왔었다. 이 대표가 '헤어질 결심'과 '홀로 설 결심'을 확실히 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관건은 심상치 않은 여론이다. 최근 발표되고 있는 주요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심지어 총선의 전체 구도를 지배하던 '정권심판론'도 흔들리는 모습이다.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정권심판론은 아직 우세하지만, 정권지원론과의 격차가 한 자릿수로 좁혀지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도 여론 반등과 국면 전환은 절실하다. 자신이 원하는 '이재명의 민주당'을 위한 세력 재편과 대선후보 재편을 다 이뤄내더라도, 정작 4월10일 총선에서 패배하면 그 책임론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지지 기반을 넓히면 이기고 좁히면 진다는 말은 진리와도 같다. 민주당은 총선을 불과 6주 남겨둔 시점에 극심한 당내 분란과 지지율 하락세를 맞이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는 계획했던 일이고, 예상했던 후폭풍이며, 예정대로 돌파해 나갈 것이라고 강변할 수 있다. 과연 이 대표가 그리고 있는 그림은 무엇일까. 믿는 구석은 무엇이고, 반전 카드는 과연 있는 걸까.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 이번 총선의 최대 분기점이자 가장 결정적 순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시사저널이 지금 총선 판세를 요동치게 하고 있는 '이재명의 생각'과 그 근거, 향후 시나리오를 살펴본 이유다.
"총선 패배해도 당권만 지키면 승리라는 인식"
"양산 회동에서 이재명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과) 굳게 약속한 명문 정당과 용광로 통합을 믿었다. 지금은 그저 참담할 뿐이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 대표와 최고위에 묻고 싶다. 정말 이렇게 가면 총선에서 이길 수 있나. (중략) 이재명 대표만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나." 임종석 전 실장은 2월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중·성동갑에 대한 자신의 공천 배제 결정을 재고해 달라고 당에 공식 요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현재 친명계를 제외한 민주당 관계자들이 대부분 우려하는 지점이 바로 임종석 전 실장의 한마디에 녹아있다. 바로 '이재명만으로 총선에서 이길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지금 민주당 안팎에는 임 전 실장과 홍영표 의원 등의 컷오프는 이재명 대표가 잠재적 대권·당권 주자를 사전에 정리하기 위함이고, 비명계가 대거 밀려나고 있는 현재 공천 결과는 이 대표가 자신의 당권을 더 공고하게 유지하기 위한 밑그림이라는 시선이 상당하다. 심지어 이 대표가 오는 8월 전당대회에 재출마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계속 제기된다. "그에게 공천은 '미리 보는 차기 당권 투쟁'이자 '잠재적 대권 경쟁'이다. 그로서는 당이 승리해도 당권을 잃으면 패배지만, 당이 패배해도 당권을 장악하면 승리"(이대근 우석대 교수)라는 주장마저 나온다.
이재명 대표와 친명계는 왜 '이재명만의 민주당'으로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보는 걸까. 왜 선거를 코앞에 두고 상당한 후폭풍을 감수하면서까지 한 치의 양보 없는 '이재명의 민주당'을 완성하려고 하는 걸까.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지금 이 대표의 선택에는 ①구도(정권심판론 우위) ②갈등 전선(경선에서 지지층 결집) ③감정(오랫동안 쌓인 비주류로서의 설움) 등 다양한 변수가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었다.
'친명 대 친문' 대립 구도, 경선에서 '지지층 결집'에 유리
먼저 이 대표와 친명계는 이번 총선을 지배하는 핵심 구도인 정권심판론이 "어디 도망 안 간다"라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히려 민주당이 어려운 공천 문제를 먼저 푼 만큼 킬러 문항이 남아있는 국민의힘이 본격적인 공천 국면에 들어가면 다시금 정권심판론이 부각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아울러 지금의 '친문 대 친명'의 가파른 대립 구도가 경선 정국에서는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속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친명계 원외 인사와 비명계 현역 의원 간 경선이 진행 중인 곳이 많은데, 강성 지지층 결집에는 지금의 뚜렷한 갈등 전선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선(先) 친명계 재편-후(後) 사태 수습' 시나리오가 가동될 것이며, 그 판단의 핵심에는 정권심판론이 자리하는 셈이다.
