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코리안의 삶과 영혼 기록하려 37년째 북한 문학 연구

강성만 기자 입력 2024. 2. 29. 18:45 수정 2024. 3. 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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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김정은 시대 북한 문학사’ 낸 김성수 성균관대 교수

김성수 교수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김정은 시대 북한 문학사’(역락).

올해로 37년째 북한 문학 자료에 파묻혀 지내는 김성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가 최근 낸 책이다.

김 교수와 북한 문학과의 만남은 1988년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원보 시절로 올라간다. 고 방선주 선생이 보내온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소장 북한 노획자료 중 문학·예술 분야를 정리해보라는 연구소 담당 교수의 권유로 조명희 작가(1894~1938)에 대해 글을 쓴 게 시작이었다. 그는 창비 89년 여름호에 실린 이 글에서 조명희가 스탈린 치하 옛 소련에서 총살당했음을 처음 밝혔다. 이 글로 이전까지 조명희 앞에 붙던 월북작가 낙인은 사라졌다.

그가 1991년 성균관대에서 받은 박사 학위 논문은 일제 강점기 최고 농민소설로 꼽히는 ‘고향’의 작가 이기영을 다룬 국내 박사 1호 논문이다.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낸 이기영 연구는 당시만 해도 “금기 사항”이라 “지도 교수의 권유로 이기영의 월북 후 문학 활동은 다루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4년 전 낸 ‘미디어로 다시 보는 북한문학’은 북한의 대표문예지 ‘조선문학’ 1946년 창간호부터 2019년 12월호까지 통권 866호를 전수 조사해 분석한 연구서다.

‘김정은 시대 북한 문학사’ 표지.

지난 21일 서울 혜화동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조선 문학을 모두 수집하는 데만 20년 걸렸다”면서 “북한 문학 연구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자료 수집”이라고 했다. “북한이 7, 80년대에 주체문예이론을 체계화할 때 총서 100여권을 냈는데요. 지금껏 확보한 게 80권 정도입니다. 4년 전부터 나온 김정은 일대기 ‘불멸의 려정’ 1, 2권도 코로나 시기에 팔겠다는 중국 쪽 소장자가 너무 비싼 값을 불러 아직도 보지 못 했어요. 저는 자료가 있다면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어디든 직접 찾아갑니다. (소장자와) 이메일로 접촉할 경우 국가보안법에 걸릴 수도 있거든요.”

한 해 평균 100~200편의 북한 소설을 읽는다는 그는 이번 책에 이어 김정일과 김일성 시대 북한 문학도 별도의 책으로 낼 계획이다. “김일성 시대가 쓰기 가장 어려워요. 노동신문 같은 당시 자료를 구하기 힘들어서죠. 1940~50년대 마이크로필름 자료가 있더라도 식별이 어렵고요.”

그는 이번 책에서 김정은 시대(2012~23) 문학을 세 시기로 나눠, ‘선군에서 민생으로’ ‘‘사회주의 문명국’의 욕망’ ‘‘만리마기수’와 ‘붉은 보건전사’’ 3부로 구성했다.

“김정일 시대가 군을 중시하는 선군 문학이었다면 김정은 시대는 1967년 확립된 주체문예이론 체계로 돌아갔다고 봐야죠. 김정일 때는 발표 작가의 10~20%가 군인이었지만 김정은 시기에는 군인 작가가 거의 없어요. 시기별로 보면 초기에는 청년 지도자의 친근함과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애민 이미지가 강조됩니다. 2013년 시에 나오는 ‘아이들에게 총알보다 사탕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대표적이죠. 그러다 2016년 7차 당 대회 전후로는 마식령스키장과 고층아파트로 상징되는 ‘사회주의 문명’에 대한 환상이 자주 나옵니다. 하지만 인민이 실제 스키장을 향유하는 내용의 문학은 아직껏 없어요. 북한 문학의 한계이죠.” 그는 이어 “2021년 8차 당 대회 뒤로는 하루에 만리를 간다는 ‘만리마 기수’가 문학적 상징이 되었고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특히 커진다”고 했다. “김정일 시대 문학 키워드 중 하나가 ‘중장비도 손쉽게 다루는 ‘준마 처녀'’였다면 김정은 시대는 ‘과학기술 룡마 탄 콤퓨터 처녀’이죠. 2017년 8월 북한이 탄도 미사일을 발사한 뒤에는 ‘(북한 인공위성이) 지구라는 행성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문학적 표현까지 나오더군요. 일상생활의 섬세한 실감 묘사도 김정일 시대와 다른 점이죠.”

