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신각신’ 인권위…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평가 보고서 논의도 못해 [플랫]

플랫팀 기자 입력 2024. 2. 2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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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가 또다시 인권위원 간 말다툼으로 파행을 빚었다. 지난 26일 열린 인권위 전원위에는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의 국내 이행 정도를 인권위가 독립적으로 평가한 보고서 의결 안건이 상정됐으나 논의하지도 못하고 폐회됐다.

한국은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에 가입한 당사국으로, 정부는 지난해 5월 협약 이행 상황을 담은 보고서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에 제출한 바 있다. 5월 중하순으로 예정된 유엔의 정부보고서 심의에 앞서, 인권위는 한국의 여성차별철폐 이행 상황에 대한 독립보고서를 4월쯤 제출할 계획이다.

보고서에는 ‘여성·성평등 정책 후퇴·축소’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여성에 대한 젠더 기반 폭력’ 등 주요 쟁점에 있어 한국의 이행 정도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이 담길 예정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의전화 등 시민단체에서 10명이 회의를 방청할 정도로 중요한 보고서다.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이준헌 기자

문제는 기한이 촉박하다는 점이다. 송두환 인권위원장은 이날 “심의 내용을 보고서에 반영한 뒤, 영문 번역하고 감수 거치는 과정이 필요해 조속한 처리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날 열린 2024년 제4차 전원위에서 위원 간 공방과 말 꼬투리 잡기, 비난이 오가면서 해당 안건은 논의를 시작조차 못 했다.

전원위에 총 6건의 안건이 상정된 것은 오후 3시 개회 이후 2시간이 흐른 오후 5시쯤이었다. 지난해 12월7일 제9차 침해구제 제1위원회에서 소위원장인 김용원 상임위원이 안건 기각과 관련해 문제 발언을 했는지, 아닌지를 두고 위원들 간 공방이 2시간 가까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의결 안건이 상정된 후 두 번째 순서로 논의된 일반회계 결산 의결 건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김 상임위원이 송 위원장의 관서 업무추진비가 과다 지출되었다고 문제를 삼고, 이충상 상임위원과 한석훈 위원도 “어영부영 넘어갈 수 없다”라는 취지로 의결에 반대했다. 남규선 상임위원과 윤석희·김수정·원민경 위원은 “이미 업무추진비 내역은 다 공시하게 돼 있는 것”이라며 맞섰다.

김용원·이충상·한석훈 위원이 결산안 자체에 대한 부결을 요구하자 인권위 사무처는 “관서 업무추진비는 총액 변화가 없으면 전년도와 비슷하게 배분된다”라며 “결산보고서 제출은 2월 말까지 모든 중앙관서가 동일하게 제출하도록 법정기한으로 정해져 있다. 22년 인권위 역사상 결산안이 부결된 사례가 없다”라고 난색을 보였다. 결국 송 위원장은 다음 회기에 결산안을 재상정키로 했다.

박진 사무총장은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해 “회의 진행 과정에서 험한 말과 고성 오가는 게 일상이 됐지만, 이게 일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걸 직원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라고 했다. 그러자 세 위원은 “사무총장 훈계 듣고 싶지 않다”라며 오후 7시36분쯤 퇴장했다. 이로 인한 의결정족수 미달로 유엔 독립보고서 관련 안건은 논의가 무산됐다. 다른 의결 안건 3건에 대한 논의도 다음 전원위로 미뤄지게 됐다.

송 위원장은 폐회 선언 직전 “이 안건은 시기적으로도 별로 여유가 없는 상황에 있고, 의결 안건 때문에 기다리는 방청인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가급적 상당한 정도의 심의라도 했으면 좋겠지만,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라고 말했다. 송 위원장은 “기다리셨던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겠다”라고 했다.

4시간30분 동안 방청했으나 안건 논의를 보지 못하게 된 여성시민단체 회원들은 아쉬움을 표했다. 오경진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은 “독립보고서가 잘 만들어지는 게 올바른 관점에서 성평등이 나아가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방청을 왔다”라며 “회의를 일부 위원들이 고의적으로 지연시키는 모습이 우려스럽고, 다음번 회의 때에도 안건 심의가 될 수 있을지 걱정된다”라고 했다.

▼ 전지현 기자 jhyun@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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