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달래기용 카드 ‘의료사고특례법’ 브레이크 걸리나...시민·환자단체 “졸속 반대”
의료계 “의료사고 분쟁, 필수의료 기피 원인, 보호 장치 필요”
환자·시민단체 “의사에게 형사 특례…졸속 추진 반대”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두고 병원, 의사, 환자·소비자 단체가 팽팽한 견해차를 드러냈다. 정부는 의대 입학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의료 행위 과정에서 사고가 났을 때 형사 처벌 부담을 줄여주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이 법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환자와 시민단체의 입장차가 새로운 복병이 되고 있다.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공청회에서는 정부와 의사, 환자와 소비자를 대표한 패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추진을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날 토론회에는 정형선 연세대 의대 교수를 좌장으로 송재찬 대한병원협회 상근 부회장, 박진식 대한중소병원협회 공동위원장, 이은영 환자단체연합회 이사, 이정수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 황만성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가 토론에 참여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책임보험·공제(보상한도가 정해진 보험)에 가입한 의료인에 한해 의료사고로 발생한 중상해·사망 사고에서 법적 부담을 경감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1일 밝힌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중 하나다.
병원과 의사 측은 의료사고처리특례법 도입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법적 분쟁 증가 등으로 의사들의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심화했다는 게 주된 이유다. ‘필수의료’ 분야 의료인력 확충 기재로서 법 제도가 작동하려면 필수의료 영역 의사의 보험료 부담을 덜고 환자 사망에 대해서도 특례를 적용하는 등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도 나왔다.
송재찬 대한병원협회 상근 부회장은 “필수의료 분야는 의료사고 위험률이 굉장히 높다”면서 “(특례법 적용 범위에) 환자 ‘사망’을 배제한다면 필수의료 인력, 고난도 중증 질환의 수술을 담당하는 진료 의사로서는 적극적으로 수술에 참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송 부회장은 “또 책임보험과 종합보험 형태로 보장하게 될 텐데 보험료 산정을 어떻게 할지 개인별로 할지 의료기관별로 할지 여기에 대한 논의도 충분히 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만약 위험률에 따라서 보험료를 부과하는 구조가 된다면 필수의료를 하는 사람이 보험료를 더 많이 내야 한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에 ‘필수의료 살리기’라는 법안 추진의 목적을 이루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박진식 대한중소병원협회 공동위원장은 “생존 위기에 처한 응급 중증 환자를 촌각을 다투며 치료해 환자가 생명은 구했으나 합병증이 생겼다는 이유로 몇 년씩 송사에 휘말리며 끌려다니는 게 필수의료의 현실”이라며 “필수 의료 제공자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법안이며 최소한의 법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자와 소비자 단체는 환자 권익 보호와 위헌 소지를 이유로 법안 도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의사에게는 특혜를 주면서 환자의 사고입증 부담은 가중하고, 형사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법안’이라는 게 주된 주장이다.
법안에 따르면 의료인이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하면 미용·성형을 포함한 모든 의료행위 과정에서 과실로 환자에게 상해가 발생했더라도 환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피해를 전액 보상하는 ‘종합보험’에 가입했다면 피해자가 원하더라도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응급·분만 등 필수의료 행위의 경우 중상해가 발생해도 소송을 제기할 수 없게 된다.
이은영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사는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에게 피해나 사망의 발생 경위 원인에 대한 설명에 대한 설명과 이에 대한 유감이나 사과도 없이 보험에 가입됐다는 이유만으로 공소 제기 자체를 금지하거나 형사 처벌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도록 하는 건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는 “의료사고 특례법안 제정 논의가 필수의료를 살리는 것에서 시작됐다면, 법안의 대상 범위를 응급의료·중증, 외상·중증, 소아, 흉부외과, 분만 등 필수의료행위 의사 등 필수의료행위 의사에만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공청회 현장에서는 환자 측 일부 방청객이 “정부가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졸속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며 고성을 내면서 토론 진행이 마비되는 등 혼란과 불안이 고조됐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의대 증원을 두고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는 상황인 만큼 이번 특례법 제정 추진이 ‘의료계 달래기’라는 해석이 많다. 공청회가 열린 이날은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집단으로 떠난 전공의들의 복귀 시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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