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착한 이주민·나쁜 이주민은 없다[책과 삶]

이혜인 기자 입력 2024. 2. 29.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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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국가를 선택하는 사람들
헤인 데 하스 지음 |김희주 옮김
세종|512쪽|2만5000원
이주 관련 편견·오해 22가지
난민, 세계 인구 대비 0.3%뿐
대부분 주변국으로 합법 이동
추방 피하려 준법정신도 투철
정착국 주민들과 갈등 있지만
사회 시스템 한계로 문제 야기
단편적 공포에 빠질 필요 없어
사회 공동체 형태를 고민해야

한국 합계출산율 역대 최저·세계 꼴찌. 이 심각한 문제의 해법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주’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곤 한다. 닥쳐올 인력난과 사회축소에 대비해 외국인 이민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에서는 출입국·이민관리청을 신설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서울시장이 나서서 싱가포르에서 이주가사노동자를 받아들이자고 외치고 있다.

사람들이 이주 혹은 이주민을 대하는 태도는 지극히 상반된다. 한쪽에는 한국에 이주한 외국인들이 부족한 일손이 되어주고 한국을 터전 삼아 살면서 인구를 늘려줄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이 깔려있다. 그 반대쪽에는 두려움과 혐오가 있다. 이는 이주민들이 우리와 쉽게 어우러지지 못하고 기존 사회의 안정을 해칠 것이라는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문화’나 ‘조선족’이 비하표현처럼 사용되기도 하는 것은 또 다른 현실이다. 우리는 어떤 쪽을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이주는 워낙 다양한 현상이기에 ‘선’ 혹은 ‘악’이라는 단순한 틀에 가둘 수 없다.”

<이주, 국가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저자이자 30년 넘게 이주 문제에 관해 광범위한 연구를 해온 세계적 사회학자 헤인 데 하스의 말이다. 그는 사람들이 “이주를 단편적이고 단순하게만 바라”보면서 이분법으로 나누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이주에 찬성하는지 아니면 반대하는지를 묻는 것은 경제에 찬성하는지 아니면 반대하는지를 묻는 것”과 같은데, 자꾸 한쪽으로 결론을 내리려고 하면서 이주와 얽힌 여러 문제들이 해법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주, 국가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헤인 데 하스가 이주와 관련된 22가지 오해와 편견을 나열하고, 여기에 직답을 던지는 형식으로 쓰인 책이다.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오해를 데이터와 사료로 반박하는 책 <팩트풀니스>처럼 이주라는 키워드를 파헤친다.

이주(migration)에는 국내 이주와 국제 이주가 있는데, 책에서 주로 다루는 이주는 국제 이주다. 누군가가 6~12개월 이상 행정 경계 너머로 거주지를 변경해 살 경우 동기와 상관없이 이주로 간주했다.

마치 세계화로 인해 우리가 유례없는 대규모 이주 시대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국제이주기구나 유엔난민기구처럼 유력한 국제기구들이 이주자와 난민 숫자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살펴보면 국제 이주는 낮고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자기가 태어난 곳을 떠나 해외에 사는 사람은 고작 3%에 불과하며, 이 비율은 수십년간 “놀랄 만큼 안정적”이었다. 세계 인구의 4분의 3 이상이 본인이 태어난 장소와 지역에서 살고 있다. 또한 전 세계 이주자 중 난민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해야 7~12%로, 세계 인구 대비 0.3%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주가 사상 최고치인 것처럼 보이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국제 이주에서 주요한 지리적 ‘방향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전에는 서유럽이 전 세계 식민지 주민과 이주자를 공급하는 주요 공급원이었는데, 이제는 이주자들이 향하는 중요한 목적지로 변했다. 1980년대부터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 쿠웨이트 등 경제가 급속히 성장한 중동 국가들이 아시아나 아프리카 출신 이주 노동자들의 새로운 목적지로 떠올랐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정착하는 비유럽 출신 인구가 증가한 것이 도드라지면서, 이주가 증가한 것 같은 착시현상을 낳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민자라는 단어에서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오는 난민을 떠올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주는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주변국으로 향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더 나은 기회와 생활방식을 찾는 도시인들이 문화와 언어, 종교, 관습이 비슷한 가까운 이웃 나라로 향한다. 도시화, 현대화가 일정 수준에 도달한 중상위소득 국가에서 이출(emigration)이 일반적으로 더 높게 나타난다. “정말 가난하고 취약한, 절망할 이유가 충분한 사람들은 대체로 이주에 필요한 재원이 없”다.

