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뜨거워지자, 우리 밥상은 허전해졌다
한국은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수산업 강국인 일본, 노르웨이보다도 많이 먹는다. 그러나 밥상의 수산물 풍경은 시간에 따라 바뀌어왔다. 1980~1990년대만 해도 비교적 흔하게 밥상에 올랐던 갈치·꽁치·조기는 귀한 대접을 받고 있고, 대신 고등어와 멸치를 접하기 쉬워졌다.
이미 1990년대부터 희귀해진 명태는 말할 것도 없다. 명태는 정말로 씨가 말랐다. 과거 해장음식의 최고봉으로 여겨졌던 생태탕(냉장 명태로 조리한 탕)은 이제 일본산 아니면 러시아산뿐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동태, 코다리, 북어 역시 모두 수입산이다.
2014년 해양수산부는 살아 있는 명태를 잡아온 사람에게 한 마리당 5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생태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살아 있는 명태를 통해 수정란을 확보해 명태를 양식하기 위해서였다. 10년이 지났지만 명태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2019년부터는 아예 명태 어획 및 판매를 금지했다. 어족자원 보호를 위한 조치였지만, “어차피 안 잡히는데 잡지 말라는 게 무슨 소리냐”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 ‘난류성’ 어종 오징어가 사라진 이유
2023년은 오징어의 해였다. 지난해 여름부터 동해에서 오징어가 안 잡힌다는 뉴스가 잇따랐고 오징어 값이 폭등했다. 강릉 주문진항에서 오징어 한 마리에 2만~3만원씩 나간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깜짝 놀랐다. 1990년대만 해도 동해안 횟집에서 회를 시키면 서비스로 내줄 정도로 싸고 흔한 게 오징어였다. 값은 둘째치고 아예 오징어 자체가 안 잡힌다는 어민들의 증언이 쏟아졌다. ‘금징어’가 아니라 ‘없징어’라는 자조까지 나왔다.
급기야 동해안 오징어잡이 어선 1척당 러시아 정부에 1400만원을 내고 조업권을 획득해 원정 어업에 나섰다. 최근에는 멀리 아프리카 케냐까지 오징어잡이 원정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정부가 비축 물량을 풀고, 긴급수입에 나섰지만 국내산 생물 오징어는 여전히 귀한 몸이다.
실제로 국내 오징어 생산량은 크게 줄었다. 지난해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오징어 생산량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연간 20만~25만t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다. 이후 어획량이 줄면서 10만t 중후반대에서 형성되다 2017년부터 10만t 아래로 추락했다. 2022년에는 약 3만7000t으로 역대 최저의 어획량을 보였다. 아직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해인 2023년의 오징어 어획량은 이보다 더 떨어질 것이 확실하다. 약 20년 만에 오징어 어획량이 급감한 것이다.
오징어는 왜 줄었을까? 여러 언론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 탓이라고 설명하는 데 그친다. 그런데 이게 그리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왜냐면 오징어는 난류성 어종이기 때문이다. 즉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어종이라는 뜻이다. 점점 따뜻해지고 있는 바다에서 왜 오징어가 사라지고 있을까.
국립수산과학원이 발간한 〈2023 수산분야 기후변화 영향 및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5년간(1968~2022년) 한국 해역의 연평균 표층수온은 약 1.36℃ 상승했다. 표층수온은 해수면 가까이에 있는 바닷물 온도를 말한다. 이런 상승 폭은 전 세계 평균보다 약 2.5배 이상 높은 수치다. 특히 같은 기간 동해의 표층수온은 1.82℃나 상승했다. 동해 바다의 수온이 유독 상승한 이유로는 따뜻한 대마(쓰시마) 난류의 세기가 강해진 점 등을 꼽는다. 대마 난류란 쿠로시오 해류에서 분리돼 동해로 진입하는 난류를 말한다.
온난화로 따뜻해진 물이 계속 유입된 결과 동해 바다의 경우 최근 몇 년 사이에 여름철 수온이 30℃를 넘는 등 오징어 적정 서식 수온(15~20℃)을 크게 웃돌았다. 그러니까 물이 너무 따뜻해지면서 난류성 어종인 오징어가 시원한 곳을 찾아 북상함에 따라 어획량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 플랑크톤이 바다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
우리가 잘 모르는 ‘바다의 사정’도 큰 원인이다. 앞선 보고서에 따르면 바다의 표층수온은 매우 높아진 반면 수심 100m 이하 깊은 바다의 수온은 별 변함이 없거나 오히려 낮아졌다. 수심이 깊을수록 바다의 수온은 큰 변동이 없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위쪽 물은 뜨거워졌는데 아래쪽 물이 여전히 차가우면 위아래 바닷물이 물과 기름처럼 잘 섞이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걸 ‘혼합 약화’라고 부른다.
