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 동료 이주노동자 돕다가 징역…“선처를 바랍니다”

이주노동자 태운 출근버스 운전
불법체류자 단속반이 막아서자
“살려주세요” 외침에 후진하다 사고

29일 오전 대구시 서구 커다란숲교회에서 동료 이주노동자를 돕다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김아무개(42)씨의 석방을 요구하는 기도회가 열렸다. 김규현 기자

지난해 8월25일 아침 7시25분 김승주(가명·42)씨는 평소처럼 출퇴근버스를 몰고 대구시 달성군에 있는 직장으로 향했다. 김씨 직장은 자동차부품 생산업체로 생산직과 사무직을 포함해 전 직원이 50명이 채 되지 않는 중소기업이었다. 당시 버스에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36명이 타고 있었다. 공장 앞 다리에 이르렀을 때 단속복을 입고 선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직원들이 보였다. 승합차 2대와 세단 1대에 나눠 탄 출입국 직원들은 김씨가 모는 버스의 앞뒤를 막은 뒤 정차시켰고, 곧이어 ‘불법체류 외국인 단속 업무’를 진행 중임을 고지했다.

그때 버스 뒷자리에서 다급하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과장님 도망가세요.” 놀란 김씨는 동료들이 곤경에 빠졌다는 생각에 급하게 차를 후진시켰다. 이 때문에 버스를 막고 있던 출입국사무소 차량이 일부 파손되고 단속 직원 11명이 전치 2∼3주의 상처를 입었다. 김씨는 현행범으로 체포된 뒤 구속됐고, 버스에 타고 있던 이주노동자 가운데 34명은 현장에서 붙잡혀 본국으로 추방됐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1심 재판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29일 오전 대구시 서구 커다란숲교회에서 김씨의 석방을 요구하는 기도회가 열렸다. 김씨의 소식은 지난달에야 지역사회에 알려졌는데, 대구경북이주연대회의가 탄원서를 모은 지 2개월여 만에 2천명 넘게 동참했다. 김씨가 이 회사에서 20년째 일해왔고, 가계에 보태려고 출퇴근버스 운행까지 도맡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대구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박성민 목사는 이날 기도에서 “출입국 직원들이 버스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막아선 순간 버스 안에서는 동료 이주노동자들의 살려달라는 울부짖음을 들었을 때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김씨는 2016년 한 공장 이주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붙잡혀간 일 때문에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사건 당시에는 동료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12월 대경이주연대회의는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 추방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민주노총대구본부 제공

연대회의는 “김씨가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은 맞지만 이 일로 김씨가 이득을 취한 것도 없으며 피해자와 피해 차량에 대한 보상도 진정성 있게 했다. 부디 김씨가 일상으로 돌아가 본인의 행동을 뉘우치며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항소심 변호를 맡은 손나희 변호사는 “공무원 다수를 다치게 해 양형이 가중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사람을 도우려던 사람에게 징역 3년형은 가혹하다. 집행유예 정도로 선처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주민 인권 단체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명숙 이주와 가치 대표는 “지난해부터는 사업장을 벗어나 병원, 시장, 예배당 등을 가리지 않고 일상적인 생활공간까지 들어와 무리하게 강제 단속이 벌어지고 있다. 출퇴근버스를 막아서는 것 또한 매우 비인간적이고 위험한 방식이다. 버스 안에서 극단적인 사고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김씨의 2심 첫 공판은 오는 6일 대구고법에서 열린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