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전 진실화해위원장,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마을 찾아 유족 위로

고경태 기자 2024. 2. 2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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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법부의 판결과 엇갈린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은 한때 진실규명의 책임자로 일했던 나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유족들을 위로하고 희생자들에게 작은 사과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올해 초에 용기를 내서 현장을 찾았다."

지난해 5월24일 열린 진실화해위 제55차 전체위원회에서 김광동 위원장을 비롯한 여당 추천 위원들은 "외국에서 외국인에 대하여 전쟁 시 발생한 사건까지 진실화해위가 조사하는 것은 법률이 정한 조사대상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주장했고 표결 끝에 4대3으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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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방문 뒤 기고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을 지낸 정근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베트남 하미 마을을 다녀와 직접 그린 그림이다. 2001년 한국 참전군인단체의 지원으로 세워진 하미 위령비는 한국 정부의 압력으로 인해 학살을 묘사한 비문이 그림처럼 연꽃에 가려진 상태다. 정근식 제공

“한국 사법부의 판결과 엇갈린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은 한때 진실규명의 책임자로 일했던 나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유족들을 위로하고 희생자들에게 작은 사과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올해 초에 용기를 내서 현장을 찾았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을 지낸 정근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다산연구소 누리집 ‘다산포럼’에 기고한 글이다. 정 교수는 본인의 위원장 퇴임 이후 진실화해위에서 조사 개시 건을 각하한 베트남 하미 마을을 찾아 사건 희생자 유족들을 위로했다고 한다. 그는 글에서 하미에서 만난 유족 응우옌럽을 만난 이야기를 전하며 “지뢰 사고로 앞을 보지 못하는 그의 눈물이 내 가슴에 뜨겁게 흘러내렸다”고 썼다.

2기 진실화해위 위원장을 지낸 정근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1월10일 하미 마을을 방문해 하미 학살 사건 생존자인 응우옌럽씨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정근식 제공

지난 1월6일부터 12일까지 다낭·꽝찌·후에·꽝남 등 베트남 중부지역을 둘러보는 한 여행사의 평화기행에 참여한 정 교수는 10일 여행 일정에 따라 한국군에 의해 주민들이 집단희생된 하미 마을과 퐁니·퐁녓 마을의 위령비를 참배했다. 하미 사건은 1968년 2월24일, 퐁니·퐁녓 사건은 같은 해 2월12일 벌어졌으며 각각 135명과 7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정 교수는 기고 글에서 “2023년의 봄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전향적 판단과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는 관행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며 지난해 2월7일 퐁니·퐁녓 학살에서 피해자의 손을 들어준 법원의 판결과 5월24일 하미 학살 조사개시에 대한 진실화해위의 각하 결정을 비교하며 언급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글을 맺었다. “용서라는 말보다 더 큰 아픔은 아직도 한국인을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유족들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오늘날 베트남은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이고, 가장 중요한 국제결혼 상대국으로 발전했지만, 유족들의 마음 깊숙이 남아있는 증오를 지우고 진정한 화해를 달성하려면 우리가 좀 더 멀리 보고, 분발해야 한다는 것이 명확했다.”

정근식 전 진실화해위 위원장(가운데)이 함께 간 평화기행단 사람들과 함께 하미 마을에서 학살 생존자와 피해자 유가족을 만나고 있다. 정근식 제공
하미 마을 생존자 응우옌티탄(왼쪽), 퐁니 마을 생존자 응우옌티탄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정근식 전 진실화해위 위원장. 베트남 피해자 두 사람은 동명이인이다. 정근식 제공

정 교수는 2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한 2020년 12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진실화해위 위원장을 지냈다. 이후 한국전쟁을 총괄해온 제1소위 상임위원 김광동씨가 대통령 지명을 받아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김광동 위원장 취임 이후 진실화해위는 급격히 보수적 결정들을 쏟아냈는데, 하미 사건 조사개시 각하도 그중 하나였다.

지난해 5월24일 열린 진실화해위 제55차 전체위원회에서 김광동 위원장을 비롯한 여당 추천 위원들은 “외국에서 외국인에 대하여 전쟁 시 발생한 사건까지 진실화해위가 조사하는 것은 법률이 정한 조사대상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주장했고 표결 끝에 4대3으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응우옌티탄 등 하미 사건 베트남 신청인 5명은 한국의 변호사들을 통해 “각하처분이 위법하고 선례도 전혀 없으므로 이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지난해 7월에 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정 교수는 2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10일 저녁 퐁니·퐁녓 및 하미 주민들과 함께 식사했는데 한 할머니가 안절부절못하며 ‘아직도 한국인에 대한 증오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해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학살의 실재 여부와 관련해서는 “주민들의 일관된 진술이 있는데 그걸 거짓말이라고 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 아니겠냐”고 했다.

그는 “위원장 퇴임 직후인 지난해 2월 베트남전 학살 관련 국가배상소송 재판 결과가 원고 승소로 나오며 진실화해위에서 무난하게 하미 사건 조사개시 건이 통과될 줄 알았는데 각하돼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와 함께 “현장에 가보면 다르다. 최근 진실화해위 야당 추천 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꼭 한 번 이른 시일 내에 베트남 해당 마을을 가보라고 권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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