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갯짓이 아름다운 사람[관계의 재발견/고수리]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발레 공연을 관람했다.
무대에서 춤추는 발레리노가 나의 제자라니.
모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칠 때, 첫 제자로 스물두 살 발레리노를 만났다.
발레는 하나도 모르지만, 발레 공연도 처음 보지만, 지난한 시간을 딛고서 힘껏 날아오르는 사람의 몸짓은 아름다웠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상 깊은 학생이었다. 질문과 사유가 풍부했다. 매사 끈기 있고 성실했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무용 동작을 마스터하듯 시도하고 단련해서 제 것으로 만들어 왔다. 글쓰기는 나날이 좋아졌다. 깜깜한 지금을 썼고, 씩씩했던 과거를 썼다. 보여주고픈 춤과 하고픈 예술과 꿈꾸는 미래를 썼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글 쓰며 삶을 돌아보고 돌보았다. 꾸밈없이 진솔한 글이 좋았다. 우리는 서로의 글을 나누며 교우했다.
그가 다시 무대에 서기까지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스물다섯 살이 된 발레리노의 복귀 무대에 초대받았다. 나는 마음 졸이며 지켜보았다. 감탄하는 관객들 사이에서 나만 울었다. 발레는 하나도 모르지만, 발레 공연도 처음 보지만, 지난한 시간을 딛고서 힘껏 날아오르는 사람의 몸짓은 아름다웠다. 다시 춤추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도와 좌절과 노력과 다짐이 있었을까.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처럼 아름다웠다.
‘밤의 사색’이란 책에 헤르만 헤세의 문장을 적어 선물했다. 헤세는 홀로 밤을 지나며 이런 생각을 했다고. ‘나를 덮친 외적인 운명이, 모두에게 그렇듯 피할 수 없고 신에게 달린 일이라면 나의 내적인 운명은 나만의 고유한 작품이었다.’
불행에도 지지 않고, 어떤 이는 자기 자신이라는 씨앗을 틔운다. 혹독한 밤을 지나며 더욱 깊이 뿌리내리고 힘껏 줄기를 일으켜 자기만의 꽃을 피운다. 넌 어떻게 피어날지 궁금했었는데 이렇게나 아름다웠구나. 다시 시작하는 사람에겐 꽃을. 고유한 작품을 꽃피운 나의 제자에게 프리지어를 안겨 주었다. 프리지어의 꽃말은 ‘당신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다가올 너의 모든 앞날에 나는 꽃을 보낼게. 순도 100%의 마음을 건네며 마음껏 기뻤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尹 거부권 행사 ‘쌍특검법’, 국회 재표결서 부결돼 폐기
- ‘전공의와의 대화’ 참석자 한 자릿수… 취재진만 북적
- 전북 대신 비례 1석 축소…4·10총선 선거구 획정안 국회 통과
- [단독]서울의대 ‘졸업식 쓴소리’ 학장 “평소 소신”…다음날도 진료·무료상담 “난 의사, 환
- 기관사 점검하던 사이…지하철 5호선 열차 자동 출발했다
- 전세사기 피해 1년, 끝나지 않는 고통
- 20대에 비해 현재의 키가 3cm 이상 줄었다
- 한동훈, 이재명과 TV토론 수락…총선 전 대담 성사할까
- ‘탈당’ 설훈 “‘민주연대’ 이름 아래 경선 탈락 10여 명 모을 것”
- 이스라엘, 구호품 기다리는 가자 주민에 공습…아바스 “추악한 학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