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강한” 의대 증원을 바라는 의사입니다
병원은 생과 사가 갈리는 곳이다. 목숨을 살리기 위한 사투가 벌어지는 이 공간에는 전쟁터 못지않은 긴장이 감돌곤 한다. 지금 대한민국 의료 현장에는 다른 성격의 전운이 퍼지고 있다.
2월6일 정부는 19년간 동결돼 있던 의대 정원을 풀어 2025년부터 2000명을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 3058명에 고정돼 있던 의과대학 문이 5058명으로 65% 더 넓어질 전망이다. 반대 입장을 고수하던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즉시 총력 투쟁을 예고했다. 2월20일부터 대학병원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은 대거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났다. 정부는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설치하고 업무복귀명령을 곧바로 내리면서 강경 대응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사이 의료 현장의 혼란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시사IN〉이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고 보는 의사와 의대생을 한자리에 모았다.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과 김동은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이비인후과)는 진보적 보건의료 운동에 참여하며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오픈런’ 뉴스가 끊이지 않는 소아청소년과의 전공의 A씨, 예비 의사로서 미래를 고민하는 의대생 B씨는 익명으로 좌담에 참여했다. 숙원했던 의대 정원 확대가 추진되지만 이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의료계와 정부의 대치가 깊어지는 가운데 19년 만에 찾아온 변화의 기회가 건강한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이 쉽지 않은 길을 모색하는 좌담은 2월18일 〈시사IN〉 편집국 회의실에서 4시간40분 동안 이어졌다.
병원과 의대 상황은 어떤가?
김동은:전공의 선생님들은 사직서 낼 채비를 하고, 의대생들은 (지도교수에게) 휴학계 서명을 받으러 오고 있다. 병원은 비상 모드다. 일단 교수들이 스케줄을 짜서 당직을 서기로 했다. 수술실은 절반 이하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다음 주에 잡혀 있던 내 수술도 5건이 미뤄졌다. 몇 달씩 수술을 기다리고 일정을 맞췄던 환자와 보호자들께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정부가 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있어서 전공의와 의대 학생들도 걱정이 된다.
의대생:의대협(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에서 각 의과대학 학생회를 통해 조사를 했는데 동맹휴학 찬성이 90% 넘게 나왔다. 휴학계가 수리되든 안 되든, 수업 거부로 학사일정에는 차질이 불가피할 것 같다. 2020년 동맹휴학 때는 예과 1~2학년들의 참여가 그리 뜨겁지 않았다. 특히 20학번은 코로나 직격을 맞았던 터라 ‘선배 한번 보지도 못했는데 왜 따라서 휴학을 해’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번에는 오히려 22학번, 23학번들이 더 적극적이라는 얘기를 건네들었다. 입시 경쟁이 과열되면서 선배들보다 더 어렵게 의대에 들어온 세대이고, 당장 바로 아래 인원이 늘어나면 경쟁 압박에 직접적으로 노출될 테니 벌어지는 현상 아닌가 싶다. 23학번들은 ‘너네 제일 고점일 때 샀다’ 이런 조소를 듣기도 한다더라.
의사 입장에서 의대 증원이 달갑지는 않을 것 같은데 네 분은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왜 그런가? 의대생, 전공의, 대학병원 교수, 지방의료원 원장으로서 각자 이유가 조금씩 다를 것 같다.
전공의:자주 거론되는 통계이지만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를 보면 OECD 국가 평균이 3.7명, 한국은 2.5명으로 절대적인 숫자 차이가 난다. 2.5명도 한의사를 포함한 숫자이고 한의사를 제외하면 2.0명이다. 충남 천안시에서 소아과 의사를 구하는데 임금이 월 2000만원이다. 그래도 안 간다. 의사가 부족한데 공급은 한정시켜둔 채 구인을 위해 페이만 높아지는 상황은 문제가 있다.
