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北주민의 유일 희망… 김정은이 거부해도 계속 메시지 내야”
지금 왜 다시 ‘통일’인가.
북한 김정은이 연초 한국을 ‘동족 아닌 교전 중인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교류·통일을 위한 조직과 제도를 모두 폐지하면서 국내 일각에서도 “우리도 이참에 차라리 남북 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정립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통일 폐기’ ‘두 국가론’ 입장을 고수할수록 우리 정부가 북한 주민들을 향해 통일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고 국제사회에도 우리 정부의 통일 의지와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종북 진영이 혼란에 빠진 지금이 자유 민주 진영이 통일 담론을 주도할 기회이자 적기라는 것이다. 동족 개념을 버리는 것은 위헌일 뿐 아니라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통일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패착이기도 하다.
통일부 차관을 지낸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은 29일 본지 통화에서 “통일은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미래이고 북한 정권 아래 억압받는 북한 주민들에게 유일한 ‘희망’”이라며 “북한 주민들에게 그들도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나라에 살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고 우리와 같은 동포이고 민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정부의 지속적인 메시지 발신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 원장은 “국제사회와 주변국을 상대로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에 대한 우호적 입장과 협조를 끌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북한 체제에 큰 변화가 생길 경우 한국 정부의 입장이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도록 해놔야 우리가 통일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 통일 공감대 확산을 위해 정부가 더욱 공세적인 대북 정보 유입 정책을 펼쳐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은 “통일은 결국 대북 문화·정보 전쟁에서 결판날 것”이라며 “효과가 제한적인 대북 전단이나 확성기보다 대북 방송 채널을 확 늘리고 콘텐츠 질도 끌어올려서 북한 주민들이 바깥세상 소식을 접하고 지금보다 나은 삶이 있다는 걸 알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천 전 수석은 “북한 김정은이 ‘두 국가론’을 들고나온 건 한국이 주도하는 흡수 통일을 피하려고 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며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더욱 공세적 대북 정보 유입을 강화해 북한 주민들의 민심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1980년대 주사파 ‘대부(代父)’였던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도 “북한 주민들은 통일을 원하고 웬만한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 몇 편만 봐도 통일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며 “북한 정권의 민심 기반을 흔들려면 정부가 공세적 통일 입장을 계속 표명하고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평화 통일 추구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해야 한다”고 했다. 김 연구위원은 “김정일 시절부터 북한은 남북 두 국가 체제를 주장하고 싶어 했으나 6·25를 경험한 군 간부가 많아 이들 눈치를 봤어야 했다”며 “북한이 김일성·김정일 때 (남북이) 한민족임을 강조한 건 남한에 대한 적화 통일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는데 지금은 북한 주도의 무력 통일이 어려워진 상황이니 ‘두 국가론’을 들고나와 수비 태세로 바꾼 것”이라고 했다.
북한 김정은의 ‘통일 거부’ 입장으로 그간 북한 체제 입장에 동조해 온 국내 일부 종북 세력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김 연구위원은 “범민련이 얼마 전 해산하면서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했는데 이제 이런 주장도 안 먹힐 것”이라며 “남북이 두 국가 관계면 다른 나라에 주한 미군이 있든 없든 상관할 일도 아니고 범민련을 비롯한 친북 세력이 김정은의 반(反)통일 선언에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독일 통일을 교훈 삼아 차제에 대북·통일 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독일 주재 공사로 독일 통일을 지켜본 염돈재 전 국정원 1차장은 “역대 정부는 남북 간 화해·협력에 중점을 둔 대북 정책을 펼쳐왔다”며 “이는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의 동방 정책 이후 대폭 강화된 동·서독 교류 협력이 독일 통일에 미친 영향을 과대평가하고 서독 기민당의 ‘힘의 우위’ 정책이 미친 영향은 과소평가한 결과”라고 했다. 그러면서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독에 경제 원조를 제공하면서 점진적 통일을 주장한 사민당 정책대로 했다면 독일 통일은 훨씬 지연됐거나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염 전 차장은 “서독이 동독의 ‘두 국가론’에 말려들지 않은 독일 경험에 비추어 북한이 두 국가론을 주장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정통성 유지와 통일을 위해 한국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입장은 반드시 고수해야 한다”며 “향후 대북 정책 초점은 북한 주민의 인권 보호와 북한 내 외부 정보 유입 및 확산에 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북한의 김씨 왕조와 북한 주민을 분리해 북한 정권을 군사적 적대 대상으로 삼더라도 북한 주민은 포용하고 지원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랙터 행진’ 전국농민회총연맹, 경찰과 대치 계속…”밤샘 농성할 것”
- 이적, 전람회 출신 故서동욱 추모 “모든 걸 나눴던 친구”
- 선관위, 현수막에 ‘내란공범’은 OK…’이재명 안 된다’는 NO
- 독일서 차량 돌진, 70명 사상…용의자는 사우디 난민 출신 의사
- 전·현직 정보사령관과 ‘햄버거 계엄 모의’...예비역 대령 구속
- ‘검사 탄핵’ 해놓고 재판 ‘노 쇼’한 국회…뒤늦게 대리인 선임
- “너무 싸게 팔아 망했다” 아디다스에 밀린 나이키, 가격 올리나
- 24년 독재 쫓겨난 시리아의 알-아사드, 마지막 순간 장남과 돈만 챙겼다
- 검찰, 박상우 국토부장관 조사...계엄 해제 국무회의 참석
- 공주서 고속도로 달리던 탱크로리, 가드레일 추돌...기름 1만L 유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