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4월 총선 일꾼 선택의 기준

이동현 평택대 총장 2024. 3. 1. 03: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탈레브 ‘스킨 인 더 게임’, 결과 책임지는 태도 강조
시스템 공천에 의문 여전…공익 챙기는 후보 뽑아야
이동현 평택대 총장

‘블랙스완(black swan)’으로 유명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제시한 ‘스킨 인 더 게임(skin in the game)’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원래 이 표현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안토니오가 저당으로 잡힌 살점 1파운드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워런 버핏 회장이 처음 펀드를 만들 때 썼다는 얘기도 있고, 아메리카 인디언이 동물의 가죽을 두고 내기를 한 데서 비롯됐다는 말도 들린다.

탈레브는 이 용어를 어떤 경기에 임하면서 일어나는 비용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으로 제시한다. 어떤 게임에서 자신의 돈이 걸려야만 게임의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과 선택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다. 그러나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회가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행동은 하지 않고 말만 하고, 결과가 어찌 되든 자신은 책임이 없는 사회에서는 언제든 블랙스완이 닥칠 수 있다.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외치는 정치인과 교수, 시민운동가가 자신의 주장과 구호에 책임을 지는 사례를 목격한 적이 있는가. 이들이 말만 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실제 거주지를 확인하면 알 수 있다. 말과 글로 ‘지방’을 외치는 많은 지도자급 인사가 실제 거주는 서울 등 수도권에 하고 있다면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이러니 역대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지역균형발전을 외치지만 지방은 갈수록 위축돼 지금은 소멸되어 가고 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인구 330만 명의 부산은 행정적 개념에서 보면 2등이지만, 경제적·생활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경기 남부에 모여있는 수원 120만 명, 용인 110만 명, 화성 100만 명을 합치면 부산의 인구와 똑같다. 여기에다 성남 92만을 합치면 부산을 뛰어넘는 422만 명이 된다.

지방대학의 미래를 걱정하고 교육정책을 비평하는 많은 교수와 전문가도 자신은 서울에 거주하고, 자녀들은 해외에서 유학하고 있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이 지방대학의 발전과 우리 교육의 미래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한다고 믿기는 쉽지 않다. 지방이 계속 소멸의 길을 걸어도, 교육정책이 잘못된 길로 가도 이들은 아무런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전 아시안컵에서 축구 대표선수들 간의 몸싸움으로 시작된 ‘탁구게이트’에서 확인된 클린스만 전 감독의 행동과 태도가 그렇다. 항상 웃는 표정에 말투도 또랑또랑한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에 잠시 있다가 미국과 유럽으로 떠나고 대표팀 감독도 ‘알바’ 같이 한다는 비난이 쏟아져 나온다. 게임에 스킨(skin)이 없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당이 공천파동을 겪고 있다. 진영과 파벌로 분열되어 시끄럽기 짝이 없다. 시스템 공천을 내걸고 있지만 불복과 탈당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을 위한 일꾼을 내세우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승리를 위한 정치공학적 셈법이 앞서는 듯하다. 어쨌든 공천이 끝나면 유권자의 시간이다. 그렇다면 4월 총선에서 누구를 뽑아야 할 것인가. 선택 기준은 스킨 인더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말이 아닌 행동하는 후보, 타인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는 후보, 결과에 책임을 지는 후보를 찍어야 한다.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우선하며,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공익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인물이다. 이런 후보를 찾기는 쉽지 않겠지만, 근접한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겠다.

첫째, 다른 이들에 기대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후보는 뽑아서는 안 된다. 자기 이익은 챙기면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타인을 비난하고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은 국민의 대표가 될 자격이 없다.

둘째, 편한 길이 아닌 리스크에 도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독재에 저항하거나 지역주의에 맞서는 리스크를 감당한 인물이 대통령이 된 사례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역사는 전쟁에 직접 출정해 목숨을 내놓고 적과 싸우는 고난의 길을 걸은 리더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셋째, 사적 관계를 단절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정치 지도자에게는 사적 소유를 제한하고 심지어 아내도 공유해야 한다고 했다. 가족이 있으면 사적인 정에 이끌려 공익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에서는 정치가로서 공직에 나가려고 할 때는 친구와의 관계를 다 끊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넷째, 좋은 평판과 세간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안 된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는 대신 스스로 일해서 잘 되면 이익을 가져가고, 잘 되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사람이어야 한다. 평가에 신경을 쓴다면 그것은 현재의 평판이 아닌 미래의 평가가 되어야 한다. 4월 10일 선거는 ‘스킨 인 더 게임’을 기억하는 날이 되도록 하자.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