강원도에는 소아혈종(혈액종양) 전문의가 한 명도 없다. 2월부터 국립암센터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파견을 나가는데 그전까지는 강원도에서 아이가 백혈병에 걸리면 무조건 서울로 와야 했다. 제주도에 사는 소아암 환자가 집에서 호중구 감소성 발열이 생기는 일이 있었다. 이 경우 얼른 항생제를 써서 재빠르게 증상을 잡아야 한다. 제주도에서 이 치료를 받지 못해 비행기를 타고 서울까지 온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인천만 해도 가천대 길병원에 전공의가 없어서 한동안 입원 환자를 받지 못했다.
의대생:우선 개인적인 이유를 말씀드리면, 저는 소위 필수의료과 중에 한 곳을 가려고 생각하고 있다. 같은 길을 가는 동료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앞서 말씀하신 소아청소년과(소청과) 같은 경우, 최근에 전공의 지원율이 25%까지 떨어지지 않았나. 그러다 보니 소청과 레지던트 1년 차들이 단톡방을 만들어 한 병원으로 동시에 지원한다. 흩어지면 각각 병원에서 업무량이 너무 많으니까. 빅5 대학병원인 세브란스에 소청과 지원자 0명이 그렇게 나온 숫자이다. 전공의가 아니라 전문의 위주로 병원을 굴리자고 해도 전문의 숫자 역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전반적으로 의사 수를 늘리고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야, 전공의나 필수의료를 택한 의사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워라밸’도 보장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당위적인 얘기를 하자면,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가파른 추세다. 고령화로 늘어난 의료 수요를 감당할 의사가 더 필요하다. 파장이 5년 내에 시작돼 몇십 년간 지속될 것이다. 당연히 인력 충원을 빼놓고 해법을 논할 수 없다.
김동은:지역의료 공백을 절감할 때가 많다. 경북 북부에는 중이염, 축농증 수술을 하는 곳이 거의 없다. 경북 영양, 울진에서 고령의 환자들이 몇 시간씩 걸려 우리 병원까지 오곤 한다. 문경에 사는 소아인데 편도 절제술을 받고 퇴원한 뒤에 출혈이 생겼다. 문경 인근에 처치가 가능한 응급실이 없어서 대구까지 오느라 출혈이 더 심해진 상태였다. 의사 수는 곧 의료 접근성, 건강권의 문제와 연결된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서울은 3.5명, 경상북도 북부는 1.3명이다.
지난해 4월 대구에서도 응급실을 전전하다 10대 학생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취재해보니 응급실 과밀화도 문제이지만 그 뒤에 수술할 의사들이 부재한 것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김동은:그렇다. 추락사고 환자였는데 이런 다발성 외상환자는 병원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부상 위치에 따라 정형외과, 신경외과, 일반외과 등 여러 과에서 같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대학병원일지라도 배후 진료를 할 의사들이 다 병원에 있지 못하는 날은 환자를 받기 어렵다. 2022년 서울아산병원에서 간호사가 근무하다가 병원 안에서 뇌출혈이 생겼는데 개두술 하는 의사가 없어서 사망하지 않았나(당시 개두술을 담당하는 신경외과 의사 두 명 중 한 명은 지방에, 1명은 해외에 있었다). 한국에서 제일 큰 서울 소재 병원이 그 정도면 지역의 다른 병원은 그보다 위태롭다는 뜻이다.
임승관:코로나19 이후 공공병원들은 진료기능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의사를 못 구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공공병원을 꺼리는 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방’에서 허리를 담당하는 ‘2차 병원’이 직면한 문제다. 지방 중소병원들은 의사 채용이 정말로 어려워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우리 병원은 마취과 의사를 구하지 못해 세 달 동안 수술실을 닫았다. 명색이 종합병원이고 지역응급의료기관인데 맹장수술조차 못했다.
