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구가 이웃을 걱정하는 진짜 이유 [책&생각]

한겨레 2024. 3. 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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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그 대신 내가 잘 아는 것도 있다. 그건 바로 내 이웃들에 대한 사소한 정보다."

문학이란 주인공이 겪는 갈등에 관한 이야기인데 태구는 자기가 아니라 이웃에 관해 말하겠다고 한다.

이웃의 사연이 소개되며 태구의 추리 실력도 발휘된다.

태구는 이웃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살피다 보니 모르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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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태구는 이웃들이 궁금하다
이선주 지음, 국민지 그림 l 주니어RHK(2023)

“나는 인생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그 대신 내가 잘 아는 것도 있다. 그건 바로 내 이웃들에 대한 사소한 정보다.”

책을 펼치면 주인공 태구는 이런 말로 포문을 연다. 문학이란 주인공이 겪는 갈등에 관한 이야기인데 태구는 자기가 아니라 이웃에 관해 말하겠다고 한다. 이 뜻밖의 선언이 도리어 ‘뭔가 있구나’ 하는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의외로 동화 속 설정이나 인물의 상황은 코믹했다. 물론 태구가 독자에게 큰 웃음을 주겠다고 작정하고 나선 건 아니다. 할머니와 아빠 그리고 이웃의 모습을 본 대로 들은 대로 풀어내는데 거기서 웃음이 나왔다. 죽을 힘을 다해 연기하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고 있을 때처럼 말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할머니는 자나 깨나 엄마 없이 자라는 태구 걱정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렇게 걱정하면서도 지갑에서 만 원 이상을 꺼내주지 않는”다. “엄마 없이 자라는 슬픔은 적어도 만 원은 된다” 싶은데 말이다.

이웃의 사연이 소개되며 태구의 추리 실력도 발휘된다. 추리 요소를 더한 새로운 형식의 동화인가 싶었다. 작가의 전작 ‘맹탐정 고민 상담소’(전 3권)도 청소년의 고민과 자아 찾기를 추리라는 당의정으로 입힌 작품이었다. 명탐정 태구의 이야기인가 싶을 만큼 708호 아줌마의 층간 소음 불만과 810호 할아버지의 실종에 관한 관찰과 추리는 셜록 홈스 못지않았다.

한데 점점 태구 가족의 이상한 점이 드러난다. 태구는 이웃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살피다 보니 모르는 게 없다. 할머니는 누구 남편, 누구 월급, 누구 며느리 등 이웃 걱정을 시도 때도 없이 한다. 말수가 적은 아빠도 매일 야구 선수 걱정을 한다. 7연패를 당한 야구팀 생각에 얼굴이 흙빛이 된다. 하지만 정작 810호 할아버지가 고독사했을 때 할머니도 아빠도 슬퍼하지 않았다. 어쩌면 태구 가족의 걱정이란 현실을 눈감는 도피이자 투사일 뿐 진실이 아니었던 거다. 작품의 백미는 마지막 챕터다. 지금까지는 태구의 시선으로 이웃을 관찰했다면 갑자기 화살이 태구에게로 돌아온다.

인류학자 데스먼드 모리스는 ‘털 없는 원숭이’에서 웃음이 실제로 울음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웃음이라는 게 진짜로 웃을 만했을 때 나오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책장을 덮을 때면 이 작품 속에서 비어져 나온 유머 역시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태구는 할머니와 아빠와 복도식 아파트에 산다. 엄마는 집을 나갔고 본 지 오래다. 태구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원에도 다니지 않는다. 그저 이웃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낸다. 태구의 진실이다. 마지막에 태구는 이렇게 털어놓는다. “내가 진짜 걱정하는 건 나 자신이다. 나는 내가 너무 걱정돼서 이웃들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린이의 삶이라고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어린이에게도 내보일 수 없는 이면이 있다. 어른이 어떤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 어린이는 모두 보고 있으니까. 초등 고학년.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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