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3월1일, 만주국 건국 ‘마지막 황제’ 푸이

한겨레 2024. 2. 2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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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제' 푸이는 어수룩한 이미지다.

그런데 연구자 기시 도시히코에 따르면 푸이는 뜻밖의 수완가였다고 한다.

푸이는 만주족 사람이고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다.

1933년 3월1일에 푸이는 다시 한번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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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푸이 1906~1967

‘마지막 황제’ 푸이는 어수룩한 이미지다. 영화와 드라마 때문에 그런 인상이 굳었다. 그런데 연구자 기시 도시히코에 따르면 푸이는 뜻밖의 수완가였다고 한다. 전범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 전쟁 후 물색 모르는 척을 했다나.

1931년 9월18일, 만주사변이 터졌다. 일본의 관동군이 만주 땅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나라를 세웠다. 국가 원수로 푸이를 데려다 앉혔다. 푸이는 만주족 사람이고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다.

만주국이 선 날이 1932년 3월1일이다. 처음에는 공화국이었다. 공화국 수반이라는 자리가, 푸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완을 부려 만주국을 제국으로 다시 세웠다. 1933년 3월1일에 푸이는 다시 한번 황제가 되었다.

만주국의 슬로건은 오족협화. 다섯 민족이 사이좋게 지내는 이상국가를 표방했다. 그런데 다섯 민족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도 나라가 무너질 때까지 합의가 되지 않았다. 어떤 포스터는 조선인과 일본인과 만주인과 몽골인과 중국 한족의 다섯 민족이라고 했고, 어떤 포스터는 만주인과 중국 한족을 중국인으로 묶고 러시아 이민자를 그려 넣기도 했다.

만주 사람을 위한 독립국가라는 구실도 허상이었다. 만주 소녀의 얼굴이 큼직하게 들어간, ‘미스 만주’로 불리던 포스터가 있다. 동아시아에서 만주국을 상징하는 이미지였다. 그런데 모델은 사실 일본인 소녀 오시마 야에미였다고 한다. 만주국을 상징하던 영화 스타 리샹란도 사실 정체는 일본 사람 야마구치 요시코였다.

1942년에는 건국 10주년 행사를 했다. 일본과 나치 독일에서 축하를 해줬다. 이때 안익태가 ‘만주 환상곡’을 작곡하고 연주한 일이 한참 뒤에 논란이 됐다. “만주국 환상곡이 아니라 만주 환상곡이니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 유족의 주장. 한편 이해에 박정희가 우수한 성적으로 사관학교를 졸업해 푸이가 주는 시계를 상으로 받았다는 일화가 있다(직접 만나서 받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이 무너지며 만주국도 무너졌다. 푸이는 현대 중국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평범하게 살다 세상을 떠났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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