구인난이 심해지면 연쇄적으로 인건비가 올라간다. 예전에 연봉 2억원에 채용했던 분야에서 이제는 3억원을 제시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의사 임금이 아주 가파르게 올랐다. 경기도 안성시인데도 상황이 이렇다. 앞으로 5~10년 동안 지방 중소병원들은 하나씩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이다. 그 피해는 지역의 주민들이 입게 된다. 현실이 굉장히 심각한데 사회가 심각성을 잘 모른다.
대다수 의사들은 ‘총량’은 부족하지 않은데 ‘배치’의 문제 때문에 필수의료·지역의료 공백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바이탈과’(필수의료과)나 지역 병원에서 받는 보상과 대우가 상대적으로 낮아 의사들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대생:배치의 문제가 당연히 있다. 그런데 의대 증원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총량도 모자란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어느 지표를 보든지 구체적인 숫자 차이는 있지만 의사 인력 수급은 부족하고 점점 더 부족해진다(〈그림 1〉 참조). 지방의료원에서 연봉 3억원을 제시해도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의사 수를 늘리지 않고 지금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나. 본질 흐리기라고 생각한다.
임승관:전체적인 그림을 한번 그려보자고 말하고 싶다. 제가 2004년에 전문의가 되었는데 그로부터 20년 동안 한국 의료의 규모가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첫 번째로 의료의 양 자체가 증가했다. 20년 전 심장 스턴트 시술 건수와 지금의 시술 건수는 비교가 안 된다. 고령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실손보험 도입, 의료의 상품화, 구매력 상승, 의료기술의 발달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영향을 끼쳤다.
두 번째로 의료의 질이 높아졌다. 바꿔 말하면 의료서비스 하나당 투입되는 노동력이 늘어났다. 제가 레지던트 할 때 입원 환자가 교수 얼굴 한번 보기 어려웠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아 환자가 항암치료를 받으러 2박3일 입원하면 들어가는 진료·간호 노동량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선진국이 되면서 의료도 상향 표준화된 것이다.
반면에 의사 한 명이 제공하는 노동시간은 줄었다. 전공의 주 80시간 근무 같은 법제도의 변화,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회문화적 분위기, 의사 평균연령의 상승으로 인한 진료량 감소 등. 정리해보면 유통되는 의료서비스 총량과, 한 번의 서비스에 투입되는 의료 양은 늘었는데, 한 명의 의사가 제공하는 노동량은 줄었다. 그렇다면 어딘가에서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여기도 저기도 의사가 없다고 난리인 지금의 상황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미스매치 때문이다.
한국은 의료를 과다하게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의사 수를 늘릴 것이 아니라 ‘과잉 수요’를 줄여야 한다고 의료계 일각에서는 주장한다.
임승관:한국 보건의료에 닥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과제가 뭐냐고 묻는다면 두 가지를 다 꼽을 것이다. 의사 수 늘리기가 절반, 의료 이용량 줄이기가 나머지 절반이다. OECD 국가 가운데 한국은 단연 입원 병상수와 의사 방문 건수가 많은 나라이다. 총의료비 증가도 가파르다. 2000년 25조원 수준이던 의료비가 연평균 약 10%씩 늘어나 2022년 209조원으로 불어났다. 이 추세대로 고령화가 본격화되면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동시에 OECD 평균과 비교해 한국은 의사 수 역시 매우 적은 나라이다. 부족한 의사 인력은 늘리고, 불필요한 의료 수요는 줄여가면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 이용 방식, 의료 공급체계, 건강보험 수가체계 등 보건의료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재구조화하는 개혁의 청사진 아래 의대 정원 확대가 추진돼야만 한다. 지금 정부가 내놓은 정책에는 그런 구상이 결여돼 있다. 이전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제 짧은 식견으로 한국 보건의료 체계의 구조적 개혁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는 의대 증원이라는 변화의 시기가 유일한데, 그걸 헛되게 날려버리고 있는 것 같아 몹시 염려스럽다.
의대 증원에는 찬성하지만 현재 정부의 방식에는 비판적인 것 같다.
