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 유태오 "11세 연상 아내, 나의 구원자" [인터뷰]
아이즈 ize 김나라 기자
배우 유태오가 '패스트 라이브즈'로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 충무로에 금의환향했다.
유태오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아이즈(IZE)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는 3월 6일 개봉하는 새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로 전 세계 영화계를 휩쓸고 화려하게 컴백, 마침내 국내 관객들에게 선보이며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풀어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과 해성(유태오)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온 그들의 인연을 돌아보는 이틀간의 운명적인 이야기를 그린 작품. 한국의 메이저 배급사 CJ ENM과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할리우드 스튜디오, A24가 공동 투자배급했다. 송강호 주연작 '넘버3'(1997)의 송능한 감독 딸인 셀린 송 감독의 장편 연출 데뷔작이기도 하다.
특히 '패스트 라이브즈'는 작품성을 인정받아 전 세계 유수 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210개 부문 노미네이트, 75관왕 달성(2월 28일 기준)이라는 대기록을 썼다. 더욱이 오는 3월 10일(현지시각) 열리는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 2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바. 이는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시상식으로, '패스트 라이브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 마틴 스코시지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 등 쟁쟁한 작품들과 트로피 경쟁을 앞두고 있다.
여기에 유태오가 남주인공 해성 캐릭터로 호연을 펼치며 글로벌 시장을 사로잡았다. 한국 배우 최초로 지난 1월 제77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남우주연상 후보로 등극하기까지. 비록 수상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오펜하이머'의 킬리언 머피와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의 브래들리 쿠퍼 등 할리우드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해외 팬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이에 대해 유태오는 "영화를 만들 때 결과주의적으로 만드는 건 아니지 않나. '패스트 라이브즈'는 2021년 5주 동안 찍었고, 이미 2년 반이 지났다. 제가 할 일은 다 끝난 건데 단지 제 바람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내가 그때 느낀 감정이 오롯이 잘 전달되고 관객들이 감동받았으면 좋겠다 그 정도였다. 솔직히 나머지는 투자배급사나 제작자분들이 좋아할 마케팅 요소라고 본다"라며 들뜨지 않고 겸손한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배우로서 영광스러운 도약을 일군 만큼, 감격을 금치 못했다. 그는 "정말 실감이 안 났다. 저는 현재를 사는 사람이라 더 '어?'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시상식 당일 아침 매니저가 소감을 준비했냐고 묻더라. 절대 그런 생각을 안 해봐서 '설마' 싶었다. 한 번 의식을 하고 나니까 두 시간 동안 제 차례가 올 때까지 너무 긴장이 되고 머릿속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하지?' 계속 그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결국 킬리언 머피가 호명이 되며 안심이 됐다. 저보다 20년 넘게 앞서간 존경하는 선배님이시고, 또 제가 팬으로서 그분의 모든 작품을 공부했기에 킬리언 머피가 수상하게 되어 정말 좋았다. 제가 상을 타진 못했지만 이건 컴페티션(competition, 경쟁)이 아니다"라고 떠올렸다.
이어 유태오는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나고 킬리언 머피에게 직접 다가가 '당신의 연기에 대한 1호 학생이다' 그런 말을 전했다. 용기를 내서 인사를 건넨 것이었는데 킬리언 머피가 고맙게도 저를 포옹해 주셨다. 그 덕분에 따뜻한 온도를 경험했다"라면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님도 소개해 주셨다. 제가 못 만났다고 하니까 손을 딱 잡고 감독님 앞에 딱 데려가주신 거다. 놀란 감독님이 이미 우리 영화를 봤다는 얘기는 들어서 저도 팬이라고, 전작들을 다 봤다는 말씀을 드렸다. 나중에 한국 배우 필요하시면 불러달라고도 했는데, 놀란 감독님이 씩 웃으시면서 연기하는 거 봤으니 걱정 말라는 한마디를 해주시더라"라고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패스트 라이브즈' 출연에 대해선 "우리나라에서도 절 평범한 한국 남자로 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에, 이런 이미지인 해성 캐릭터가 당연히 저한테는 얘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다들 아시다시피 제 뒷배경이 다국적, 교포이니까. 스스로 어휘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느끼고 있고. 그래도 미국 매니저가 (유)태오는 뭔가 있는 거 같다며, 마지막에 오디션 명단에 제 이름을 올렸다고 하더라. 그렇게 공식적인 오디션 단계를 밟았는데, 보통 1시간이면 끝나는 걸 3시간 30분 정도 봤다. 시나리오에 있는 모든 신을 다 시키셨고, 시간이 지날수록 저도 자신감이 생겼다. 그 오디션을 치른 2주 뒤에 청룡영화상(2021)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는데, 그날 '패스트 라이브즈' 캐스팅 소식을 들었다"라는 과정을 설명했다.
유태오는 "내 인생을 바꾼 영화"라고 남다르게 표현했다. 그는 "제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고 있었다. 근데 이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거 같다. 관객들,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보고 제가 느낀 마음을 똑같이 느낀다면 이후에 제 커리어가 세계적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물론, 아직도 미국 작품 오디션을 위해 열심히 테이프를 찍고 미팅을 보러 다니고 있지만 변한 점은 50%가 넘게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는 거다.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감사한 상황이 생긴 거다. '패스트 라이브즈'가 기점이 되어 달라졌다"라고 상승세를 자랑했다.
