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그래도 의사는 응급실을 지켜야죠”

박정훈 기자 2024. 3. 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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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환자들과 의료진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오종찬 기자

의료 대란 이후 처음 맞은 주말인 지난 24~25일 서울 주요 대형 병원 응급실은 포화 상태였다. 응급 의료 포털에 따르면 25일 오전 서울대병원은 26병상이 모두 동났고 서울아산병원도 41병상 대부분이 찼다. 서울대병원 응급실 앞엔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 외에 일반진료는 ‘제한’되거나 ‘장시간 지연’될 수 있다”는 안내 팻말이 놓여 있었다. 이날 만난 환자와 보호자들은 “위중한 때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할까 걱정”이라고 했다. 의사가 환자를 떠나자 발생한 일이다.

같은 시각 경기 부천에선 상반된 풍경이 펼쳐졌다. 지역의 한 중형 병원인 뉴대성병원에서 전문의가 주말 당직을 서기 위해 출근하고, 당직이 아닌 다른 전문의들도 24시간 ‘온콜(on-call·전화 대기)’에 돌입했다. 이 병원의 전문의는 17명뿐으로, 그간 응급실 당직 근무는 일반의 2명이 번갈아가며 근무해와 전문의는 응급실 당직을 설 필요가 없었음에도 자발적으로 비상근무에 나선 것이다. 이날 장염이 의심되는 조카를 데리고 온 이모, 작업 중 다리를 다친 남편을 데리고 온 아내, 코로나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온 딸 등 다양한 환자가 뉴대성병원을 찾았다. 119 구급대를 통해 이송된 시민들까지 합치면 이곳에서 치료받은 시민이 25일 하루 수십명은 됐다.

비상근무에 돌입한 뉴대성병원 전문의들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응급 진료를 받아야 하는 시민이 갈 곳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 때문”이라고 했다. 25일 만난 뉴대성병원 관계자는 “우리 병원의 대다수 전문의 선생님은 대화가 부족한 채 이뤄진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면서도 “비상근무 체계를 제안했을 때 그들에게서 돌아온 답은 ‘저희 역할은 해야죠’였다”고 했다. 이날 당직을 서고 있던 유서연 소화기내과 전문의는 “정부 정책의 옳고 그름이나 후배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과는 별개로 의료 공백이 생겨선 안 된다”고 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선언 이후 지난 20일 시작된 전공의 파업이 어느덧 열흘을 맞았다. 1만명이 넘는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했고, 9000여 전공의는 근무지를 이탈했다고 한다. 총 40개 의과대학에서 의대생 1만3000여 명이 휴학을 신청했다. 열흘 전 서울의 한 의대 교수가 기자에게 “학생들마저 학교를 나가버리면 이 사태가 어떻게 정리되든 의료계는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했는데 우려가 현실이 돼간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엔 정부 책임도 없지 않다. 의대 증원이라는 방향성 자체는 맞는다고 해도 2000명이라는 숫자에만 집착해 밀어붙이기만 해서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환자를 두고 최전방인 병원을 떠난 의사들은 어떠한가. 이들은 우리 국민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벌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의사를 비하하는 속칭들이 넘친다. 환자를 돌봐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당직에 나섰다는 뉴대성병원 의료진의 외침이 외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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