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 충주 서상경 선생 생애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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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105주년을 맞아 아나키즘 운동을 주도했던 충북 충주의 독립운동가 서상경 선생(1900.8.22~1962.12.7)이 재조명받고 있다.
1일 충주3·1운동기념사업회에 따르면 1920년대 충주의 아나키즘 운동은 일제의 집요한 탄압과 억압에도 굴하지 않은 민족해방운동으로 항일독립운동의 한 줄기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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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경의 생애 자체가 투쟁과 독립운동의 과정"
(충주=뉴스1) 윤원진 기자 = 3·1절 105주년을 맞아 아나키즘 운동을 주도했던 충북 충주의 독립운동가 서상경 선생(1900.8.22~1962.12.7)이 재조명받고 있다.
1일 충주3·1운동기념사업회에 따르면 1920년대 충주의 아나키즘 운동은 일제의 집요한 탄압과 억압에도 굴하지 않은 민족해방운동으로 항일독립운동의 한 줄기를 형성했다.
대표 인물은 서상경 선생이다. 그는 일본에서 박열과 함께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충주에서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며 농민운동을 했다.
충주의 아나키즘 운동은 서상경의 영향과 주도하에 이뤄졌다. 충주군 용산리 출신인 서상경은 청주농업학교에 다니다가 3·1운동에 가담해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격문을 등사해 배포하다 5개월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이강하, 이윤희 등 아나키스트들과 접촉했고, 1923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에 다니며 아나키즘 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박열과 함께 '불령사'를 조직하고 잡지 '흑도'를 발생하면서 제국주의 논리와 민족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니가타현 댐 공사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노동자 집단학살 사건을 규탄하는 연설회에 참여했다가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이후 귀국해 문예 운동을 통한 아나키즘 운동을 주도하다가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 형을 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만기 출소 후에는 고향 충주서 기자로 일하며 1929년 2월 충주군 충주면 금정여관에서 문예운동사를 조직해 다시 아나키스트 진영 정비에 나섰지만, 일제에 의해 와해됐다.
우리나라 아나키즘 운동은 일제강점기 국가권력인 일제에 저항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개혁하고자 한 운동이다. 국가권력 등 모든 사회적 권력을 부정하고 개인의 절대 자유를 가장 소중하게 여겼다.
전홍식 충주지역사회연구소장은 "감시와 계속되는 투옥에도 불구하고 조직을 결성하고 지속적 활동을 전개한 서상경의 생애 자체가 투쟁과 독립운동의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역사학계에서 서상경은 류자명과 쌍벽을 이룰 만한 아나키스트로 평가한다. 1977년 대한민국 건국포장이,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지금까지 알려진 충주 출신 독립운동가는 류자명, 서상경, 장양헌, 오언영, 유석현, 정태희, 어윤희, 추성렬, 이병철, 박신삼 등 30여 명이다.
blueseeki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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