또한 유태오는 "주관적으로 달라진 지점은 연기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지난 20년 동안은 학교에서 배운 기술적 방식으로 모든 역할에 접근하였다. '패스트 라이브즈'가 '인연'을 다룬 영화이기에 이 동양철학을 진심으로 공부하고 이해하면서부터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연기해야 할 캐릭터도 인연이고 관계라면, 이미 내가 살았던 영혼이라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고 믿음이 생겼다"라고 변화를 짚었다.
뿐만 아니라 유태오는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한층 유창한 한국어 발음으로 대사를 소화, 연기 포텐을 터뜨려 눈길을 끌었다. 이에 유태오는 "김규현 선생님이라고 코치님이 계신다. 제가 연기를 운동선수처럼 접근하고 있다. 메달 땄다고 연습 안 하는 게 아니 듯, 작품이 있든 없든 간에 매주 선생님을 만나서 같이 공부하고 있다. 외치면서 말하는 행위, 한국말 등을 연습한다. 그리고 제 위치에서 항상 생각해야 할 건 외국 관객, 한국 관객을 동시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관객에게만 맞추면 외국 관객이 우스꽝스럽게 볼 수 있고, 그렇다고 너무나 미국 스타일로 하면 우리나라에서 많은 연기 비평을 들을 수 있으니까. 각국의 감수성을 생각하며 연기했다"라고 세심한 노력을 전했다.
군 미필자이지만 이번 작품에서 군 생활을 연기하며 특별한 간접 경험을 하기도. 이에 관한 소감을 묻자 유태오는 "군 생활은 안 해봤지만 못지않은 합숙 훈련을 한 적이 있다"라고 돌연 추억 여행에 빠져 흥미를 자극했다. 그는 "독일에서 15세부터 미국 가기 전인 21세까지, 농구선수로 지냈다. 독일 학교는 방학이 2달 정도 됐는데 그때 한양대에 합숙 훈련을 하러 갔다. 당시 1990년대 중후반엔 한양대 훈련이 극단적인 걸로 유명했다. 거기서 단체 기합을 경험했다. 머리를 박으라고 해서 왜 박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온 사람인데, 농구만 사랑해서 온 사람이었는데. 선배님들이 야구 방망이로 때리기도 했는데 그때 방망이가 부러지는 것도 처음으로 봤다. 너무 힘들었지만 저에겐 동질감, 정이라는 걸 처음 경험해본 순간이었다. 그래서 다음 해에 또 가겠다고 자진했고, 3년 연속 한양대 합숙 훈련을 받았다. 삼성 농구단 스카우트 제안까지 받았는데 무릎 부상으로 못 갔다. 어딜 가나 아웃사이더라고 느꼈던 제가 예외적인 경험을 해서 좋았다. 어떤 우리나라 사람보다 끝까지 집요하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라고 회상했다.
셀린 송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을까. 유태오는 "멋있는 감독님이다. 신인이든 베테랑이든 떠나서 사람으로서 주관이 뚜렷해서 편하고 좋았다. 가끔씩 다른 현장에선 스스로 원하는 걸 모르셔서 많이 시켜 건져내려 하는 듯한 느낌의 감독님들이 계신다. 그게 꼭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것도 필요할 때가 있고 하나의 방식일 수도 있겠지만 셀린 송 감독님은 다 확신을 갖고 알고 하시니까 배우 입장에서 편했다"라고 역량을 높이 샀다.
더불어 유태오는 넷플릭스 미국 오리지널 시리즈 '더 리크루트' 시즌2에 합류, 노아 센티네오와 협업하는 소감도 밝혔다. 그는 "새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나쁜 소년' 촬영을 1년간 진행하고, 너무 힘들어서 쉬려고 했다. 그때 할리우드 파업도 있어서 본의 아니게 1년 반을 쉬게 되었다. 그러다 뭔가 작품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생각하던 와중에 '더 리크루트2' 오디션 제안이 들어온 거다. 노아 센티네오도 여러 출연 이유 중 하나였다. 노아 센티네오 팔로워 수가 1,500만 명이 넘는다(웃음). 그 옆에 붙어 있으면 저한테도 그 빛이 넘어오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 오디션 때부터 저와 노아 센티네오와 케미가 좋다고 하여 성사가 된 거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유태오는 연예계 대표 사랑꾼답게 11세 연상의 아내인 아티스트 니키 리를 향한 애정을 과시했다. 그는 "사자성어로 '천생연분'이라고 있지 않나. 저와 아내는 그런 사이라는 생각이 든다"라며 "사실 35세 이후의 삶이 잘 안 그려졌는데,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니키가 제 인생을 구원해 준 거다. 어떻게 보면 저는 붕 떠있는 광대이고, 니키는 저보다 이 사회에 단단하게 서 있는 사람이다"라고 애틋하게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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