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우리가 얻은 것은 콘센트요

기자 2024. 2. 2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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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농장은 노예착취의 온상이었다. 브라질이 서반구 국가들 중 노예제 폐지가 가장 더디었던 이유도 커피 때문이었다. 1871년 ‘노예의 자식도 자유로운 신분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태아자유법이 선포되자 커피 재배자들과 정치인들은 노예제 폐지에 격렬히 반대했다. 1932년 엘살바도르에서는 잔혹한 노동환경을 견디지 못해 봉기가 일어났고 보복극으로 무차별 폭격 대학살이 벌어져 3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1933년 과테말라에서는 노조원, 학생, 정치 지도자를 총살하고 ‘커피와 바나나 농장주들이 일꾼들을 죽여도 처벌을 면제한다’는 법령을 공포했다.

커피노동자들은 여전히 수도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에 살면서 하루하루 연명한다. 돈이 없어서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을 동원한 온 가족이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종일 열매를 따는데, 일당은 고작 1~10달러 사이다. 베트남이 다국적 기업의 전략하에 커피를 과잉생산하면서 콜롬비아의 소규모 농가에서는 생계수단이었던 이 고된 노동마저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커피밭은 이주노동자의 몫이 되었다. 백인인 코스타리카인들이 말도 섞지 않는다는 혼혈인 니카라과 사람들, 니카라과 사람들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선주민 과이미들이 코스타리카인들이 땄던 커피를 대신해서 따고 있다. 커피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서 생산하는데, 절반 이상을 유럽과 미국에서 소비한다. 커피가 생산지에서 팔리는 금액과 카페에서 팔리는 금액은 자그마치 300~400배나 차이가 난다. 노동자들이 최종 가격의 10%만을 배당받을 때, 커피를 가공하고 유통하는 기업에서 90%의 이익을 취해 가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는 쪽의 사정은 어떤가? 16~17세기에 카페는 불온한 장소였다. 사람들은 카페에 모여 정치적인 토론과 논쟁을 벌이며 여론을 형성하고 반정부 선동을 일으켰다. 프랑스의 카페는 배우와 작가, 음악가와 철학자들이 교류하는 예술의 공간이자, 혁명을 준비하는 지적 소통의 장이었다. 영국에서 카페는 단돈 1페니만 내고 대중적 교류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페니 대학’이라고 불렸고, 유럽의 카페에서는 남녀가 자유롭게 교제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카페에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평등하게 여기고 처음 보는 사람끼리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의 카페는 공용 사무실이다. 자유롭고 평등한 대화와 교류 대신 우리에게 허락된 건 초고속 무제한 와이파이와 노트북을 연결할 수 있는 콘센트다. 기업은 근무시간에는 일터에서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카페에서 일하라고 명령한다. 우리들에게 자유란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 중에서 무엇을 고를지, 시럽과 연유와 생크림 가운데 무얼 추가할 수 있는지 정도의 선택지에 불과하다.

18세기에는 설탕 1t을 더 수출할 때마다, 소비자가 250명 더 늘 때마다, 흑인 한 사람이 죽었다. 지금 커피는 석유에 이어 세계 교역량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커피는 취향의 음료라기보다 정치적 음료다. 우리는 매일 커피를 마심으로써 이 세계의 불평등과 차별에 순순히 가담한다. 본 적 없는 숲을 잘라먹고, 알지 못하는 새를 살해한다. 우리가 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를 빈민으로 내몬다.

최정화 소설가

최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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