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기 발주’ 경계하고 자금 운용 기준 명확해야…재건축·재개발 복마전 피해가는 법[부동산 빨간펜]
하지만 재건축, 재개발을 단순히 이해관계로만 접근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정상적인 사업 추진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죽하면 ‘복마전(伏魔殿)’이라는 수식어가 붙을까요? 각종 분쟁과 갈등으로 조합원 간 신뢰가 허물어지면서 의사결정 자체가 불가능해지기도 합니다. 사업 지연으로 선량한 조합원이 피해를 입고 정비사업의 순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번 부동산 빨간펜에선 지난해 12월 한국부동산원이 발간한 ‘재개발·재건축 조합운영 실태점검 사례집’을 바탕으로 재개발·재건축 때 유의해야 할 점을 알아보겠습니다.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처럼 다른 현장에서 벌어진 사례를 배워 사업 지연을 피하시길 바랍니다.
Q. 재개발, 재건축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얼마나 발생하나요?
“한국부동산원이 2003년 7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언론 보도, 판례, 검·경 수사결과 등을 통해 집계한 부정행위는 총 350건입니다.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지점은 사업시행인가 이전 단계입니다. 교통, 환경, 건축 등 각종 심의를 받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위반사항이 137건으로 전체의 69%를 차지합니다. 이어 조합설립인가(39%), 시공사 선정(19%), 관리처분(15%) 순입니다.
사업시행인가 전 단계에서는 협력업체 선정을 두고 다양한 부정행위가 벌어진다고 합니다. 설계와 시공부터 사업관리, 사업비 및 이주비 대출, 법무, 감정평가, 자금관리, 인테리어, 조경, 폐기물 처리 등 할 일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조합과 각 업체가 유착된 것은 아닌지 의심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 강동구의 한 재건축 추진위원회는 정비업체 선정을 위한 주민 총회를 앞둔 상황에서 특정 정비업체 직원 명의로 사무실을 빌렸다 유착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서울 성북구의 한 재개발 조합에서는 선정한 설계업체가 해당 조합을 맡은 정비업체 대표의 부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밝혀지기도 했죠.
부정행위가 적발돼 징역을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경기 고양시의 한 재개발 조합장은 추진위원장 때부터 정비업체에서 운영자금 및 정비업체 선정 관련 청탁 대가로 6000만 원의 뇌물을 받았습니다. 이후 이를 고발한 정비업체 대표와 합의하기 위해 조합 계좌에서 1억 원을 횡령해 정비업체 대표에게 송금하기도 했죠. 결국 해당 조합장은 징역 3년 및 벌금 6600만 원을, 정비업체 대표는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구분 |
점검사항 |
조합행정 |
상근임원 임명시 인사규정에 따라 의결했는지 |
자금차입 |
금액, 이자율, 조달 및 상환방법 등을 총회 의결했는지 |
예산확보 |
당해 회계연도 사업비 예산을 총회 의결했는지 |
계약내용 |
입찰제안서 내용과 계약 내용이 동일한지 |
시공사 선정 |
수의계약 시 일반 경쟁 입찰이 2회 이상 유찰되었는지 |
Q. 다른 불법·편법 유형에는 무엇이 있나요?
“조합이 계약을 맺는 과정을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계약은 일반경쟁을 통해 이뤄지며 수의계약을 맺으려면 관계 규정에서 정의한 금액 내에서만 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사업금액을 낮추려고 동일한 과업 내용을 분리하는 ‘쪼개기 발주’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2018년 12월 대구의 한 재건축 조합은 측량업체와 총 1억2800만 원 규모 계약을 맺었습니다. 내용을 들여다보니 사업을 △지적예정측량(지구계) △지적확정측량 △지적예정측량(지구 내) 등 5000만 원 이하 계약으로 쪼개서 발주해 수의계약을 맺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행정 처리 과정에서 관련 자료를 보관하지 않기도 합니다. 총회나 대의원회, 이사회 등을 열어 각종 결정을 내리면 속기록이나 녹음, 영상자료를 만들어 청산할 때까지 보관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이죠. 조합장 교체 과정에서 기존 조합장이 업무 자료를 넘겨주지 않고 협조하지 않는 일도 발생합니다. 단, 이는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수사 의뢰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Q. 조합의 자금 사용과 관련된 문제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먼저 조합이 예산을 용도 외로 사용하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구의 한 재개발 조합은 조합원 병문안 시 조합비용으로 위로금을 지급했는데 이때 조합원 별 위로금이 서로 달랐다고 합니다. 정관 등에서 기준을 정하지도 않았고 예산도 수립돼 있지 않았죠. 서울의 한 재개발 조합에서는 별도 규정 없이 조의금을 지급하다가 적발돼 시정명령 및 환수조치를 받았습니다.
조합이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자금 차입을 위해서는 총회 결의가 필수적이고 이때 자금차입한도, 기간, 이자율, 상환방법 등을 명시해야 합니다. 따라서 차입 관련 사항을 조합장 또는 대위원회로 위임하는 것은 효력이 없습니다. 구체적인 사항을 ‘추후 대의원회에서 결정’ ‘협의’ 등으로 기재해서도 안됩니다.
회계 감시도 필요합니다. 부산의 한 재개발 조합은 적정 예산을 수립하지 않고 총회에서 예·결산을 비교해 조합원에게 보고하지 않아 지자체 합동점검에서 적발됐습니다. 2022년 사업비 예산 총액은 약 5602억 원이었는데 손익계산서와 공사원가명세서 상 총 비용은 6061억 원이었습니다.
조합원이 정비사업과 관련된 구체적인 기준을 모두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큰 틀에서 사업을 이해하고 조합에서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재건축, 재개발 뒤에 붙는 이름은 ‘사업’입니다. 본인의 중요한 자산을 사업에 출자하는 만큼 자산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자체, 부동산원의 관련 교육을 받거나 세미나 등에 참석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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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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