김동은: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던 저나 임승관 원장 같은 사람들이 사실 지금 많이 곤혹스럽다. 의대 증원을 바랐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고, 이런 식이라면 더 나빠질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늘어난 의사 인력이 필수·지역·공공 의료로 유입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긴 했지만 사실상 ‘2000명 더 뽑아놓으면 가겠지’에 가까워 보인다. 극도로 영리화된 한국 의료 시장에서 시장 실패로 의사 인력 문제가 초래되었는데 공급을 늘려서 시장원리로 해결하겠다는 접근에 기대를 걸기가 어렵다.
임승관:저는 한국에 의사 수가 큰 규모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체감상 현재 부족분을 채우려면 정부가 발표한 2000명보다 더 많이 뽑아야 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덜컥 내년부터 2000명이라는 발표는 수긍할 수가 없다. 의대 증원은 매우 민감하고 첨예한 이슈이다. 최종적으로 정원을 크게 늘리더라도 해마다 500명, 700명, 1000명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방식은 왜 고려하지 않나? 차근차근 논의를 쌓아가는 대신 2025년 입시라는 시한을 못 박고 올해 4월까지 확정해야 한다고 서두르는 이유는 뭔가? 정부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책적 목표’가 아니라 정치 스케줄에 따라 ‘정치적 목적’으로 추진된다는 인상을 심어주면서 부글부글 끓고 있던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더욱 공세적으로 나오게 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의대생:정부가 ‘한 해에 2000명씩 들이부으면 문제가 해결되겠지’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그냥 2000명을 늘리고 싶어’ 혹은 ‘2000명 정도 늘리면 의사들이 화를 내겠지. 그러면 선거 앞두고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겠지’라는 고려에서 이 숫자를 지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의사들은 비장하게 반대 투쟁에 나섰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의협을 중심으로 한 기성세대 의사들보다도 전공의·의대생들이 사직서를 내고 동맹휴학을 하며 전면에 서 있는 상황이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의대생:그 지점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봤다. 2020년에는 대전협(대한전공의협의회), 의대협 집행부에 나름의 리더십이 있었다. 지금은 사실상 강성 회원들, 각종 의사 커뮤니티의 극단적인 의견이 전공의·의대생들을 추동하고 있다. 의사 커뮤니티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 중에 ‘국평오’라는 말이 있다. 의사들만의 용어는 아니고 서울 명문대생들 사이에서도 많이 쓴다. ‘국민 평균 수능 5등급’의 준말이다. 우리는 일반인들보다 성적이 우수하다는 우월의식이 묻어 있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의사 커뮤니티에서 젊은 의사들은 ‘서평삼’이라는 말을 쓴다. 서울대 평균 3등급. ‘우리는 서울대보다도 공부를 더 잘해서 의대에 온 집단인데 감히 의사에게 도전을 해?’ 이런 정서가 깔려 있는 것이다. 네이버 뉴스에 이런 기사 떴으니 가서 댓글 달라고 좌표를 찍으면서도 ‘어차피 설명해도 못 알아들으니 키보드 배틀은 뜨지 말라’고 한다.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다. 너네 파업해서 장학금 600만원 잃어버리는 게 아깝냐. 2000명 증원 허용해서 앞으로 월 300만원 받으며 노예 생활 하고 싶냐’라는 글도 최근에 봤다. 그 뒤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초빙. 조건 세전 1억원’ 같은 의사 구인 광고를 붙여놓는다.
연봉 1억원이 박봉이라는 뜻인가?
의대생:그렇다. 적다는 뜻으로 올린 게시물이다. 그런데 소청과 전문의를 1억원에 구하는 곳이 요즘에 실제로 존재할까 싶다.
임승관:풀타임이 아니라 파트타임처럼 조건이 붙어 있는 특수한 사례일 것 같다. 일반적인 시장 가격은 그보다 두 배에서 세 배 정도 높다.
