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0.6명대, 멸종이냐 성평등이냐 [김민아의 훅hook]

김민아 기자 2024. 3.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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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분기 출산율이 0.6명대로 떨어진 가운데, 지난 28일 서울의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 등 관계자들이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숨도 못 잤는데 단숨에 피로가 풀리는 아이러니.” “너 땜에 못 살다가 너 땜에 사는 아이러니.” “아...이러니 아이를 키우나 봅니다.”

2월 14일 공개된 저출생 관련 공익광고 ‘아이러니, 아...이러니’ 편의 내레이션이다. 광고 초반에는 부모가 아이를 키우며 겪는 애환들이 이어진다. 마지막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웃는 장면으로 끝난다. 메시지는 공허하고 접근법은 진부하다. 영상은 공익광고협의회와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유튜브 채널에 올라 있다.


☞ [공익광고협의회] '아이러니, 아...이러니' 편
     https://youtu.be/VRXw6h4oe5Q

지난해 4분기,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사상 처음 0.6명대를 기록했다(0.65명). 2023년 연간 출산율은 0.72명이었지만, 올해 출산율은 0.6명대로 떨어질 것이 확실시된다. 통계청 관계자는 “홍콩 등 일부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세계 최저 출산율”이라고 했다. 한국인은 이제 ‘멸종위기종’이 되었다.

한국이 저출생의 늪에 빠진 것은 아이 키우는 행복과 즐거움을 몰라서가 아니다. 공익광고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라. “아이 둘 키우는 사람으로 화나고 이해와 공감이 안 되는 영상이네요. 요즘 시대에는 애들 땜에 웃는 거보다 애들 키우는 환경 때문에 더 우는 날이 많다는 걸 모르시나 보네요.”

역대 정부는 모두 저출생 대책에 돈을 쏟아부었다. 부모급여·양육수당·아동수당 등 현금성 지원은 확실히 늘어났다. 하지만 아이를 기르는 돈을 주기 전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사회·경제적 환경을 구축하는 게 우선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출산을 선택하는 자신(부모)과 세상에 나올 아이의 ‘삶의 질’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특히 양육은 물론 가사·돌봄노동의 부담까지 큰 여성 입장에서 출산은 ‘선택’이 아니라 모든 것을 건 ‘도박’이 된다.

한국보다 먼저 인구 위기를 겪은 선진국들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유의미한 솔루션을 찾아냈다. 1990년대 통일 이후 출산율이 급락했던 독일은 노동시장의 성차별 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여성 고용 안정과 성별 임금 격차 축소 등을 통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과 출산율을 동시에 높이는 데 성공했다.

‘라테 파파’(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로 잘 알려진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유급 부모휴가를 도입했다. 그럼에도 남성들의 제도 참여가 부진하자 ‘아빠 할당제’를 시행했다. 주양육자가 아닌 배우자도 반드시 90일간은 육아휴직을 쓰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해외 사례에 비춰보면 답은 선명하다. 성평등, 특히 노동시장의 성평등을 구현해 여성들이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 없이 출산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고 출산과 양육에 따른 ‘모성 페널티’도 제거해야 한다. 육아는 여성 몫이 아닌 부모 공동의 몫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제도가 뒷받침해야 한다. 그러려면 남녀 모두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월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형환 신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한 뒤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정권은 정확히 반대로 가고 있다. 성평등 정책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장관 자리가 비어있다. 국민의힘이 4월 총선에서 승리한다 해도 5월 29일(21대 국회 임기 종료일)까지는 여가부 폐지가 불가능하다. 정부조직법상 엄연히 실재하는 부처를 몇 달씩이나 마비시키는 게 대통령이 할 일인가. 총선을 앞두고 일부 젊은 남성들의 표를 겨냥한 ‘성별 갈라치기’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여권은 여가부를 폐지한 뒤 부총리급 인구부를 신설하겠다고 한다. 인구 정책 컨트롤타워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여가부를 없애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여성도 ‘생각하고, 말하고, 꿈꾸고, 일하는’ 인간이다. 그런 여성의 존재 이유를 ‘재생산’으로 축소할수록 저출생 위기는 심각해질 것이다.

지난해 ‘주 최대 69시간’ 개편안으로 반발을 샀던 정부는 노동시간 연장에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 준수 여부를 따질 때 ‘1일 8시간’이 아닌 ‘1주 40시간’으로 계산하는 방식으로 행정해석을 변경했다. 장시간 집중노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지난해 말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삼았다지만, 노동자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발상이다. 도대체 언제 쉬고, 언제 연애하고, 언제 결혼하고, 언제 아이 낳아 키우란 말인가.

윤 대통령은 최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위촉했다. 그의 별명은 ‘불도저’라고 한다. 윤 대통령은 주 부위원장의 추진력으로 가시적 성과를 내길 기대한 듯하다.그러나 대통령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인식을 버리지 않는 한, 성평등 이슈를 득표 전략으로 취급하는 한, 변화는 불가능하다.

변화하지 않으면 멸종하는 수밖에 없다. 멸종이냐, 성평등이냐. 택일할 때다.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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