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작가 루쉰은 ‘메이지 일본’ 속에서 태어났다

최원형 기자 2024. 3. 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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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중국 잡지 '신청년'에 '루쉰'이란 필명을 쓰는 작가가 단편소설 '광인일기'를 발표했다.

중국 근대문학 연구자 리둥무(李冬木·일본 불교대학 교수)의 논문 11편을 묶은 '루쉰을 만든 책들'은 '루쉰 이전' 저우수런의 독서 이력을 통해 일본 메이지 시대가 그에게 준 영향을 파고든다.

이처럼 애초 서양에서 메이지 일본으로 온 여러 자원들이 저우수런의 '가져오기주의'를 통해 취재원으로 선택됐고, 최종적으로 작가 루쉰과 '광인일기'의 탄생으로 이어졌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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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학 시절 루쉰의 모습. 바이두 갈무리

루쉰을 만든 책들(상)
메이지 일본과 진화·개인·광인
리둥무 지음, 이보경·서유진 옮김 l 그린비 l 3만6000원

1918년 중국 잡지 ‘신청년’에 ‘루쉰’이란 필명을 쓰는 작가가 단편소설 ‘광인일기’를 발표했다. 중국 현대문학 최초의 작품, 그리고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의 탄생이었다. 루쉰에 관한 연구는 그 뒤로 두텁게 쌓여갔지만, 일본 유학생 저우수런(周樹人)이 어떻게 ‘루쉰’이 되었는지, 또 그의 첫 작품이 왜 ‘식인’과 ‘광인’에 대한 것이었는지 그다지 뚜렷하게 제시되지는 못했다.

중국 근대문학 연구자 리둥무(李冬木·일본 불교대학 교수)의 논문 11편을 묶은 ‘루쉰을 만든 책들’은 ‘루쉰 이전’ 저우수런의 독서 이력을 통해 일본 메이지 시대가 그에게 준 영향을 파고든다. 소장한 책의 절반이 외국어책이었고 스스로 ‘가져오기주의’(拿來主義)를 말했을 정도로 루쉰은 외래 사상을 적극적으로 ‘참조’하고 ‘모방’함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특히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지식계에서 벌어졌던 여러 사상적 사건들이 유학 중이던 루쉰에게 깊은 영향을 줬다며, ‘진화’ ‘개인’ ‘광인’의 열쇳말로 이를 탐색한다.

‘진화’에 대한 루쉰의 생각은 옌푸(嚴復)의 번역서 ‘천연론’(天演論)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으나, 지은이는 일본의 정치학자 가토 히로유키의 책을 중국어로 번역한 ‘물경론’(物競論)과 일본의 생물학자 오카 아사지로와 그의 책 ‘진화론 강화’의 영향을 짚어낸다. 오카는 생물진화론과 사회사상을 합치시키고, ‘도중’·‘중간’이란 개념을 제시하여 진화의 차원에서 인간의 위치는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일 뿐이라고 봤다. 지은이는 오카의 진화론이 ‘현재 없는 장래’는 믿지 않는 루쉰 특유의 현실주의적 태도에 영향을 줬다고 주장한다. 다만 일본의 진화론자들이 국가 단위로 일치단결하여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을 진화의 최우선 과제라고 본 반면, 약자의 입장이던 루쉰은 “하늘과 싸워 이기기 위해” ‘사람을 세우는 일’(立人), 곧 개인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한다.

일본의 생물학자 오카 아사지로. 지은이는 오카가 루쉰의 진화론 이해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일본국회도서관 누리집 갈무리

‘개인’의 문제에서 루쉰은 니체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는데, 지은이는 이 또한 ‘직수입’이 아니라 일본 지성계를 경유한 수용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국가주의에 빠져들던 일본의 메이지 지식인들은 니체의 사상이 국가 체제에 위협이 되는 ‘개인주의적 이기주의’라 비난하고 경계했다. 여기에 맞서 일부 지식인들이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일종의 ‘방법’으로서 니체를 활용했고, 이는 루쉰이 니체를 윤리적 차원에서 개인주의로 수용하는 데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막스 슈티르너, 헨리크 입센 등을 ‘절취’하여 수용하는 데에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광인일기’에 나타나는 ‘광인’과 ‘식인’에서도 메이지 일본의 영향을 찾는다. 식인은 근대 학문의 수입과 함께 일본에서 관심사로 떠올랐고, 이는 ‘지나인이 인육을 먹는 풍습’에 대한 거론을 거쳐 ‘국민성’의 문제와도 연관됐다. 니체 수용에 대한 논쟁에서 니체를 ‘개인주의적 이기주의’라 비판했던 이들은 ‘광인’으로서 니체의 형상을 강조했다. 반면 니체를 옹호하는 이들은 광인을 아예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라 풀이하는 가치 반전을 시도했고, 루쉰 역시 이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애초 서양에서 메이지 일본으로 온 여러 자원들이 저우수런의 ‘가져오기주의’를 통해 취재원으로 선택됐고, 최종적으로 작가 루쉰과 ‘광인일기’의 탄생으로 이어졌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루쉰을 만든 책들을 ‘국민성’ 개념으로 짚어보는 ‘하’ 권은 내년께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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