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포럼] 미국경제의 힘은 창조적 파괴

김충제 입력 2024. 2. 2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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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고금리로 인해 기업과 가계 등 경제주체들의 경제적 고통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의 금리는 미국 기준금리 수준과 연동되어 있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올해 상반기 내 미국 연준의 금리인하 단행에 대한 기대감이 제법 있었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작년 4·4분기 시장 컨센서스를 훌쩍 넘어서는 연율 3.3% 성장을 함에 따라 상반기 내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졌다. 고금리로 인해 세계 주요국 경제가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만 '나 홀로'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대 경제규모와 6만달러 이상의 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창출하는 매우 성숙한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경제적 성숙도도 미국에 못 미치는 다른 선진국을 성장률에서 앞지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최근 1~2년의 좋은 성과뿐만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보아도 미국 경제는 고비마다 상당한 회복력(resilience)을 보여 왔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1990년대 닷컴버블, 2000년대 글로벌 금융위기 등 상당한 충격의 경제위기를 수차례 겪어 왔지만 미국은 다른 몇몇 선진국처럼 '잃어버린 수십년', 세계 경제의 '환자' 등의 수식어를 가진 적이 없이 위기 후 일정 기간 후 반등해왔다.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필자는 '창조적 파괴' 본능이 미국 경제의 힘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근대에 들어 세계 경제의 '창조적 파괴' 대부분은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자동차 대량생산, 퍼스널컴퓨터의 대중화와 이를 가능케 한 소프트웨어 혁명과 반도체 집적화 그리고 최근의 AI 시대 도래 등 기존 패러다임을 파괴하고 새로운 경제작동 방식을 창조하는 혁신은 미국 기업에 의해 주도되었다. 혁신적 기업에 의한 창조적 파괴가 일어날 때마다 미국 경제는 침체를 극복하고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 과정에서 미국 경제를 이끌어 나가는 주력기업도 계속 바뀌면서 특정 기간 경기침체는 겪을지언정 성장동력은 고갈되거나 식지 않는 경제체질을 가지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팬데믹 이후 유동성 폭증에 따른 고물가와 이에 대응한 고금리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정학적 갈등이 더해지면서 많은 나라가 경제활력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AI 시대를 주도하면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주식시장만 봐도 미국은 다른 나라와 구별된다. 미국은 주식시장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중 8개 기업이 1970년 이후 창업한 IT기업이다. 이 중 5개는 1990년 이후 창업한 기업들이다. 반면 유럽의 시가총액 10대 기업 중에서 1990년 이후 창업한 기업은 하나도 없으며 업력이 100년 넘는 오래된 명품의류, 화장품 회사 등이 상위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과 유럽의 경제적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미국과 유럽을 비교해 보면 한국 경제가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저출산·고령화의 위기 속에서 강대국의 지정학적 갈등 한가운데 있는 한국 경제로서는 '창조적 파괴'를 만들어 내는 혁신 없이는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혁신은 단순히 어느 한 기업만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혁신은 항상 여러 기득권에 의한 저항을 받게 되므로 혁신의 발현과 성장을 보장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혁신생태계가 필요하다. 혁신생태계의 수준은 금융, 법·제도, 인적자산 등의 구성요인에 의해 결정되며 국가는 그 요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제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4월 선거 이후 출범하는 22대 국회는 혁신을 가로막지 말고, 기업의 창조적 파괴를 도와주는 국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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