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떠보니 사과 1만원…“수입해도 최소 4년 뒤” 온다는데
현장 잘 아는 농민은 통계 생산 참여 못 해
관세 내려 과일 수입하면 그만? 능사 아니다
사과 한 소쿠리에 1만원인 시대다. 구정을 앞두고 폭등한 과일값은 몇 주가 지나도록 내릴 기미가 없다. 기후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십 년간 농산물값을 시장에만 맡겨둔 결과라고 ‘지속가능 국민밥상포럼’의 백혜숙 대표는 말한다. 2024년 2월19일 <한겨레21> 유튜브 프로그램 ‘4기자’가 백 대표와 함께 과일값 결정 구조를 들여다봤다(귤, 사과값 왜 이래? 무책임한 농업정책 때문이야!). 영상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대형마트·경매 유통 복마전…농민이 더 벌지도 못했다
―급등한 과일값이 내리질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인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일단 기후의 변동성이다. 지난해 꽃이 피어야 할 4월에 온도가 급감하면서 개화가 잘 안됐다. 거기다 장마에 탄저병이 뒤따랐고 과일 수분을 하는 벌들도 실종됐다. 결과적으로 사과 수확량이 전년보다 30%가량 줄었다.
둘째는 정부의 예측 실패다. 우리나라는 농산물 생산량 예측 통계를 농림축산식품부와 통계청이 각각 다르게 낸다. 정작 현장 상황을 잘 아는 농민들은 (통계 생산에) 참여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예측에 실패했고 사후관리도 부족했다.
셋째는 경매 위주의 가격결정 구조 문제다. 경매 특성상 가격이 그렇게 결정될 수밖에 없다.”
―경매 특성이 어떻다는 건가.
“경매에선 물량이 줄면 가격이 폭등하고 물량이 많아지면 가격이 폭락한다. 대부분의 국내 농산물 가격은 전국에서 물량이 가장 많이 몰리는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결정된다. 가락시장에선 (시장 참여자들이) 서로 협상하고 생산원가와 물류비가 얼마고 따지지 않는다. 그냥 농민이 올려보내면 중도매인들이 ‘나 얼마에 살게’ 해서 경매로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다.
거기다 대형 유통마트는 대응이 진짜 빠르다. 작황이 30% 줄어든다고 하면 농민들에게 미리 대량으로 사재기한다. 그러면 가락시장에 나오는 물량이 더 줄고 그만큼 가격은 더 오른다.”
―대형마트에 물량을 넘긴 농민은 돈을 버나.
“그렇지도 않다. 대형마트가 가락시장 가격 폭등분만큼 농민한테 주는 것도 아니다. 자본력이 있기에 가격을 후려친다. 그렇더라도 농민은 판매처가 확보되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싼값에) 팔게 된다.”
누구도 이 가격의 경로를 추적하지 않았다
―과일값 폭등 막으려면 뭘 해야 하나.
“바로 해야 할 것은 유통 구조 개선이다. 지금은 실태 파악도 돼 있지 않다. 유통 경로마다 어떤 단계와 가격변동을 거쳐 소비자에게 오는지 누구도 추적하지 않는다. 농가에서 농협을 통해 출하하는 경우와 쿠팡을 통해 출하하는 경우, 물량과 가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파악하는 게 먼저다.”
―제도적 대안도 있나.
“현재는 공영 도매시장에 농산물이 들어오면 경매로 가격을 정하도록 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으로 강제한다. 같은 법에 직 거래 도매상(시장도매인 제도)도 있는데 실제론 도입하려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경매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와 생산자가 직거래하는 제도인데, 생활협동조합 같은 구조가 공영 도매시장에 확대되는 거라고 보면 된다.”
―그간 정부 차원의 대처는 어땠나.
“문재인 정부 때 많이 기대했는데 농산물 유통 구조가 바뀌지 않았다. 다만 그때는 지금처럼 기후위기가 예측 불가능한 정도가 아니었고 부처별로도 물가관리책임제를 운영해서 계란값이며 과일값을 추적 관리했다. 그런데 지금은 ‘가격 올라가면 관세 내려서 수입하면 된다’는 기조니까 문제다.”
―농산물 수입 의존 기조는 어떤 점에서 문젠가.
“흉작으로 생산량이 30% 급감하면 가격도 30%만큼만 오르면 된다. 그런데 지금은 90% 이상 오르니 문제다. 그런 부분은 가격결정 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물량이 부족하니까 수입해서 확보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는 건 지금 이 구조를 바꾸지 않고 생각하는 거다. 수입이 능사도 아니다. 지금 사과를 수입한대도 빨라야 4년 뒤에 들어온다. 이름 모를 병해충이 많아 8단계씩 검사를 거쳐야 한다. 대표적으로 유럽에서 번성했던 과수화상병 같은 경우 우리나라에 퍼지면 과일을 다 파묻어야 한다. 굉장히 위험한 거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이 ‘관세 낮춰 생활물가 안정’을 취임 일성으로 내세웠는데.
“결국 대량 수입으로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얘긴데 지금 국제 곡물가가 계속 요동치는 상황이다. 거기다 기후위기로 생산량까지 급감한다고 하면 그 나라(식량 생산국)가 수출하겠나. 우리나라는 중국처럼 대규모로 수입할 수 있는 나라도 아니다. 적게 수입하면 그만큼 가격도 더 높게 주고 사와야 한다. 국제 정세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2022년 8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정황근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식량주권’과 ‘수입 확대’를 함께 거론해 상충된다는 비판이 있었다.
“식량안보는 어찌 됐든 안정적 공급을 하겠다는 거라, 외국에서 조달하는 것도 식량안보에 속한다. 그런데 식량주권은 자국민이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으로, 또 문화적으로도 적합한 형태로 농산물을 생산하는 거다. 우리 국민이 농업체계를 주도하는 형태가 식량주권이다. 수입 확대를 거론하면서 식량주권을 언급했다면 무식의 극치인 거다.”
‘1인당 3알만 팔아라’ 남의 일 아냐
―기후위기 시대에 식량주권의 의미는.
“우리나라 식량자급률(45.8%·2020년 기준)이 그렇게 높지 않으니 어느 정도 수입은 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 농업이 말살될 정도의 수입은 안 된다. 우리 농업을 좀더 튼튼한 구조로 만들어야 하는데 제도와 정책을 견고하게 하지 않고 수입에만 의존하는 건 ‘폭망’하는 거다.
한 예로 영국은 토마토를 굉장히 많이 먹는 나라인데, 지난해 토마토 조달이 안 돼 슈퍼마켓이 난리가 났다. 주요 수출국인 스페인이 작황 부진으로 토마토 수출을 금지한 거다. 오죽하면 ‘(소비자) 1인당 세 알만 팔아라’고 할 정도다. 지금은 예측 불가한 기후위기 시대고 전쟁 위기에 있다. 사실상 섬나라인 우리나라는 유럽처럼 가까이서 거래도 못한다. 그만큼 우리나라 농업을 견고하게 육성하는 게 중요하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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