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자립하는 법 배웁니다…편견 맞서는 위기·고립 청년들
경기 성남시 중원구 단대오거리역에서 내려 언덕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작은 카페 ‘그런날’이 보인다. 겉보기엔 평범한 카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겐 조금 특별한 공간이다. 사회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2020년 문을 연 이 카페는 성남시에서 활동 중인 비영리법인 ‘일하는 학교’에서 운영한다. 그런날은 수익금으로 학교 밖·위기 청년·청소년들에게 일경험의 기회를 지원다.
일하는 학교는 2013년 설립돼 학교 밖 청소년, 고립(은둔) 청년들을 대상으로 ‘자립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첫 시작은 대안학교 교사들이 모여 하게 됐다. 대안학교 청소년들이 성인이 돼서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고민하다가 학교 밖에서도 의지하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난 28일 ‘그런날’에서 만난 박지영씨(가명·20)도 일하는 학교를 거쳤다. 그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현재는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숍 취업을 준비 중이다. 박씨는 중학교를 중퇴한 뒤 학교 밖 청소년으로 생활하다가 ‘일하는 학교’를 접한 뒤 일상생활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박씨는 “처음에는 ‘나 하나쯤은’이라는 생각으로 지각을 자주 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너의 빈 자리를 책임져야 하는 다른 친구들을 생각하라’고 이야기했고, 그 순간 나도 구성원이 됐다고 느껴 책임감이 생겼다”라며 “현재는 일머리도 생겨 취업해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했다.
일하는 학교를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저마다의 상처가 있다. 가정불화를 견디지 못해 집과 학교를 떠난 학생, 학교폭력의 상처 탓에 성인이 돼서도 스스로를 고립시킨 청년 등이다. 모두 사람들과 일상적인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일하는 학교는 이런 청소년·청년들에게 3단계에서 걸쳐 자립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처음 학교에 오면 고립·은둔에서 벗어나 일상을 회복하거나 주변인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시간을 두 달 정도 가진다. 밖에서 산책하기, 오프라인 매장에서 물건 사기 등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차츰 밖으로 나오는 법을 배운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바리스타나 사회복지 분야, 영상 제작 등에 대한 진로 경험을 3개월 가량 하며 적성을 찾아가게 된다. 이후 멘토링이나 인턴십, 구직 연습 등을 하며 본격적인 취업 준비에 뛰어들게 된다.
이정현 일하는 학교 사무국장은 “모든 청년은 주도적이고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정형화된 틀로 바라보는 것이 문제”라며 “그렇게 특정 집단을 규정하는 순간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은 배제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일하는 학교는 그 틈을 메우는 노력을 하고 있다”라고 했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이 과정을 거친 위기·고립 청소년들은 600여명에 이른다. 2019~2023년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경우 총 139명이 참여해 118명이 구체적인 진로목표와 계획을 세웠다. 33명은 인턴십 프로그램을 수료했고 72명은 취업 또는 창업에 성공했다.
그러나 지난 12년간 지역사회의 위기·고립 청년들의 울타리가 돼 준 일하는 학교는 최근 위기를 맞았다. 성남시에서 지원해오고 있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예산’(1억1000만원)이 올해부터 끊겼기 때문이다. 이는 전체 운영비의 6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일하는 학교는 급한대로 정기 후원자 모집에 나섰는데, 올해 총 100여명의 후원자 중 20여명이 일하는 학교 졸업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무국장은 “당장 직원들의 월급을 줄여야 할 정도의 위기이지만 이 또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지원금을 받지 않으니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라면서 “우선 후원자 모집을 통해 활동을 지속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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