이렇게 되면 바다 생물의 먹이인 플랑크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바닷물이 섞이지 않으면서 플랑크톤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이 잘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플랑크톤을 먹이로 삼는 작은 물고기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또 이를 먹이로 삼는 오징어에게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결국 먹이를 찾지 못한 오징어가 동해 바다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셈이다. 오징어가 잘 잡히지 않았던 서해의 어획량이 최근 늘고 있는 것도 이런 원인 탓으로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여러 이유가 있다. 오징어는 주로 가을과 겨울에 산란을 하는데, 수온이 높으면 알과 치어의 생존율이 떨어진다. 북한과 중국이 공동 어로 협약을 맺으면서, 중국 저인망 어선들이 북한 수역에서 오징어를 잡아들이는 탓도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강수경 연근해자원과장은 “성장기의 수온, 주변국의 어획 등이 겹쳐서 오징어 자원에게 부정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것이 오징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오징어가 살기 나쁜 환경은 다른 어종에게도 마찬가지로 나쁠 수밖에 없다. 특히 앞서 말한 플랑크톤 문제로 인해 앞으로 좀 더 심각한 생태계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림〉을 보자. 기후(수온) 변화로 인해 한반도 바다 주요 어종의 어획량이 어떻게 변했는지 나타낸 통계청 자료다. 2018년에 발표한 자료이지만, 1970년과 2017년 사이 47년간의 어종 변동 폭을 동해·서해·남해로 나누어 보여주는 자료다.
우선 동해 바다는 명태와 전갱이의 양상이 극적으로 뒤바뀌었다. 명태는 대표적인 한류성 어종으로 적정 서식 수온이 10℃ 이하다. 전갱이는 난류성 어종으로, 1970년 어획량이 21t에 불과했으나 2017년에는 2373t으로 100배 이상 늘었다. 전갱이는 일본어로 ‘아지’라고 불리는데, 국내에서는 제주도의 ‘각재기국’이 바로 전갱이로 만든 음식이다. 제주에서 즐겨 먹던 전갱이가 이제 동해에서 많이 잡히는 것이다. 반면 명태는 1970년 1만1411t을 어획했으나 2017년에는 고작 1t으로 쪼그라들었다. 어획량 최고점을 찍은 때는 1970년대 중반으로, 한 해 6만t이 넘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 2019년부터는 아예 명태 어획을 금지했으므로 이제 이 수치는 ‘0’이다.
동해안 해역에서 잘 잡혀 국민 생선의 반열에 올랐던 꽁치도 극적으로 줄었다. 1970년 2만2281t이던 꽁치의 어획량은 2017년 725t으로 줄었다. 1970년대 중반에는 한 해에 4만t 넘게 잡히던 생선이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수온이 낮은 해역으로 어군이 이동함에 따라, 강원도와 경북 지역의 꽁치 어획량이 감소 추세를 보였다”라고 설명했다. 꽁치 역시 한류성 어종이다.
겨울철 별미인 도루묵도 마찬가지다. 1970년에는 1만3000t 이상 잡혔으나 2017년에는 4000t대로 추락했다. 도루묵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상황이 더욱 심각해져 한 해 어획량이 몇백 톤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올겨울 들어 오징어와 함께 도루묵도 아예 안 잡히다시피 하면서 동해안 어민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서해와 남해는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반적으로 여러 어종의 어획량이 줄어든 동해와 달리 서해와 남해는 난류성 어종의 증가가 눈에 띈다. 우선 멸치 어획량이 크게 늘었다. 1970년 400t이던 서해 바다의 멸치 어획량은 2017년에 4만7874t으로 100배 이상 늘었다. 남해에서도 약 5만t에서 16만t으로 3배 이상 늘었다. 남해에서 난류성 어종인 고등어의 어획량도 3배가량 늘었다.
■ 너무나 크게 바뀐 ‘한반도 어장 지도’
오징어의 어획량 변화도 한눈에 보인다. 1970년에 오징어는 사실상 ‘동해안 독점’이었다. 그런데 2017년이 되면 서해와 남해의 어획량이 크게 는다. 특히 남해 바다가 두드러진다. 2017년 동해에서 3만2500t이 잡힌 데 비해 남해에서는 5만1874t이 잡혔다. ’울릉도 오징어’는 완전히 옛말이 된 셈이다. 앞서 말했듯 최근 들어 동해의 오징어 어획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에 이 차이는 더욱 커졌을 것이다.
