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한의말글못자리] 삶과 동떨어진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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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류의 말이 있다.
그 말은 어려운 한자어나 외국어를 많이 쓰며 덩치가 큰 화제를 즐겨 다룬다.
당장 객관적 근거를 대어 반박하기 어려운 주장이나 '몇 개년 계획' 따위에 동원되는 말들이 특히 그렇다.
그런 말이 행세하는 사회는 허약하고 게으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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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세히 따져 보면, 이렇다 할 내용이 없다. 언어 활동에는 항상 대상과 상황 맥락이 있는데, 문장 형식은 맞아도 그게 애매하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는 문명사적 터닝 포인트에 놓여 있다’와 같은 표현이 연속될 경우, 초점이 분명하지 않다. 물론 함께 쓰이는 말들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상이 모호하고 구체적 분석과 주장이 빈약하다. ‘있어 보이는’ 겉과 달리 알맹이가 없어서, 거짓은 아니지만 하나 마나 한 소리에 가깝다. 한마디로 적합성이 떨어지므로 현실과 괴리되어 겉돈다.
대상과 맥락에 적합하지 않은 말은 도처에 깔려 있다. 가령 어느 독서 동아리의 회원 정보를 표로 만들 때, 그 항목에 몸무게, 재산 따위를 적는다면 부적절하다. 또 ‘이효석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떠도는 자의 꿈이다’ 같은 해석은, 오히려 독자의 이해와 판단을 흐린다. 바로 이런 점을 이용하여 일부러 모호하고 동떨어진 말을 마구 쓰는 일이 벌어진다. 당장 객관적 근거를 대어 반박하기 어려운 주장이나 ‘몇 개년 계획’ 따위에 동원되는 말들이 특히 그렇다. 이들은 대개 추상적이며 거창한데, 그래서 거의 적합성이 부족하다.
삶과 동떨어진 언어는 지적 허영심에서 나온다. 구체적 대안이나 주장이 빈약함을 감추면서 권위를 세우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그런 말이 행세하는 사회는 허약하고 게으르다. ‘그게 그거 아니냐’며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게 일상이 된, 그것을 악용하는 세력이 자라기 쉬운 비합리적 집단이다. 거기서는 논리가 실체를 잃고 모래성처럼 무너지며, 허세와 편 가르기가 판치기 쉽다.
머지않아 ‘말의 계절’ 곧 선거철이 닥친다. 개인이든 사회든 실상을 구체적으로 파헤치고 문제 해결에 합리적 도움을 주지 못하는 언어는 삶을 공허하게 만든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것이 끼치는 해는 매우 크다. 말은 삶의 거울이다. 그 거울을 맑게 닦으면 삶도 맑아질 것이다.
최시한 작가·숙명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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