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왜 네 차례의 전쟁을 피하지 못했던가 [책&생각]

한겨레 2024. 3. 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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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30년 전 청일전쟁(1894년)이, 120년 전 러일전쟁(1904년)이 한반도에서 벌어졌다.

그는 '러일전쟁의 세기'에서도 특유의 연쇄라는 시각으로 어째서 일본이 러시아와 싸우게 되었는가 하는 역사적 배경에 대해 입체적으로 살피고 있다.

그는 개항 이후 일본이 어떤 국제체제 또는 상황 속에 놓였는지, 어떻게 대처했기에 청일전쟁을 거쳐 러일전쟁, 더 나아가 태평양전쟁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관해 세계사적 시각으로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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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청일전쟁 때 벌어진 평양 전투의 모습을 정치적으로 선전할 목적으로 그린 일본 작가 미즈노 도시가타의 판화. 위키미디어 코먼스

러일전쟁의 세기
연쇄시점으로 보는 일본과 세계
야마무로 신이치 지음, 정재정 옮김 l 소화(2010)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 청일전쟁(1894년)이, 120년 전 러일전쟁(1904년)이 한반도에서 벌어졌다. 야마무로 신이치 일본 교토대학 명예교수는 ‘연쇄’란 관점을 통해 일본과 세계, 아시아가 관계 맺는 방식과 의미에 대해 연구해왔다. 그는 ‘러일전쟁의 세기’에서도 특유의 연쇄라는 시각으로 어째서 일본이 러시아와 싸우게 되었는가 하는 역사적 배경에 대해 입체적으로 살피고 있다. 그는 개항 이후 일본이 어떤 국제체제 또는 상황 속에 놓였는지, 어떻게 대처했기에 청일전쟁을 거쳐 러일전쟁, 더 나아가 태평양전쟁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관해 세계사적 시각으로 조망한다.

1855년 에도 막부와 러시아 제국은 화친조약을 맺는다. 조약 체결을 위해 방문한 러시아 특파대사 푸탸틴이 승선한 군함 디아나호가 도카이 앞바다에서 사고로 침몰하자 일본은 러시아와 협력해 그 대체함으로 헤다호를 건조한다. 이 선박은 일본이 만든 최초의 서양식 범선이었다. 러·일수호 1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푸틴은 이 사건이 양국의 오랜 우호 관계를 증명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국은 화친조약 반세기 만에 전쟁을 벌였다.

아마존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서 허리케인의 원인이 되듯 1891년 러시아가 프랑스로부터 차관을 얻어 건설하기 시작한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일본에 거대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당시 세계 제일의 강력한 육군을 보유하고 있던 러시아가 영국 제해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육로를 이용해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 더 나아가 국제 질서에도 커다란 변동과 충격을 가져올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일본은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완공되기 전에 러시아와의 일전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치밀하게 준비했다.

1905년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일본이 러시아에 승리하자, 아시아 각국의 식민지 해방운동 세력은 일본의 승리를 더불어 축하했다. 그러나 전후 미국과 일본이 맺었던 가쓰라-태프트 밀약, 영일동맹이 상징하듯 일본은 서구와 서로의 식민지 이권을 보장해주는 대신 아시아 민족독립운동 세력을 압박하는 또 하나의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 한때 일본의 승리를 격찬했던 인도의 네루 역시 “한 줌의 침략제국주의 집단에 또 다른 한 나라를 덧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비판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조선만이 아니라 인도, 베트남, 중국, 필리핀의 적이 되었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1945년 8월, 일본은 러시아와 한반도에서 다시 한 번 격돌했다.

신이치 교수는 스스로 군국주의 길을 향해 나아갔던 일본의 대처와 변화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이를 통해 반성을 촉구한다. 그러나 이들의 반성이나 성찰과 무관하게 우리 입장에서 보면, 청일전쟁에서 러일전쟁, 태평양전쟁 그리고 한국전쟁에 이르는 네 차례의 전쟁 중 세 번은 일본이 일으켰고, 나머지 한 번의 전쟁도 일본이 그 원인 제공자였다. 불행히도 그 네 차례의 전쟁에서 우리는 늘 피해자였다. 세계정세가 요동치고 있는 이즈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어째서 이 네 번의 전쟁을 피하지 못했는가? 지금의 우리는 앞으로 닥쳐올지 모를 위기에 제대로 대비하고 있는가?

당시 조선의 엘리트들은 국제관계에 어두웠고, 기득권에 안주해 변화를 두려워했다. 고종 황제는 처음엔 청에 의탁해 외세를 끌어들였고, 그다음엔 러시아, 마지막엔 미국에 의지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민중과 손잡지 않았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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