서해 바다의 명물이었던 조기를 보자. 서해의 어획량은 10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으나 남해의 경우 하락 폭이 크지 않았다. 서해 바다에서 조기 어획량이 줄어든 이유에 대해서는 저층 수온의 변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등이 거론된다. 갈치 역시 서해의 어획량은 줄고 남해는 늘었지만, 전체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어종이다.
이 통계로 알 수 있는 사실은 명확하다. 수온 변화로 인해 ‘한반도 어장 지도’가 크게 바뀌었다는 점이다. 대체로 한류성 어종이 사라지고, 난류성 어종이 증가하고 있다. 이 통계에는 나오지 않지만 제주도 등 남해에서 많이 잡히던 방어가 최근 들어 동해에 크게 늘었다. 방어의 어획량은 1990년 4532t에서 2022년 2만1250t으로 증가했다. 2022년 동해와 남해의 방어 어획량 비중은 거의 비슷했다.
아열대성 어류인 참치도 동해에서 자주 잡힌다. 그런데 동해 바다에서는 잡힌 참치를 바다에 도로 버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어획량 할당’ 때문이다. 참치는 국제협약에 따라잡을 수 있는 양이 나라별로 정해져 있는데, 지난해 한국의 참치 쿼터는 748t이었다. 이를 초과해 참치를 어획하면 수산업법에 따라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문제는 이런 할당량이 기후변화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의도치 않게 그물에 걸리는 참치가 점점 늘고 있는데, 할당량은 적으니 갖다 버리는 수밖에 없다. 2022년에는 경북 영덕 앞바다에서 할당량을 초과한 참치 1만3000마리를 내다 버리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죽은 참치가 해변으로 밀려오면서 참혹한 광경이 펄쳐졌다.
■ 기후변화에 더욱 취약한 양식장 생물들
기후변화로 인한 해양 온난화가 초래할 가장 즉각적인 피해는 양식장에서 발생한다. 양식장의 피해는 곧바로 우리 밥상을 직격한다. 2022년 기준 국내 해면양식업 생산량은 약 226.8만t으로, 이는 연근해 어업 생산량(88.7만t)의 두 배를 훨씬 넘는다. 우리의 밥상은 양식업이 없으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가까운 바다에 가두리를 만들어 수산물을 키우는 양식장은 고온에 특히 취약할 수밖에 없다. 앞선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2년간(2011~2022년) 고수온, 적조, 태풍 등에 따른 양식장 피해 규모는 총 2382억원이었는데, 이 중 고수온으로 인한 피해액이 1250억원으로 가장 컸다. 양식 생물 피해가 가장 많았던 2018년도에는 넙치·전복·조피볼락·돔류 등 6300만 마리가 폐사했다.
이 글의 서두에서 한국이 1인당 수산물 소비량 세계 1위라고 썼다. 여기에는 숨은 이유가 있다. 해조류다. 한국인은 김, 미역, 매생이, 다시마 등을 전 세계 어느 나라 사람보다 많이 먹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김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수산인의 날’ 기념식에서 김을 일컬어 ‘검은 반도체’라고 추켜세웠다. 과거와 달리 서구권에서도 김을 ‘코리안 시위드(Korean Seaweed)’라 부르며 웰빙 식품으로 평가하는 만큼 수출 상품으로 키우겠다는 취지였다.
이런 김도 수온 상승에 취약하다. 김은 수온이 10℃ 안팎 유지돼야 제대로 성장한다. 겨울철(11월~이듬해 4월)에만 수확이 가능한데, 차가워야 할 겨울바다가 따뜻해지면 치명적이다. 김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썩거나, 흩어지게 된다. 9월 무렵 김 종자를 김발에 부착하는 시기에 바다 수온이 높아도 큰 문제다. 김 종자가 안착하지 못하고 죽거나 녹아 없어지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이대로 수온 상승세가 지속되는 한 김 양식장의 해외 이전도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바다는 지금 두 가지 위기 앞에 놓여 있다. 하나는 무분별한 남획이고, 또 하나는 기후위기로 인한 수온 변화다. 기후위기에 비하면 남획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인간이 대처 가능하다. 오히려 과도한 어업 규제로 어민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마당이다.
바다의 기후위기 문제는 다르다. 땅 위의 농산물처럼 한 해 한 해 그 심각성이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된다. 러시아산 명태와 케냐산 오징어로 우리의 밥상을 채우면 되는 걸까. 단골집인 회사 근처 영덕물회 식당에서는 언젠가부터 도루묵찌개가 사라졌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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