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이 건국절이다 [전범선의 풀무질]
전범선 |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삼일절이 돌아왔다. 올해로 105주년이다. 나는 삼일절을 사랑한다. 평소에는 애국심이 없지만 삼일절에는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친다. 대한민국 국경일은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총 5일이다. 제헌절은 1948년 7월17일 대한민국 헌법 제정, 광복절은 1945년 8월15일 일제로부터의 해방, 개천절은 기원전 2333년 단군의 고조선 건국, 한글날은 1446년 세종의 한글 반포를 각각 기념한다. 이 중 제헌절은 더는 공휴일이 아니다. 북한도 삼일절, 개천절, 한글날을 기념하지만 광복절만 공휴일이다. 나는 국경일 중 삼일절이 으뜸이라고 본다. 대한민국이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건국절 논란이라는 것이 있다. 경제사학자 이영훈 교수가 2006년 동아일보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칼럼을 썼다. 1945년 8월15일은 우리 힘이 아닌 외세로 인해 해방된 날이기 때문에 진정한 광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빛은 1948년 8월15일의 건국 그날에 찾아왔다. 우리도 그날에 국민 모두가 춤추고 노래하는 건국절을 만들자.” 그는 미국의 건국기념일을 예시로 든다. 건국을 생일처럼 축하하며 춤추고 노래하는 문화가 부럽다면서 우리도 그런 날을 만들자고 한다. 실제로는 8월15일을 광복절에서 건국절로 바꾸자는 주장이다.
광복절이 멋이 없다는 말에는 나도 동의한다. 일본이 미국에 원자폭탄을 두번이나 맞아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날이다. 그러한 날을 “광복”, 빛이 돌아왔다고 축하하는 것은 아무리 일제가 싫어도 너무 그로테스크하다. 조선인도 원폭으로 많이 죽었다. 광복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손님”으로 폄하할 수는 없어도 우리가 모셔온 손님이라고 자부하기도 어렵다. 어쨌든 일제가 패전하여 어부지리로 해방된 것이다. 그것도 남북이 분단된 반쪽짜리 해방이다. 그래서 광복절은 내가 사랑하기 어렵다.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직업이지만, 그날에는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치기 민망하다.
그렇다고 해도 8월15일을 건국절로 만들어서 1945년이 아닌 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기념하자는 이영훈 교수의 논리는 황당하다. 특히나 그것이 미국의 건국절을 본뜨자는 주장인데, 이는 미국사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가 부러워하는 미국의 건국절, 건국기념일은 정확히는 7월4일 독립기념일이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은 1775년 독립전쟁을 시작했고 1776년 7월4일 토머스 제퍼슨이 쓴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독립기념일은 바로 이날을 축하한다. 독립전쟁은 8년간 이어졌고 1783년 9월3일 파리협정으로 끝났다. 미국 헌법은 1787년 9월17일 제정되었으며 1789년 3월4일 헌법이 발효되면서 미합중국 연방 정부가 수립되었다.
말하자면 미국의 광복절은 9월3일이고 제헌절은 9월17일이며 정부 수립일은 3월4일이다. 그러나 미국인은 국가의 원년을 1776년 7월4일로 여긴다. 그날이 제일 중요한 국경일이다. 미합중국의 생일인 것이다. 미국처럼 건국절을 만들고 싶으면 당연히 정부 수립이 아닌 독립 선언을 기념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삼일절이다. 최남선이 쓴 독립선언서를 1919년 3월1일 33인의 민족대표가 발표했고, 2천만 조선 인민 중 100만명 가까이 나와서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것을 계기로 그해 4월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1948년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삼일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한다.
한민족에게는 개천절과 한글날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삼일절이 으뜸이다. 미국은 총칼로 독립을 쟁취했으나 조선은 국제법에 의거한 비폭력 평화적 방식으로 독립을 요구했다. 시민불복종 역사에서 삼일운동은 독보적이다. 간디의 사탸그라하, 마틴 루서 킹의 민권 운동보다 시기도 앞서고 규모도 컸다. 그러나 삼일운동을 조직한 천도교의 손병희나 기독교의 이승훈은 세계인이 알지 못한다. 종교를 초월하여 평화의 뜻을 밝혔고 그것이 대한민국을 낳았다. 총칼 앞에서도 비폭력을 지켰다. 이보다 아름다운 건국이 있을까? 오늘 해방촌에서 양반들 공연이 열린다. 나는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칠 것이다. 춤추고 노래하는 건국절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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