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운용은 보수가 낫다’는 말, 이젠 헛소리 [아침햇발]

정남구 기자 2024. 2. 2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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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1개에 4990원 하는 사과가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정남구ㅣ논설위원

“목련이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 서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2월3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김포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이 될 것’이라고 단정해 말하지는 않았지만,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빠져나갈 구멍을 크게 만들지도 않았다. 요컨대, ‘4월10일 총선거에서 여러분이 국민의힘 후보를 뽑아 과반 의석을 만들어주면 특별법을 통과시켜 김포시를 서울시에 편입하겠다’는 뜻으로 나는 읽었다.

주민투표를 거치고, 경기도와 서울시 의회의 동의를 얻어 김포시를 서울시에 편입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경기도민이나 서울시민 60% 이상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으면 이를 우회해 특별법으로 서울 편입을 밀어붙이기는 할까? 나는 안 할 것이라고 본다. 선거가 끝난 판에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아가며 추진할 만큼 실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국민의힘이 과반 의석을 못 얻어야, ‘목련꽃이 질 때 한동훈 위원장이 사기꾼 소리를 듣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총선 전략으로 사람들의 가슴에 부동산 개발 이익 기대심리를 부풀리고 있다. 지난해 10월30일 김포시 서울 편입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뒤, 다른 서울 주변 도시의 서울 편입도 입에 올렸다. 한동훈 위원장은 김포 방문 전날 구리시를 찾아 서울 편입을 신속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요란하게 북을 치며 그 뒤를 따라간다. 2월5일에는 2기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추진계획을 밝혔고, 21일에는 원칙적으로 개발이 불가능하던 환경평가 1~2등급지까지 포함해 비수도권 그린벨트를 적극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26일엔 여의도 면적 117배에 이르는 339㎢에 대해 군사보호구역 지정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부동산에는 마약 같은 성분이 들어 있다. 문학평론가 고 김현이 1978년 9월 ‘뿌리깊은 나무’에 쓴 글의 한 구절이 다시 떠오른다. “아파트값이 움직이는 시기에는 모든 아파트 주민이 소다를 잔뜩 넣은 밀가루 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아파트 단지는 사람을 적당히 미치게 하는 데에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8년 4월 총선 때 서울 각지에서 뉴타운 지정을 공약해 큰 재미를 본 적이 있다. 나중에 큰 후유증을 남겼지만, 서울에서 48석 가운데 40석을 쓸어담으며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정부와 국민의힘 지도부는 그 추억을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이번에도 사람들의 가슴에 바람이 들고, 표가 움직일까? 기대를 갖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이 들썩거리는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주택 시장 흐름이 좋지 않고, 폭증한 가계부채와 고금리 탓에 사람들이 거꾸로 마음을 졸이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슬프다’고 한 것은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부와 여당의 정책 능력이 이런 수준밖에 안 되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2기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그린벨트 해제, 군사보호구역 해제 방침은 모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이른바 ‘민생토론회’에서 발표됐다. 그게 당면한 ‘민생 현실’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부동산 개발로 경기를 살리고, 그 혜택이 서민들에게도 돌아가게 하겠다는 말이라면 얼마나 케케묵은 발상인가.

지난해 한국 경제는 1.4% 성장에 그쳤다. 소비자물가는 3.6%나 올랐다. 지난해 1~11월, 상용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의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은 2022년에 견줘 0.9% 줄었다. 가계 신용대출이 크게 줄었으나 주택담보대출이 45조원이나 늘어나면서 전체 가계대출이 10조원 증가했고, 연체율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개인회생 신청 건수가 12만1017건으로 2022년보다 34.5% 늘어나 2014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그러나 민생을 챙기는 일에 정부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세수가 56조4천억원이나 덜 걷혀서, 국회 승인을 받아 쓰기로 했던 돈조차 못 썼기 때문이다.

올해는 뭐가 좀 나아질까? 한국은행은 지난 22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로 제시하면서, 민간소비 증가율은 1.6%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1.9% 전망에서 크게 낮췄다. 민생 형편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인데, 정부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집, 땅, 주식을 가진 사람들의 가슴에 바람을 불어넣는 일에만 무진장 애를 쓰고 있다. 슬픈 일이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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