‘과학 중시’ 김정은, 문학은 관심 없어 김일성·김정일 시대보다 작품 질 하락
남녀 사랑·일상 묘사는 더 구체적
“북 문학 연구 이적이란 말도 있지만
최소한 자료라도 확인하고 욕했으면”


“김일성, 김정일 시대 문학사도 쓸 터
자료 확보가 연구의 가장 큰 어려움”


그는 아버지 시대와 견줘 김정은 시대 문학의 질이 뚜렷하게 떨어졌다고 평했다. “아무래도 관심이 줄어서겠죠. 김정일은 문학과 예술을 통치의 본질로 삼았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어요. 김일성 시대에는 혁명이나 정치적 선동 도구로 문학을 적극 활용했고요. 하지만 김정은은 문학 예술보단 과학과 교육에 관심이 많아요. 돈이 많이 드는 영화도 거의 만들지 않더군요.”

북한의 이른바 주체문예이론은 김일성이 이끄는 항일혁명문학과 김일성 일가를 우상화하는 수령형상문학이 큰 뼈대이다. 그의 표현대로 “챗지피티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게 북한 문학”이다. 이런 이유로 “북한에는 진짜 문학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이명박 정부 때 한 경제 관료는 북한 문학 연구는 적을 이롭게 한다는 말까지 하더군요. 저는 그런 분들에게 최소한 자료라도 확인하고 욕을 하자고 말합니다.”

그는 어려운 연구 여건에도 북한 문학을 놓을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80년 가까운 분단/냉전체제 하의 남북 코리아 권력과 지배이념에 의해 지워지거나 일그러지고 가려진 문학과 예술을 복원하고, 작가 예술가 그리고 작품에 담긴 분단 코리아 주민의 평범한 삶, 그들의 영혼을 기록해야죠. 몹시 힘들지만 아무도 하지 않기에 길을 새로 찾는 보람도 큽니다.”

김성수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스토리가 뻔한 북한 문학이지만 그래도 이따금 마음이 설레는 순간이 있단다. 김정은 시대에는 인민보안성 작가 렴예성의 단편 ‘사랑하노라’(2018)를 봤을 때다. 김 교수는 “청춘 남녀의 사랑이 (작품의) 조미료만이 아니라 본령이 되는 게 김정은 시대 서사의 새로운 특징”이라며 ‘사랑하노라’를 대표 작품으로 꼽았다. “김정일 시대만 해도 남녀 애정을 다루는 소설은 부르주아 문학의 찌꺼기라고 배척했어요. 그런데 사랑하노라를 보니 ‘남자가 여자 손을 잡을 때 여자 심장이 전율하듯 요동쳤다’거나 ‘우산을 씌워 주는 남자에게서 외제 향수 냄새가 났다’와 같은 감각적인 표현이 많더군요.”

북한에도 한국의 군부독재 시절처럼 저항문학이 있을까? 김 교수는 너무나 많이 받는 질문이라면서 이렇게 답했다. “적어도 인쇄 상태로는 저항이나 비합법 문학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혹 원고나 아이디어 상태로는 있을지 모르죠.”

그의 연구 분야는 남북 관계에 큰 영향을 받는다. 2018~9년만 해도 1년에 7~8회는 북한 문학과 남북 문화 교류 등을 주제로 발표나 강연을 했지만 지금은 전무한 상태란다. “남북 문화예술 교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실종된 상태입니다. 많을 때는 14개나 되었던 대학 북한학과도 지금은 인제대 한 곳만 남았어요. 가장 큰 이유는 학생이 들어오지 않아서죠.”

인터뷰 끝에 가장 높이 평가하는 북한 문학을 물었다. “30년 전이라면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을 꼽았을 텐데요. 지금은 1987년 나온 백남룡 장편 ‘벗’입니다. 선반공 남편과 발레리나 아내의 이혼법정을 다룬 작품인데요. 괴물만 사는 것으로 알았던 북한에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산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2011년 프랑스에 이어 2020년 미국에도 번역 출판돼 호평을 받았죠. 김정일 시대에 작품 활동이 별로 없었던 백남룡이 ‘불멸의 려정’ 1권 ‘부흥’을 집필했더군요. 김일성대 교수의 교육입국론을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백남룡이 김정은 시대에 다시 중용되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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