실제 최근 한국갤럽 정당 지지도 조사 결과를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관찰된다. 2월 3주 차와 2월 4주 차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도는 각각 31%와 37%, 35%와 37%였는데, 진보층의 민주당 지지율은 같은 기간 61%에서 68%로 껑충 올랐다. 지지층 결집 효과라는 해석을 넘어 이재명 대표 측이 "지금의 공천을 핵심 지지층은 지지하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을 여지가 있는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취재에 따르면, 감정의 문제도 일정하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친명계에는 비주류로서 오랫동안 당의 주류였던 친문 세력 등에게 배제되고 밀려났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이가 상당하다. 특히 이낙연 전 대표가 대선 과정에서 대장동 문제 등을 제기하고,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는 상황 등을 거치면서 감정의 골이 파일 대로 파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역 하위평가 통보가 비명계에 집중된 이유로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던 친명계 김성환 의원의 말은 민주당 내에서는 정설로 평가받고 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정청래 최고위원의 '지금 민주당의 깃발은 단연 이재명 대표다. 친노·친문은 되고 친명은 안 되나'라는 말은 친명계의 사고방식과 인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며 "그동안 당했던 것을 갚아주는 차원도 없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에게 지금의 '릴레이 탈당'이나 친문 세력의 집단행동 움직임 등이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민주당을 떠나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친문 세력이 8월 전당대회를 기다리는 것 외에 이번 총선 국면에서 이 대표를 압박할 수 있는 뾰족한 수단은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이 대표는 대선에서 패배했음에도 자신을 구해낸 '세 개의 지지 축'이 흔들리기는커녕 굳건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만큼 모두가 위기라고 말해도 위기라고 인식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청와대 비서관 출신인 민주당의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공천 파동 지나면 정권심판론으로 재정비' 구상
"'이재명의 민주당'은 그 전의 민주당과 뚜렷한 지지 기반의 차이를 보인다. 기존의 민주당은 호남이라는 정치적 뿌리를 기반으로, 국민 전체 여론을 중시하며, 레거시 미디어와의 상호작용성으로 움직였다. 반면 이재명의 민주당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개딸이라 불리는 강성 지지층 여론을 중시하고, 친민주당 성향의 유튜브 방송과의 상호작용 아래 움직인다. 이런 관점에서 다시 계산해 보면, 이 대표 입장에서 지금 탈당을 감행하는 이들이나 친문계의 반발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자신이 사는 성(城)은 흔들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패배에서 자신을 구해낸 '삼위일체'는 굳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공천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니 당 지지율이 추락해도 멀게 느껴지거나, 지금의 위기가 불공정한 언론의 보도 때문이라고 인식할 여지가 있다."
실제 이 대표는 2월28일 "공천받으면 친명, 탈락하면 반명이나 비명 이렇게 분류하는 걸 자제해 달라"며 "당내 공천으로 인한 후유증이나 혼란은 국민의힘이 훨씬 더 심한데 왜 그쪽은 조용한 공천이라는 등 그렇게 엄호하면서 민주당 공천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른 엉터리 왜곡을 하느냐"고 말했다. '이재명의 생각'의 근저에 깔린 인식이 어떤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 대표의 이런 마이웨이 기조가 지지층의 투표율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는 2007년 대선 때 정동영 후보 사례를 들며 "민주당 유권자들은 이런 갈등이 있을 때마다 투표장에서 이탈한 경험이 있다"고 짚었다. 실제 친문계 지지층 사이에서는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투표는 민주당 계열을 찍지 않겠다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전략통으로 평가받는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 대표가 '비주류 정서'라는 함정에 빠져 중도층과 점점 멀어지는 악수(惡手)에 악수를 거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이 대표의 행보가 과거 통합진보당을 움직이던 경기동부연합과 닮아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그의 설명이다.
"경기동부연합에 중요한 것은 전체의 승리가 아니라 조직 안에서 내 파이를 얼마나 키우는가였다. 집권보다 주류가 되는 일이 중요했다. 그런 전략을 우선시했다. 지금 이 대표의 움직임이 이와 닮아있다. 주류는 늘 소수파를 배려하면서 승리하는 길을 찾는다. 그래야 전체의 승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주류는 소수파를 반대파로 여기고 다 몰아낸다. 그래야 이길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이 대표와 그의 주변엔 응축된 분노의 정서, 비주류의 정서만이 가득하다. '(동료의원 평가에서) 0점 맞은 분도 있다'며 웃음을 터뜨린 이 대표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수박(비명계)'이라는 용어도 상징적이다. 그렇게 '이재명의 민주당'은 완성되고 있고, 민주당은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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