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 성터에 지금은 한일 교류 유물 전시한 박물관
“한일 관계는 다섯 시기로 나눌 수 있어요. 첫째는 한반도와 일본의 만남이 있었던 선사 시대, 둘째는 여몽 연합군의 일본 정벌과 임진왜란·정유재란으로 대표할 수 있는 적대 시기입니다. 그다음 양국은 조선 통신사 등을 통해 공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우리나라에서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며 다시 대립 시기가 됐죠. 그리고 현재는 재회 시기입니다.”
손승철 강원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18~22일 일본 후쿠오카·오사카·교토 일대에서 열린 제46회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에서 이렇게 말했다. 1987년 시작한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은 잘못된 한·일 관계사를 바로잡고 한·일 고대사를 올바르게 이해한다는 취지로 37년째 이어지고 있다. 조선일보가 주최하고 신한은행이 협찬한 이번 행사에는 미래 세대를 가르치는 현직 초·중·고 교사 173명이 참가했다. 손승철 교수와 서정석 공주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가 현장 해설을 맡았다.
탐방 첫날인 18일 규슈 사가현 가라쓰시(唐津市)와 겐카이초(玄海町)에 있는 일본 특별 사적 나고야(名護屋) 성터를 찾았다. 이곳은 전국시대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1592년 임진왜란을 앞두고 세운 전초 기지다. 이곳에서 20만명 넘는 병사가 조선으로 건너갔고, 나고야에 머문 병사도 10만명이나 됐다. 결과는 참혹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합쳐 7년간 계속된 전쟁에서 조선인 약 200만명이 사망했다. 당시 인구 5명 중 1명꼴이었다. 성터 위에서 설명을 듣는 교사들 사이에선 안타까움의 탄식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양국은 불행한 역사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1993년 성터 바로 옆에 들어선 나고야성 박물관이 그 증거다. 박물관에는 신라 금관, 백제 반가사유상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유물의 복제품이 일본 현지 출토품과 함께 전시돼 있다. 과거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과 교류 흔적을 통해 미래 한·일 관계의 교훈을 얻자는 취지다. 박물관 안내서에는 ‘원시·고대부터 지속돼온 (한·일) 교류의 역사와 그 가운데서 불행한 전쟁의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향후 교류·우호의 방향을 찾아내길 바란다’고 적혀 있었다.
시모노세키(下關)에서는 소통과 단절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통신사는 이곳 시모노세키를 거쳐 일본에 들어와 배를 타고 오사카로 향했다. 9개월에 걸친 여정이었다. 통신사 행렬이 처음 발을 디딘 자리에는 조선통신사 상륙 기념비가 세워졌다. 기념비에서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통신사가 숙소로 사용한 아카마 신궁이 있다. 신궁 바로 옆에는 아이러니하게도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은 청일강화기념관이 있다. 시모노세키 조약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 지배권을 확고히 한 강화 조약이다. 대구 협성고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박진욱(46) 교사는 “교사가 역사 현장을 직접 보고 가르치는 것과 그러지 못하는 것은 수업의 질에서 천지 차이”라며 “청일 강화기념관에서 찍은 시모노세키 조약 원문과 담화 장소 사진은 수업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교사들은 이번 탐방에서만큼은 학생으로 돌아가 열심히 배우고 적고 사진을 찍었다. 서울 중경고 하현숙(55) 교사는 일본 야요이 시대(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 일본의 청동기·철기 시대)를 재현한 요시노가리 유적에서 “다음 학기 학생들에게 여기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면 일본 고대사와 청동기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열심히 들었다”고 했다. 서울 문백초 박찬규(53) 교사는 탐방 기간 드론을 동원해 영상을 10여 편 찍었다. 박 교사는 “현장과 유적 전경을 보여주면 아이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어진다”며 “탐방 내내 영상을 찍을 생각에 무척 들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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