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범이 연좌시위 나섰어요, 박수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한겨레21 입력 2024. 2. 2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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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엉망진창행성조사반]영화 <투모로우> 같은 재난을 막기 위해 빙하 앞 100m 높이 플라스틱댐 공사, ‘기후약자’ 물범들 “지구가 아니라 인간 위한 용단”
그린란드의 북극곰 가족. NASA OCEANS MELTING GREENLAND(OMG) 갈무리

엉망진창행성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자신을 ‘실’(SEAL)이라고 한 제보자는 최근 그린란드 바닷가에 인간들이 돌아다니며, 빙하 앞에 댐을 짓겠다며 물범들로부터 이주 각서에 도장을 받고 다닌다고 해요. 댐을 짓지 않으면, 영화 <투모로우>에 나온 것처럼 유럽과 미국에 냉혹한 빙하기가 닥칠 거라나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공익사업이니까 퇴거하지 않으면 강제수용을 하겠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북극에 댐을 짓는다는 게 말이 되나요?

퇴거 뒤 세계 최고 호텔급 동물원으로?

“왜 자꾸 북극에서 제보가 오는 거죠?”

“기후를 움직이는 핵심 엔진이기 때문 아닐까? 그린란드 빙하와 바다얼음이 녹을수록 지구의 바다와 대기는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어.”

그린란드 현장에 도착하니 물범들이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댐 건설을 추진하는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북극개발 주식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이 방문하자 물범 수백 명이 모인 거죠. 이 업체의 대표로 보이는 사람이 연단에 나와 설득을 시작했습니다.

“2004년에 나온 영화 <투모로우>를 보셨잖습니까? 빙하가 너무 많이 녹고 있어서, 녹은 물을 가둬야 해요. 그 많은 민물이 멀리 나가서 짠물의 해류와 섞이면, 북반구에는 빙기가 닥치고 말 겁니다.”

한 물범이 소리쳤습니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오? 댐을 지으면 우리 삶터는 없어지고 마는데… 당신들의 철저한 자기중심주의는 이제 질렸소!”

“댐이 아니라 플라스틱이라니까요. 부력 좋고 내구성 강한 대형 플라스틱을 해저에 고정하는 겁니다. 콘크리트가 아니어서 환경 피해가 적어요. 그래도 걱정되시는 분들은 세계 최고 호텔급 동물원으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거기선 힘들게 사냥할 필요도 없어요.”

바다로 이어지는 빙하 주변을 댐 같은 시설물로 둘러싸 막으려는 이유는 대서양자오선역전순환류(AMOC·Atlantic Meridional Overturning Circulation)의 작동 불능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바닷물에는 두 가지 큰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표층 순환’이고, 다른 하나는 바다 깊은 곳에서 흐르는 ‘심층 순환’이죠.

멕시코만류(Gulf Stream)라고 들어보셨죠? 따뜻한 멕시코만에서 시작해 미국 플로리다, 캐나다 뉴펀들랜드섬을 거쳐 북상하는 북대서양에 이르는 따뜻한 해류(난류)예요. 여기서 이 해류는 두 개로 갈라져요. 하나는 서유럽의 영국, 아일랜드, 스칸디나비아반도 그리고 북극의 그린란드 근처까지 이어지는 북대서양해류죠.

얼음 위에서 생활하는 하프물범. 한겨레 자료

북극의 바다얼음은 바다를 순환시키는 ‘심장’

북대서양해류의 바닷물은 아북극의 찬 바다와 그린란드 근처에 가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요. 왜냐고요? 이제부터 잘 들어보세요. 북극에는 바다얼음이 생기죠. 이때 물은 얼지만, 소금은 얼지 않아요. 차가운 물은 밀도가 높기 때문에 아래로 가라앉죠. 얼음이 얼면서 소금기 머금은 밀도 높은 물은 바다 밑으로 내려가고, 계속되는 결빙이 이렇게 내려간 물을 적도 쪽으로 느릿느릿 밀어내는 거예요. 이런 힘으로 바닷물은 표층과 심층을 오가며 컨베이어벨트처럼 지구를 순환해요. 북극의 바다얼음은 사람으로 치면 ‘심장’에 가까워요. 심장의 펌프질로 혈액을 온몸으로 보냈다가 받아오는 것처럼, 북극 바다의 결빙 운동은 따뜻한 곳에서 온 물을 받아 얼리고 일부는 내려보내서 심층 순환을 통해 따뜻한 곳으로 되돌려보내죠. 심층과 표층의 해류 순환 덕택에 지구 기온이 고루 평형을 유지한답니다.

그런데 북극에 중요한 변수가 있어요.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으면, 민물이 바닷물에 추가로 유입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북극 바닷물의 염분 농도가 낮아지겠죠? 염분 농도가 낮아지니 당연히 펌프의 힘이 약해질 거고요.

