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모두가 침묵할 때, 처음 용기 낸 서울대

정해민 기자 2024. 3. 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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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29일 오후 서울 한 대학병원에 한 환자가 '인술제중'이라고 쓰여진 벽면을 지나치고 있다. 인술제중은 '어진 인술로 국민을 치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연합뉴스

서울대·분당서울대·서울시보라매병원 병원장들이 지난 28일 소속 전공의들에게 “환자 곁으로 돌아와 달라”는 호소문을 보냈다. ‘의료 파행’으로 중증·난치 환자들이 고통받는 가운데 “전공의 여러분은 환자 곁에 있을 때 빛을 발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대형 병원 수장은 서울대가 처음이다. 앞서 서울대 의대 학장도 졸업식에서 “의사가 숭고한 직업으로 인정받으려면 경제적 수준이 높은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 병원에서 ‘손발’ 역할을 하는 전공의들이 열흘째 병원을 이탈해, 암 수술을 앞뒀거나 난치·희소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은 하루하루가 무섭다. 수술 시기를 놓치는 건 아닐까, 병세가 갑자기 악화하지 않을까 두렵다. 우리나라 중증·난치 환자의 수술과 진료는 서울 ‘빅5′라고 하는 대형 병원(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이 도맡고 있다. 지방에선 국립대 의대 병원이 핵심이다. 이런 병원에서 환자들이 겪는 고통은 병원장이나 의대 학장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최근 전국 의대 40곳 학장들 모임은 “학생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했다. 다른 대형병원장들도 지난 28일 전까지 “소속 전공의 및 의대생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만 했다. “환자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고 호소한 병원장은 지난 28일 서울대가 처음이었다.

전공의는 의대를 졸업하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한다”고 맹세한다. 이런 맹세를 가르친 스승이 의대 학장이고 처음으로 실천하는 곳이 대형 병원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상당 수의다른 대형 병원장들과 의대 학장들은 ‘의사의 첫째 의무’를 말하지 않고 있다. 전공의와 의대생을 위하는 것인가, 그들 눈치를 보는 것인가.

공동체 유지를 위해 의료만큼 중요한 분야도 없다. 국민이 의사를 존경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 직역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이익, 환자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주기를 기대한다. 의료 파행 장기화로 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해 생명이 위협받는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의료계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면 ‘환자가 중요하다’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모두 침묵하는데 서울대가 가장 먼저 용기를 낸 것이다. 환자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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