의대생:한편으로 에브리타임(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 같은 데에는 의사들을 조롱하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저 오만한 의사들 2000명 증원 빔 맞았네’ ‘의사들을 혼쭐내주는 대석열’ ‘미스터 알빠노한테 당했다’ 이런 말들이 오간다.
미스터 알빠노?
의대생:‘내가 알 바야?’라는 말에서 나온 온라인 용어인데 윤석열 대통령이 거침없이 의사들을 다루니까 속이 시원하다는 뜻이다. 그걸 또 캡처해와서 ‘국평오’들이 이렇게 떠드는 걸 보니까 화를 참을 수가 없다는 글이 의대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얼마 전 궐기대회에서 한 전공의가 “제가 없으면 환자도 없고, 당장 저를 지켜내는 것도 선량함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발언을 하더라. 의대 증원으로 갈등이 격해지면서 의사들의 멘탈리티에 새겨진 능력주의 담론이나 선민의식이 공개적으로 삐져나오는 순간들이 생기는 것 같다.
임승관:지금 이 상황이 정말로 위험하게 느껴진다. 주변에서는 싸움 구경 하듯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결적 구도가 격해지고 있다. 만약 전공의들이 병원의 필수 기능을 담보로 해서 이걸 막아낸다고 해도, 반대로 정부가 행정력을 동원하고 사법처리로 전공의들을 굴복시킨다고 해도, 저는 굉장히 절망스러울 것 같다. 어느 쪽이 승리하든 지금 상황에서는 젊은 의료인들이 사회와 고립된 채 배타적인 집단이 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 그런 결과물이 앞으로 한국의 보건의료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냥 고립시키고 따돌린 채 끝난다면 그들만의 상처겠지만 그 존재들이 고령화 시대에, 한국 의료 위기의 시대에 맡아야 할 사회적 책무가 있지 않나.
의대 증원에 대한 입장과 별개로,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이 정책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당사자가 되었다. 의사 양성에는 긴 시간이 걸린다. 의료인력 수급 정책은 10~15년을 내다보고 추진해야 한다. 의료인력 부족으로 인한 현상이 지금 드러나고 있다면 사실 최소 15년이 늦은 것이다. 그동안 의료인력 정책을 방기했던 관료들, 개혁적 담론과 추진을 방해해온 의협과 기성 의사들, 사회적 의제 형성에 게을렀던 언론, 이런 주체들은 뒤로 빠지고 바로 눈앞에 보이는 전공의·의대생들에게 화살이 집중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나? 정부에서는 엄정한 법 집행으로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의사 집단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지만 그것이 정말 책임 있는 자세인지 묻고 싶다.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을 이해해줘야 한다는 소리인가?
전공의:환자를 남겨두고 벌이는 대규모 휴진에 당연히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저 같은 입장에서 보더라도 전공의들이 표출하는 울분에 이해가 가는 지점이 있다. 박단 대전협 회장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인데, 이번에 사직서를 내면서 “지난 3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우울하고 불행한 시기”였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공감이 갔다. 의사 수가 부족한 상태에서 전공의들이 과중한 노동환경에 처해지고 감정적· 육체적으로 극한에 몰리면서 일종의 자기연민을 키우게 된다. 눌려 있던 감정이 증원 이슈처럼 큰 외부 자극을 계기로 폭발하는 것이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의국 선배가 있었다. 환자들에게도 극진하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분이었는데 2020년 파업 때 ‘분하다’는 표현을 쓰더라. 의사들이 너무너무 힘들지만 고생을 감내하는데 (정부와 사회에) 배반당했다는 것이다.