“물범 양반들, 허황한 얘기가 아닙니다. 2018년 학술지 <네이처>를 보면, 이미 AMOC의 힘이 20세기 중반 이후 15% 줄었어요. 이르면 2025년부터 지구 해류시스템이 붕괴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한 상황이에요. 여러분이 지구를 위해 용단을 내려주셔야 합니다.”

유난히 팔이 긴 물범이 대꾸했습니다.

“지구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용단이겠지. 내가 한마디 하겠수다. 그 뭣이냐,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모인 단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라고 있지. 그 사람들이 여섯 번째 낸 보고서에서 이번 세기에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우. 유엔이 인증한 과학자 말을 믿어야지. 암, 그렇고 말고.”

이르면 2025년부터 해류시스템 붕괴

물범들이 짧은 팔로 박수를 쳤습니다. 양 손바닥이 닿지 않아 소리는 나지 않았죠.

“물범에게도 기후정의를 보장하라!”

“보장하라, 보장하라, 보장하라!”

“석탄발전소 노동자만 기후약자냐? 물범도 기후약자다!”

“기후약자다, 기후약자다, 기후약자다!”

해류시스템은 온난화로 인해 정말 이번 세기 안에 붕괴할까요?

IPCC로 대표되는 과학계 주류는 이 의견에 회의적인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2023년 7월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연구팀이 쓴 논문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실리면서 과학계가 발칵 뒤집혔지요.

연구팀은 1870년부터 2020년까지 150년 동안 그린란드 남쪽 북대서양 지역의 해수면 온도를 분석했어요. 분석 결과, 2025년에서 2095년 사이에 AMOC의 세력 약화가 티핑포인트(임계점)를 넘어서면서 이 순환류가 붕괴에 들어갈 거라고 나타났습니다. 이번 세대나 다음 세대 안에 인류가 끔찍한 재난을 마주하는 거죠.

뭔가 정리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반장이 물범 시위대 앞에 나섰습니다.

“톡톡톡, 마이크 시험 중. 아, 저는 대한민국에서 온 엉망진창행성조사반장입니다. 성층권에 에어로졸을 뿌려서 태양에너지를 차단한다는 기후공학 얘긴 들어봤는데, 빙하에 댐 짓는다는 얘기는 저도 처음 들어봤습니다. 이렇게 하면 결론이 안 나니, 제안한 사람에게 직접 물어봅시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반장이 영상전화를 걸었습니다.

영화 <투모로우>는 녹은 빙하로 인해 지구에 빙하기가 닥친다는 설정이다.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다. 한겨레 자료

탄소중립 동안 시간을 벌자고 제안한 건데, 저 사람은 누구?

“여보세요? 핀란드 라플란드대학의 존 무어 교수님이시죠?”

“네네, 그렇습니다만.”

“그, 빙하 댐 만든다는 게 사실입니까?”

“지난달 <네이처> 기자가 와서 몇 가지 묻길래 답한 적은 있네만. 빙하 앞에 100m 높이의 플라스틱 커튼을 세워 해저에 고정하면, 빙하가 깨져 나온 빙산과 민물이 남쪽에서 올라온 북대서양해류와 섞이지 않게 잡아둘 수 있어요. 탄소중립을 하는 동안 시간을 벌자는 거야. ‘종말의 날 빙하’라고 불리는 서남극의 스웨이츠빙하(Thwaits Glacier)와 파인섬빙하(Pine Island Glacier)를 대상으로 시뮬레이션도 해봤소. 수심 600m에 80㎞ 길이의 시설물을 설치하면 400억~800억달러(약 53조~107조원)가 들겠더군. 듣기엔 비싸 보여도 우리에게 닥칠 재앙을 생각하면 싼 거야.”

“극지에서 공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가능하겠습니까?”

“벌써 공사한다고? 나는 그저 몇 년 전부터 그린란드와 남극에 설치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강연과 워크숍을 하고 돌아다닌 것뿐인데…. 아직 어느 나라 정부도 사업을 결정하지 않았어요.”

영상통화를 지켜보던 물범들이 웅성거렸습니다. 팔이 긴 물범이 소리쳤습니다.

“사업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이거 속았잖아! 그럼, 저 업체 사람들은 뭐지?”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북극개발 주식회사’ 관계자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활개 친다는, 기후변화 핑계를 대고 정부지원금을 타거나 땅을 빼앗아 개발하는 기후공학 사기꾼이었던 겁니다.

우르르 쾅. 저 멀리 빙하에서 뒤틀리고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치 신음하고 울부짖는 소리 같았습니다.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동물권력> 저자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연재 설명: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생물종의 목마름과 기다림에 화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기후 픽션’.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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