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84] 마라탕과 중국의 우월감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2024. 3. 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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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양진경

전란을 피해 지금 쓰촨(四川)으로 쫓겨 갔던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고생 끝에 초가를 하나 짓는다. 그러나 음력 8월의 가을 태풍에 지붕이 날아가는 설움을 겪으면서 “빗발이 삼 줄처럼 끊기지 않는다(雨脚如麻未斷絶)”고 읊는다.

아주 유명한 시다. 두보가 이 시를 지은 쓰촨은 이제 마라(麻辣) 맛으로 유명하다. 차가운 빗줄기를 아주 질긴 삼[麻] 줄에 비교했지만, 맛으로 따질 때 이 글자는 다른 뜻이다. 산초(山椒)의 일종인 마초(麻椒)의 맛이다.

우리의 매운맛 느낌은 대개 고추[苦椒·苦草]에서 비롯하지만 중국 쓰촨의 매운맛은 고추에 이 마초를 더한 상태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얼얼한 매운맛’인데, 사실은 한자어로 적을 때 ‘마비(麻痹)’에 가깝다. 혀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두텁고 무거운 매운맛이다. 이 쓰촨 지방의 음식 맛은 이제 중국 전역을 넘어 한국 등 이웃 국가들에서도 크게 유행한다. 중국식 샤부샤부[火鍋]를 비롯해 마라탕(燙), 마라향과(香鍋) 등으로 말이다.

이 음식들은 중독성이 높다는 점이 특징이다. 감각을 무뎌지게 하는 ‘마라’의 맛에 홀려 여러 지역 사람들이 이 음식에 빠져들고 만다. 정신 등이 흐릿해지는 마취(麻醉), 무뎌지다가 아예 굳어버리는 마목(麻木)이 관련 단어다.

마목불인(麻木不仁)이라는 병증이 있다. 신체 반응이 사라져 바깥의 자극 등에 전혀 반응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몸의 이상을 넘어 외부 세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채 안으로만 감겨드는 폐쇄적 행위도 함께 일컫는다.

이런 증상에 가까운 중국인의 자국 중심적 세계관이 늘 화제다. “이제 우리가 세계 최강”이라고 공공연하게 소리친다. 세뇌에 가까운 공산당의 애국 교육 탓이다. 마라탕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럴까. 덩달아 그 맛 좋아하는 우리도 생각해 볼 글자가 ‘마(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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