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제 발등 찍은 민주당

기자 2024. 2. 2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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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추락이 놀랍다. 공천이 본격화된 지 3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지난달 이재명 대표의 151석 목표는 가능성이 보였다. 윤석열 정부 심판론이 팔팔 살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은 한 달 전과 너무 달라졌다. 1주일 전엔 새누리당 152석, 민주통합당 127석의 결과가 나온 2012년 총선이 회자되더니, 이젠 한나라당 153석, 통합민주당 81석을 얻은 2008년 총선 결과까지 언급되고 있다. 당장 내일 총선이 치러진다면 국민의힘이 160석을 가뿐히 넘어서고, 민주당은 120석조차 위태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 2년간,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국정운영 능력은 최악이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어도 무책임으로 일관하던 정부였다. 상저하고니 하는 말장난으로 일관하던 경제정책은 이제 아예 포기한 듯싶다. 잼버리 사태와 엑스포 유치 실패로 국제적 위신은 땅에 떨어졌고, 극우 유튜버 수준의 역사 인식은 중도는 물론 보수 유권자들까지 고개를 가로젓게 만들었다. 민주당의 국회 과반은 가만히만 있어도 올 것 같았다.

그런데 민주당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재명 지도부에서 민주당이 국민에게 더 관심이 있었는지, 지도부의 안위에 더 관심이 있었는지를 알기가 어렵다. 민주당의 적지 않은 국회의원들이 국정과 민생에서 정책 대안을 중심에 놓고 정부·여당과 싸우자고 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지도부는 ‘당대표가 검찰과 싸우고 있는데 한가한 소리 좀 그만하라’는 식으로 대응했다고 복수의 관계자에게 들었다. 정부의 야당 대표 탄압이 상식적 수준을 넘어섰으니, 그런 입장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야당 탄압 프레임으로 일관하더라도 총선에서 넉넉히 승리해서, 국정지지율이 바닥인 정부를 잘 견제할 수 있으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최근 민주당 공천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정권 교체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물러나야 한다’는 기준이다. 귀를 의심했다. ‘전 정부 탓’은 윤석열 정부의 전매특허가 아니었던가. 문재인 정부 말기, 정권교체 여론보다 낮은 국정지지율을 자랑하던 모습은 보기 딱했다. 부동산 정책이나 검찰개혁 실패 등 과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정권 교체의 책임이 전 정부에 있는지 대선 후보에게 있는지는 민주당에서 합의된 적 없고 여론에서도 그러하다.

사실 지금은 공천이 문제가 아니다. 원래 공천이라는 것은 비정하다. 다만 잡음을 최소화하면서, 형식적이든 실질적이든 ‘원팀’을 내세워 지지자들을 결속하는 것이 선거의 상식 아니었던가. 그런데 김영주 국회부의장의 탈당 선언에 대표 측근으로 알려진 김지호 정무조정부실장은 ‘마음 편히 여행 다녀오시라’는 글을 남겼고, 서울 은평을에 출마한 김우영 강원도당위원장은 ‘꼬락서니를 보니 하위 20%가 아니라 하위 2%가 맞을 듯하다’며 비아냥댔다. 박용진 의원이 하위 10%라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자 대표가 직접 해명에 나섰는데, ‘동료의원 평가에서 거의 0점 맞은 분도 있다고 한다. 짐작하실 수 있을 거다’는 답을 하면서 웃음을 지었다.

고민정 최고위원이 이런 문제를 논의할 수 없는 최고위가 무의미하다며 당무를 거부하자, 정성호 의원은 ‘차라리 최고위원을 못하겠다고 하는 게 낫다’고 비판해서 기어이 그만두게 만들었다. 박영훈 전략공천관리위원은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나한테 전화했어야 한다’는 말을 농담처럼 뱉었다. 공천 갈등이 첨예해진 상황에서 당대표나 측근들이 당의 통합을 이뤄 총선을 승리하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나올 수 없는 태도다. 그러니 이재명 지도부가 ‘총선 승리에 큰 관심이 없고 8월 전당대회에 관심이 있다’는 황당한 의심까지 나오는 것일 테다.

그런데 민주당의 지지율이 급락한 이유가 과연 지도부 탓일까? 아니다. 민주당 내의 침묵한 다수가 지금의 민주당을 만든 주역이다. 당이 논란에 휩싸일 때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다수는 ‘공천을 앞두고 있으니 납작 엎드려야 할 때’라는 변명으로 일관해 온 것이 사실이다. 막상 공천이 발표되자 ‘공천 아닌 사천’ ‘사당화’를 외치지만, 그마저 반응이 싸늘한 것은 ‘지금까지 가만있었던 이유가 결국 공천 때문이었나’ 하는 탄식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공천을 받은 후보들이라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공천을 받아도 당선이 어려워진 지역구가 수도권에서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결국 제 발등 제가 찍은 셈이다.

진짜 비극은 여기에 있다. 민주당이야 80석을 받든 120석을 받든 자기들 문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고 싶었던 국민들, 유권자들은 어쩌란 말인가.

이관후 정치학자

이관후 정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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