김동은:전공의들은 수련을 마치고 4년 뒤에 올 보상을 생각하면서 힘든 시간을 참고 견딘다. 의대 증원으로 그 보상이 불확실해진다고 여기니 분노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다. 사실 보상이 불확실해진다는 것도 불확실하다. 2000명을 늘린다고 해서 의사 수입이 얼마나 줄까. 상승세는 억제되더라도 지금 수준에서 크게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의대생이나 레지던트 시절에는 선배들로부터 워낙 그런 얘기를 많이 듣는다. ‘한국은 건보 수가가 정말 낮고, 진상 환자 때문에 힘이 들고, 사회는 의사를 인정하지 않고 욕만 한다. 과거 의사들만큼 대우를 받지 못한다.’ 일말의 진실과 과장이 섞여 있는 이런 얘기가 불안을 부추긴다.
의대 쏠림이 문제일 정도로 의사는 선망받는 직종이다. 의사 소득과 노동자 평균임금 사이의 격차도 매년 커지고 있다. 그런데 예전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고 불안하다니… 의사들의 인식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 아닌가.
김동은:다른 직종에 비해서 엄청나게 많은 소득을 올린다고 젊은 의사 선생님들이 느낄까? 별 감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단 전공의 시절이라 그렇기도 하고. 의대에 입학하기 위해 사교육비를 포함해, 부모의 조력, 개인의 노력, 시간 등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투자해야 하지 않나. 기대하는 보상의 수준도 높아졌을 것이다. 그렇게 의대에 오면 피부과나 성형외과 같은 인기 과에 가기 위해 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의대 내부에 경쟁 압력이 지금도 심한데 이대로 2000명이 늘어나면 학생들은 더욱 극심한 압박에 내몰리게 된다. 지금은 과별로 전공의 정원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조차 없이 의대 신입생 증원 숫자만 발표된 상황 아닌가. 의대생들의 반발에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임승관:왜 똑똑한 젊은이들이 현실을 오독하고 기성 의사들의 선동에 쉽게 휩쓸릴까? 의사, 의대라는 프레임으로만 접근하면 현상의 근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본다. 자본주의 경쟁체제의 작동 원리가 무엇인가? 불안이다. 이미 많은 걸 가지고 있어도 더 나은 무언가를 거머쥐지 못하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불안을 끊임없이 주입한다. 의대생·전공의들이 입시 경쟁에서 최상단의 열매를 땄다는 건 ‘불안 담론’을 깊이 내면화하고 승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불안에 취약한데 더욱 증폭돼 나타나는 거라고 본다.
젊은 의사들의 울분과 불안을 이해하더라도, 그것이 시민들의 건강과 생명이 점점 위협받는 상황에서 의사를 늘려야 한다는 사회적 필요보다 우선될 수는 없지 않나?
김동은:동의한다. 원칙적으로 의사 수는 사회 구성원들의 필요에 따라 늘리거나 줄일 수 있어야 한다. 국가는 면허제도를 통해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권한을 의사에게 독점적으로 부여한다. 대신 의사 인력의 수를 조절하는 역할도 역시 정부로 대변되는 공동체의 몫이다. 그것이 ‘의사 면허’를 둘러싼 사회계약이다. 의사들의 허락을 받고 의협이 동의해야 의사 수를 늘릴 수 있다는 일각의 인식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의사 집단을 설득하고, 협의하고,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일본에서도 의대 정원을 확대할 때 쉽지 않았다고 들었다. 갈등을 완화할 수 있었던 방법이 지역정원제였다. 전체 의대 정원을 통으로 늘리거나 줄이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에서 의료 수요에 따라 지역 내 의사 정원을 조정하고 지역에서 그만큼 의사를 더 배출하기 때문에 기존 의사들을 설득하고 반발을 줄일 수 있었다. 일본은 후생노동성 산하에 의사 인력을 꾸준히 추계하고 의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의사수급분과회도 두고 있다.
의사들에게 의대 증원을 설득할 방법이 있나? 2020년에 그랬듯 이번에도 의사들은 사실상 진료를 거부하며 결사반대를 하고 있다. 정원 확대를 관철하기 위해 어느 정도 강제성을 띠는 대응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힘을 얻는다.
