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시세] 우리나라는 윤동주 보유국… 3·1절과 그의 공간

차화진 기자 2024. 3. 1.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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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편집자주]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이 남다른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머니S는 Z세대 기자들이 직접 발로 뛰며 그들의 시각으로 취재한 기사로 꾸미는 코너 'Z세대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Z시세)을 마련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윤동주문학관 제1전시실에서는 시인의 일생을 사진으로 볼 수 있다. 사진은 방문객이 제1전시실 중앙에 위치한 우물 앞에서 도슨트의 해설을 듣는 모습. 사진=차화진 기자
3·1절이 되면 생각나는 시인이 있다. 시로서 일제에 맞선 윤동주 시인이다. 그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부끄러움과 자아 성찰을 시로 승화시킨 다수의 작품을 후대에 남겼다.

머니S는 3·1운동 105주년을 맞아 우리 말과 글을 지켰던 윤동주의 공간을 찾았다. 방문한 곳은 인왕산 자락에 있는 윤동주문학관과 연세대학교 핀슨관에 있는 윤동주기념관이다.

윤동주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우리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있다. 우리나라의 참혹한 역사와 그 안에서 멈추지 않았던 시인의 작품 활동이 고스란히 담긴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현재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시집의 원래 제목은 따로 있었다. 시인은 '이 나라 조국에는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 다들 환자다. 그 병을 나의 시로 치유해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제목을 '병원'으로 지었다. 실제로 시인의 육필 원고 표지에는 연필로 '병원'(病院)이라고 썼다가 지운 흔적이 있다. 그 흔적을 윤동주문학관(영인본)과 윤동주기념관(원본)에서 직접 볼 수 있다.



윤동주문학관… 버려진 물탱크 개조해 만든 공간


제3전시실은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를 영상을 통해 볼 수 있다. 사진은 제3전시실에서 영상을 시청중인 방문객. /사진=차화진 기자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정병욱과 함께 하숙생활을 하면서 종종 인왕산에 올라 시정을 다듬었다. 윤동주문학관은 인왕산 자락에 버려진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건물이다.

문학관에는 해설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문 해설사의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윤동주문학관 곳곳을 둘러볼 수 있다. 기자는 미리 해설 서비스를 예약하고 방문한 한 가족과 함께 해설을 들으며 문학관을 둘러봤다.

문학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우물과 시인의 작품·생애를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된 제1전시실이다. 이곳에서는 시인이 어린 시절 명동촌에서 살던 때부터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입학한 연희전문학교 시절, 그리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물일곱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시인의 삶을 느낄 수 있다.

김미자 도슨트(여·50대)는 "우물은 시인의 생가에 있던 우물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며 "'자화상'에 나오는 '우물'의 모티프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문을 열면 나오는 제2전시실은 버려진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공간으로 천장을 뚫어 하늘이 그대로 보이는 구조다. 층층이 남아있는 물때와 물탱크 안을 오르내리던 사다리 흔적도 그대로 남아있다. 마지막 제3전시실은 빛 한 점 안 들어오는 어두운 공간으로 그곳에서 시인의 일생과 시세계를 담은 영상을 시청한다. 도슨트는 "이 공간은 시인이 생을 마감한 후쿠오카 형무소를 연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말했다.

두 아이와 함께 문학관을 방문한 계혜림씨(여·40대)는 "윤동주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며 "아이들에게도 가르쳐 주고 싶어서 왔다"고 방문 이유를 전했다. 이어 "여기 오기 전에 유튜브로 시인의 일대기를 봤는데 시인이 어떻게 사망했는지 오늘 처음 알았다"며 "학교 다닐 때는 이렇게까지 배우지 못했는데 슬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조용히 시인의 친필 서명을 보고 있던 박춘식씨(여·60대)는 "윤동주 시인은 학교에서 배운 것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며 "그때는 (시를) 외워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몰랐는데 여기 와서 보니까 뭔가 절절해지고 시인의 고뇌를 더 잘 느낄 수 있었다"고 문학관 방문 소감을 밝혔다.

