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이삭을 주워라
농사가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던 시절, 시골에서는 벼 이삭 줍는 일이 늦가을 일상들 중 하나였다. 수작업으로 벼를 베어야 하니 논바닥에 떨어지는 이삭들이 많았다. 부지런하기만 하면 이삭줍기만으로도 적지 않은 곡식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잘 익은 벼논을 콤바인이 밀고 지나가며 알곡과 볏짚을 순식간에 정리하는 요즈음엔 상상할 수도 없는 일. 가을 물난리로 인근 논의 볏가리들이 온통 쓸려나간 어느 해엔 동네 사람들이 갯벌에 흩어진 ‘꼬리표 없는 볏단’들을 무더기로 확보하는 행운을 만나기도 했다.
학창 시절, 책에 소개된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과 브르통의 ‘이삭 줍고 돌아오는 여인들’을 보며 잘사는 유럽에도 이삭 줍던 시절과 어려운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았다. 100살이 되어서도 묵은 밭에서 노래 부르며 이삭을 줍고 초탈한 인생관으로 공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위나라 사람 임류(林類). 그런 ‘행가습수(行歌拾穗)’의 고행(高行)이 일찍이 동양에 있었음을 깨닫기도 했다. ‘이삭줍기’가 긍정적으로 그려지고 해석되는 경우들이다.
바야흐로 활짝 열린 정치의 계절이다. 싸움판이 벌어진 광야에는 싸움꾼들이 최후의 일전을 겨루기 위해 온갖 무력들을 동원하여 맞서고 있다. 자잘한 전투들에서 잔 펀치들을 주고받던 그들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가려야 할 때가 다가오는 것이다. 그 일전을 위해 정병(精兵)을 고르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가소로운 꼼수 탓에 선발에서 탈락한 병사들은 앙앙불락 자신의 장수에게 창끝을 겨누기도 하고, 이들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던 다른 편(들)에 영입되기도 한다.
그 탈락자들을 거두는 일을 세상에서는 ‘이삭줍기’라 한다. 실한 이삭들만 주울 수 있다면, 힘 안 들이고 병력을 보강하는 일이니 ‘남는 장사’다. 사람들은 시종일관 비웃음조로 이삭줍기를 이야기한다. 주워 올리는 이삭들은 수확물 본체 아닌 찌꺼기들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일까. 어느 편 장수가 ‘뻘짓’하는 바람에 이삭들뿐 아니라 ‘꼬리표 없는 볏단들’이 싸움터에 널리게 되었다. 그 예상 못한 물난리에 떠밀려온 볏단들과 이삭들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군상들. 과연 이삭줍기나 볏단 그러모으기로 대박 칠 수 있을 것인가.
※ 3월 일사일언은 조규익 교수를 포함해 임희윤 음악평론가, 김지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국제협력팀장(하버드대 풀브라이트 방문학자), 정연주 푸드 에디터 겸 요리책 전문 번역가, 김지연 2024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자가 번갈아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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