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성별 고지 합법화…임신 몇주차부터 알 수 있나
37년간 금지됐던 임신 32주 전 태아 성별 고지 금지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받았다. 이전보다 조기에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있게 된 가운데 얼마나 일찍 성별을 구분할 수 있는지가 관심이다. 지난 30여년간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태아의 성별을 가장 빠르게 판별할 수 있는 시기는 임신 7주 이후인 것으로 나타났다.
헌재는 28일 의료인이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것을 금지한 현행 의료법 20조 2항에 대해 위헌 결정했다. 현행 의료법에 따라 의료인은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을 임신부나 그 가족 등에게 알려줄 수 없었지만 이제는 언제든지 가능하다. 헌재의 위헌 결정은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국내 전문가들은 일반적인 산부인과에서 보편적으로 실시되는 검사체계를 감안하면 앞으로는 통상 임신 17주 정도에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있게 될 것으로 본다. 조금준 고려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가장 일반적으로 이뤄지는 초음파 검사로 정확한 성별을 알기 위해선 이 정도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의료기관에서 태아 성별을 구분하는 데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은 초음파 검사다. 태아의 생식기는 태아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변화하면서 각각 남아와 여아의 것으로 발달하게 된다. 여아의 생식기는 임신 11주, 남아의 생식기는 임신 13~14주 경 발달이 완료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초음파 영상으로 생식기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선 임신 17주 이상 발달이 진행된 뒤 확인해야 한다.
초음파 영상으로 생식기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선 아래에서 위로 영상을 촬영하는 각도법이 사용된다. 남아의 경우 생식기 각 부위 말단이 아주 작은 3개의 점으로 영상에 나타난다. 이 '삼각점'이 없으면 여아로 판단할 수 있다.
태아의 성별을 판별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양수 검사가 있다. 임신 15~20주 사이에 임신부의 복부를 통해 바늘을 넣어 채취한 양수를 사용해 태아의 염색체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국내 의료기관에선 통상 임신 16주 정도에 양수 검사를 실시하며 분석 결과가 나오는 데는 1~2주 정도가 더 소요된다. 염색체를 직접 분석하기 때문에 정확도가 100%에 가깝다.
태아의 기형아 여부를 조기에 확인하는 산전선별검사(NIPT)도 성별 감별에 활용될 수 있다. NIPT는 산모 혈액 내에 담긴 태아 DNA를 분석하는 검사법이다. 수 백만 개 이상의 DNA 조각을 동시에 읽어내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이 사용된다. 간단한 혈액 채취로 분석이 가능해 산모의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는 양수검사를 대체하는 염색체 분석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 기술을 개발한 데니스 로 홍콩중문대 교수는 2022년 미국의 '노벨생리의학상'으로 불리는 래스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NIPT는 임신 12주차 정도에 첫 검사를 실시할 수 있으며 결과가 나오기까지 1주 정도가 더 필요하다. 국내에선 현행법상 이 시기에 태아 성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금지돼 왔지만 이번 헌재 결정에 따라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후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NIPT는 더 이른 시기에 태아의 성별을 감별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생명공학기업 미리아디제네틱스에 인수된 NIPT 전문업체 게이트웨이지노믹스의 연구팀이 2022년 국제학술지 '임신과 아동건강'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NIPT는 임신 7주차인 미국 산모 1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에서 99%의 정확도로 태아 성별을 감별해냈다.
이번 헌재 결정은 부모들의 알권리를 존중한 결과라는 해석이다. 저출산이 심해지고 남아선호가 거의 사라진 최근에는 태아의 성별 고지를 보다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해졌다는 설명이다.
헌재 또한 이번 결정에 대한 다수 의견에서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알고자 하는 것은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욕구로 태아의 성별을 비롯해 태아에 대한 모든 정보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는 부모로서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라며 현행 금지 조항은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다"고 지적했다.
태아 성별을 조기에 아는 것은 예비 부모들이 양육 계획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하버드 의대 부속 메사추세츠종합병원 연구팀이 2004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모가 태아의 성을 알고 싶어하는 이유로는 모유 수유 계획, 아이 성별에 따른 집 구조 변경, 특정 성 선호 등이 꼽혔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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