박씨는 "이걸 보라"며 윤동주의 친필 서명을 가리켰다. 그는 "서명이 굉장히 현대적이지 않나"라며 "시인이 만약 살아계셨으면 지금 할아버지인데 필체가 요즘 사람도 쓸 수 있을 정도로 트렌드에 맞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윤동주기념관… 평범한 대학생 기숙사의 변신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핀슨관은 2020년 12월부토 윤동주기념관으로 재탄생했다. 사진은 윤동주 시인의 기숙사 방을 재현해놓은 전시실. /사진=차화진 기자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이다. 윤동주기념관은 시인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추념하는 공간으로 시인이 실제 생활했던 기숙사 건물인 핀슨관에 마련됐다. 총 3개의 층으로 구성됐으며 모든 상설전시실의 이름은 윤동주 작품 제목에서 따왔다.

기자는 기념관도 도슨트와 함께 둘러봤다. 1층은 윤동주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시인의 삶을 펼쳐놓은 전시실이 있다. 시인의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은 자료들이 서랍장에 담겨 전시됐다.

김나림 도슨트(여·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재학생)는 "전시실을 서랍형으로 구성한 이유 중 하나는 정해진 메시지만 주는 게 아니라 관람객 마음 안에 있는 그들만의 윤동주를 다 열어보게 만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빛과 소리를 통해 시인을 더 느낄 수 있는 미디어아트 공간도 있다. 시인의 유족이 고향 마을, 생가, 학교, 묘소 등에서 직접 녹음해 온 소리가 들린다. 그 옆에는 1938년 7월25일, 1학년 여름방학을 맞아 귀향을 준비하던 시인의 방을 볼 수 있다. 책상 위에는 여행을 떠나기 위한 기차표와 시를 쓰기 위한 펜과 종이 등이 놓여있다. 책상에 앉아 시를 구상했을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2층을 지나 3층으로 향했다. 도슨트는 창문을 가리키며 "윤동주 시인도 이 자리에 앉아서 여기 있는 창문 밖을 바라봤다"고 말했다. 기자도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시인이 봤을 풍경을 떠올렸다.

해설이 끝난 후 아이들과 자유 관람을 하던 백영미씨(여·40대)는 "아이가 3·1절과 독립운동가를 확실히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에 경상북도 구미에서부터 올라왔다"며 "기념관 오기 전에는 시 잘 쓰는 시인으로만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보니까 시인이 글을 쓰면서 고민했을 것들이 더 잘 느껴진다"고 말했다.



"윤동주는 매우 따스한 사람"… 시인의 이야기 건네는 도슨트


윤동주기념관은 유족들이 기증한 시인의 육필원고와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은 도슨트의 해설을 듣고 있는 방문객. /사진=차화진 기자
윤동주문학관과 윤동주기념관은 전시 관람을 돕기 위해 도슨트가 상주하고 있다. 문학관에서 4년째 도슨트를 담당하는 김미자씨는 "방문객들이 아침부터 와서 내 해설을 듣고 '모르는 걸 많이 알게 돼 감사하다'고 인사해주실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윤동주 시인이 다양한 연령층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묻자 그는 "윤동주의 시는 섬세하고 마음에 와닿는다. 시를 읽으면 가슴이 트이는 기분도 든다"고 답했다.

지난 2020년부터 현재까지 도슨트를 맡고 있는 김나림씨는 "윤동주 시인을 정말 좋아해서 도슨트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등학교 때 입시 스트레스로 힘들 때 모의고사를 풀다가 시인의 '쉽게 쓰여진 시'를 보게 됐는데 공감이 되고 위로를 받았다. 볼수록 시인의 끊임없이 나아가려는 삶의 자세가 멋있어서 좋아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를 묻자 그는 "말썽꾸러기 중학생 친구가 온 적이 있다. 마지막 전시실에서 해설하는데 그 친구가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 시인의 삶이 내 목소리를 통해 잘 전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되짚었다.

기자는 윤동주문학관과 윤동주기념관을 방문하며 우리말이 억압받는 참혹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펜으로나마 꾹꾹 눌러 담았을 시인의 심정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다.

문학관은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기념관은 매주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운영한다. 도슨트 해설은 오후 1시와 오후 2시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두 곳 모두 무료로 운영된다.

차화진 기자 hj.cha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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