난민의 수는 전쟁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할 뿐이며 선형 증가 추세를 보이진 않는다. 저자는 난민 수가 급증해 ‘난민 위기’에 처했다는 왜곡이 오히려 난민을 보호하자는 주장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겪는 ‘난민 위기’는 “숫자적 위기가 아니라 정치적 위기”이며, “난민을 수용하고 다른 목적국들과 책임을 분담하려는 정치적 의지 부족”이 반영된 결과다.

책 중반부에서는 우리가 이웃으로서 살아갈 이주민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소한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이민자들이 기존 국민들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주장하며 반(反)이민 공약을 적극적으로 펼쳐 선거에서 승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입은 실업과 임금 정체의 원인이 아니라 주로 노동력 부족에 따른 반응”이라고 설명한다. 일자리 부족과 이주가 다른 카테고리에 있다고 반박한다. 이주는 특정 분야의 기술 부족이나 일손 부족에 따른 반응이기 때문에 대체로 이주민들은 토박이 노동자들과 같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지 않는다.

이주민들로 인해 범죄가 급증한다는 편견에 대해서는 “일부 이주자와 소수 집단이 통계적으로 범죄에 가담하는 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범위를 더 넓혀보면 “다양한 형태의 이입이 범죄율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주민은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취득해 도착국에 머물길 바라므로 대체로 법을 가장 잘 준수하는 구성원이다. 불법 이주민은 체포와 추방이라는 처벌이 두려워 조용히 지낸다. 저자는 미국에서 특정 이주민 2세대 집단의 범죄율이 좀 더 높았던 일부 사례를 두고 “특정 민족적·인종적·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에게 내재한 특징이 아니라 하향 동화를 경험하는 이입민 집단의 경제적 소외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보통의 시민들이 이주에 대해 경계태세를 보이는 것은, 이들이 이주자들과 같은 장소에서 일하고 이웃으로 살면서 사회적·문화적 변화에 직면하는 대상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주의 경제적 혜택은 대부분 목적국 사회의 부유한 구성원 몫”이다. 부유층이 노동력과 기술의 유입으로 혜택을 보는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주에 대해 이토록 수많은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가지게 된 것일까. 저자는 정치인, 정책입안자들의 모순적인 태도를 근본 원인으로 지적한다. “자유주의적인 민주 국가는 이입을 통제하려는 정치적 바람, 이주 증가의 경제적 이익, 이주자와 난민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 의무라는 3중 딜레마에 빠져 있다. 상충하는 이 세 가지 정책 목표는 모두 만족스럽게 해결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정치인들이나 정부는 이 3중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서 앞에서는 이입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뒤에서는 기업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문을 개방하고 합법적 입국 절차를 간소화한다.

책에서 저자가 나열하는 데이터와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저자는 이주는 역사적으로 계속된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이주로 인해 겪는 문제가 새로이 생겼다기보다 기존에 목적국이 가지고 있던 사회의 한계에서 비롯됐다고 거듭 강조한다. 하지만 저자가 언급했듯 이주민과 기존 목적국 주민들 간 갈등도 분명히 존재한다. 양쪽이 자연스럽게 융화되고 통합돼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형성할 때까지 꽤 많은 시간과 사회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저자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주장에 모든 사람들이 온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유례없는 이주와 난민 위기의 시대가 아니”기에, “극심한 공포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니 좀 더 다양한 차원에서 이주를 바라보고 논의를 시작하자는 것이 책의 메시지다. “진정한 이주 논의는 우리가 살고 싶어하는 사회의 형태에 관한 논의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로 책을 맺는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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