의대생:설득이 다 되지 않을 거고, 설득을 다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처럼 민감하고 폭발력 있는 이슈를 추진할 때는 정책을 더욱더 섬세하고 세련되게 마련했어야 한다. 잘 짜인 계획을 들이밀어야 반대를 하더라도 그 동력이 작고 의사들이 파업을 해도 명분이 약해진다. 저는 의대생으로서 이 얘기를 꼭 하고 싶다. 갑자기 2000명 늘리는데 상식적으로 교육의 질이 그대로일 수 없다. 의대는 강의뿐만 아니라 병원 실습도 중요하다. 인원이 늘어나면 실습 현장이 붐비고 교육의 밀도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의대생들이 카데바(해부용 시신)를 충분히 배정받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 의대들이 적지 않다. 물론 카데바 실습이 의사 양성에서 절대적 요소도 아니고, 병원 실습을 돌 때 조금 더 붐비는 게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학생의 권리와 교육환경에 침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정부가 설득까지는 못하더라도 설명은 해야 한다. 지금은 그냥 박민수 차관(보건복지부 2차관)이 민방위복 입고 나와서 ‘문제없다’ 이런 식이지 않나.
김동은:제도가 잘 갖춰지고 교육 여건이 뒷받침된다면 2000명 이상 늘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국 의대에서 한꺼번에 신입생 2000명을 수용할 방법이 요원하다. 해부학, 미생물학 같은 기초과목 교수들은 지금도 부족하고 단기간에 늘리기도 어렵다.
정부는 지난 1년간 의료현안협의체를 28회 열어 의사단체 대표들과 논의를 이어왔다고 하는데.
임승관:협의를 하려면 정책이 있어야 한다. 의대 정원 확대는 단순히 직업인 한 명을 늘리고 줄이는 것을 넘어 의료산업의 재편성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초고령시대에 노인 의료와 돌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에 걸맞게 지역사회에서 통합적인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사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지역의 예방 가능한 사망을 줄이고자 한다면 70개 중진료권마다 튼튼한 2차 병원이 자리 잡게 하고 거기에 의사 인력을 공급할 세부 계획을 세워야 한다. 진보적 방향이든, 보수적 방향이든 간에 이러한 포괄적인 정책 구상이 지금까지 한 번도, 단 한 번도 마련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협의를 몇 번이나 했다’라는 것이 어떻게 형식적인 의미 이상을 가질 수 있겠나.
의대 정원 확대에 앞서 2월1일 정부가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한 바 있다. 5년 동안 10조원을 투입해 필수의료 수가를 높이고, 지방 국립대병원을 거점으로 지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김동은:의미 있는 내용도 있지만 ‘지역’의 ‘필수의료’에 종사할 의사를 양성하고 배치하는 데에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은 빠져 있다.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지자체에서 장학금·수련비용·임금 등을 보조하고 지역 필수의료기관과 장기근속 계약을 맺는 형태이다. 거의 유명무실해진 현재의 공중보건장학생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대책은 한 줄도 없다. 지역마다 의대를 신설하려는 움직임은 경계해야 하지만 세종시 같은 지역에 매년 300~500명 정도를 안정적으로 배출하는 ‘공공의대’ 설립은 필요하다.
임승관:우리가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는 게 핵심인 것 같다. 의사 수를 늘리면서 지금 정부가 말하는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같은 자율적인 방식을 도입하면 시장원리에 따라 서서히 지역에도 의사들이 채워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너무 오래 걸린다. 자연스러운 조정을 기다리기에는 지역의 필수의료 상황이 너무나 심각하다. ‘그전에 대한민국 보건의료 망합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의대 선발부터 일정 기간 지역 복무를 의무화하는 ‘지역의사제’ 같은 제도가 지금은 필요하다. 정부가 어느 정도 강제성을 띠고 추진해야 할 정책이 있다면 바로 이런 부분이다.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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