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명의 오션 드림] 부산항, 글로벌 물류 허브 플러스 알파
파나마운하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수로로, 수에즈운하와 더불어 세계 해상 교통망에서 가장 중요한 운하다. 구간별로 높낮이 차를 가진 도크 시설을 만들고, 도크 별로 물을 채웠다 빼는 방식으로 운하와 해수면의 높이를 순차적으로 맞춰가며 선박을 이동시킨다. 도크를 채우는데 필요한 물은 가툰 호수라는 육지의 인공 호수에서 끌어다 쓴다.
작년 10월 73년 만의 대가뭄으로 가툰 호수의 물이 말라 버렸고, 운하는 정상 운영되지 못했다. 하루 선박 통행량을 31척에서 18척까지 제한하는 방침이 나왔다. 역대급 가뭄에 운하가 통행 제한 상태가 된 것이 이유이지만, 경제 통상의 측면에서 보면 전 세계 해상무역 25%가 영향을 받는 결과를 초래했다. 해양 물류에 문제가 생기면 세계 경제가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3년 전에는 말레이시아에서 네덜란드로 향하던 400m 길이의 초대형 컨테이너 운반선 ‘에버그린호’가 좌초되면서 수에즈운하를 막아버린 적이 있다. 물류가 마비되고 막대한 경제 손실이 발생했다. 2021년 3월 23일부터 7일간 운하는 막혀 있었고, 이 기간에 화물 운송 차질로 인한 피해가 시간당 4억 달러의 손실이었다고 하니 1주일간 발생한 경제 손실은 어림잡아도 대략 1조 1000억 원이 넘는다. 해양 물류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작년 12월 수에즈운하와 접한 홍해에서 예멘 후티반군이 민간 상선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함으로써 해상무역 항로가 또다시 막혔다. 이후로도 수시로 선박 운항이 제한되고 있으니 세계 해상무역의 12%를 담당하는 홍해의 물류 기능 상실이 수에즈운하 사태와는 비견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더구나 이 해역은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원유 수송로의 하나여서 국제 에너지시장이 요동치는 상황까지 불러왔다.
대륙은 분리되어 있고 해양은 연결되어 있으니 해양을 통한 대량 운송을 기본으로 하는 국제 무역이 활발해질수록 경제효과와 직결되는 ‘항로 안정성’은 점점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바다를 이용하는 방법이 바닷길이라면 ‘바닷길의 시작과 끝은 어딜까’라는 생각이 든다. 네덜란드 일본 이탈리아. 이들 국가가 매우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공통된 정책이 있다. ‘항만 개발’. 바닷길의 시작이자 종착점으로서의 항만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항만 개발을 국가의 주요 정책으로 일찌감치 선정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는 유럽의 관문으로 불리며 유럽 최대의 항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게다가 라인강 지류 니어마우스강과 연결되어 있으니 육지와 해양 전방위 물류 거점 위상까지 차지함은 당연하다. 최근에는 지정학적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스마트·친환경 등의 첨단 항만으로의 대변신을 꾀하고 있다. 항만 전체를 물류와 환경 분야 첨단 기술의 초대형 실증 거점으로 만들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상 도시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휴양과 소비만 연상되는 이 곳에 초대형 유람선 전문 건조회사이자 유럽 최대 규모의 핀칸티에리 조선소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회피산업으로 폄하 받는 조선업과 화려한 관광산업이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꽤 흥미롭다. 하나의 도시에 산업용 대형 항만이 관광 허브로서의 항구도시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상생할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오사카부 교토부 와카야먀현 등을 포함해 2부 6현 4시로 구성된 간사이 광역연합이 ‘광역연합 2.0’ 버전 향상을 통해 구체적 모양을 갖춰가고 있다.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를 기점으로 일본 제2의 메가시티를 구성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핵심은 오사카만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 혁신이다. 물류 기능을 확대함은 물론 항만 매립과 개발, 기업 유치, 해양관광 활성화에 이르기까지 항만의 기능과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항만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역할 부여에 있다. 단순한 무역과 물류 기점으로서의 항만 기능을 뛰어넘어 해양과 연계한 ‘복합 경제 허브’로서의 공간 창출을 도모하고 있다. 세계가 이미 항만과 해양 이용에 대한 다채로운 시각을 갖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항만이 바닷길의 시·종점 역할에만 그친다면 물류 외에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한계점에 대한 인식을 바탕에 두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항구도시를 방점 삼아 부산엑스포를 유치하려 했던 우리에게 이들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비록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기획과 준비단계에서의 성과는 절대 적지 않다. 가덕신공항과 신항 배후단지 등을 연계한 ‘트라이포트’ 구축과 이를 이용한 국제물류 허브 완성이라는 대단위 정책도 수립됐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전히 물류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경쟁국들이 이미 추진했던 밋밋한 과정은 건너뛰고, 우리의 역량을 집대성해 세계를 놀라게 할 그림을 제시할 수는 없을까. 글로벌 물류 허브는 당연한 것 아닌가. 여기에 더해서 관광과 산업과 첨단기술을 아우르는 ‘대한민국 경제 허브’로서의 부산항 그림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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