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의 맛깔난 역사 토크쇼…“언제든 청하세요”

고경태 기자 2024. 2. 2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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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c21a1a;">[짬]</span> <span style="color: #278f8e;">‘조선 강담사’ 맥 잇는 방송인 김제동</span>
지난 23일 근정전 앞에서 경복궁 역사 나들이에 참여한 이들에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김제동 강담사. 나무의마음 출판사 제공

“저게 뭡니까? 세종이 손에 들고 있는 거….”

사람들의 눈이 하늘을 향했다. 지상 6.2m 위에 앉아있는 임금의 왼손엔 책 한 권이 들려있었다. 광장에 놓인 조선의 하늘(혼천의), 조선의 농사(측우기), 조선의 시간(해시계)을 지나 조선의 글(훈민정음)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제 궁궐로 향할 시간. “자 이제 광화문을 통해서 세종이 있던 경복궁으로 들어가 볼까요?” 익숙한 목소리와 얼굴에, 행인들은 자꾸만 힐끗힐끗 시선을 던져왔다.

전날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았던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대왕 동상 남쪽에서 출발해 광화문-흥례문을 지나 근정전-사정전-강녕전-교태전을 거쳐 화계 아미산 굴뚝과 흠경각-경회루로 이어지는 경복궁 역사 나들이가 진행됐다. 이날의 안내자는 ‘대한민국 1호 강담사(講談師)’를 자처하는 방송인 김제동씨였다. 극단 신세계 배우 김보경·이강호씨 등 10여명이 2시간30분가량 ‘김제동 강담사’를 따라다니며 조선시대 시간여행을 함께 했다.

경복궁·경주 등 역사 나들이 진행
맛깔난 이야기보따리 풀어내고
현실 풍자 은유로 ‘토크쇼’식 해설

원문 자료 읽기 위해 한자 공부하고
현장답사·예행연습 등 각고의 노력
자기 언어로 풀어내는 내공 남달라
“현장서 나눈 교감, 이야기 진화시켜”

강담사란 조선 후기의 직업군으로, 역사를 현실에 빗대 이야기하는 솜씨가 탁월했던 사람들을 일컫던 말이다. 한 시절 광장 노제나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으며 ‘사회사’로 활약했던 그가 현재 ‘강담사’의 맥을 이으며 맛깔난 역사 이야기보따리를 현장에서 풀어내고 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근정전은 왕 입장에서 들으면 좀 기분 나쁘죠. ‘부지런할 근’이거든요. 부지런히 정치해라. 사정전은 뭡니까. 생각하면서 정치해라. 그만큼 왕이라 할지라도 감시와 통제를 받았다는 거죠.”

김제동 강담사(왼쪽)가 광화문 앞에서 경복궁 역사 나들이에 참여한 이들에게 광화문이 일제 강점기에 겪어야 했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세종 때 천문학 연구는 거의 20년 프로젝트로 했어요. 명나라에 유학 가야 한다 그러면 장영실 같은 사람들 유학 보내고요. 지금으로 말하면 연구개발(R&D) 예산을 아낌없이 쏟아부었습니다. (웃음이 터지자) 아니 왜 웃으시는 거예요?”

왕의 공식 집무실인 근정전 앞에서는 바닥에 깔린 얇고 넓적한 박석의 매력을 설파했고, 나랏일을 의논하던 사정전 앞에서는 왕을 압박하던 사관과 신하들에 관해 말했다. 사관 민인생이 태종을 어떻게 노이로제에 걸리게 했는지, 세종 때 형조 참판이었던 고약해가 얼마나 고약하게 굴었는지에 관한 에피소드가 펼쳐졌다. 문화재 해설이 아니라 토크쇼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역사 속 인물들의 파노라마는 과거에서만 머물지 않고, 오늘의 현실을 환기하는 은유로 꽂히며 큰 웃음을 주었다. 수준(앙부일구), 하마평(하마대), 마누라(마루하), 양반(문반과 무반), 흥청망청(연산군의 기생)에 대한 뜻풀이도 재미를 더했다.

김제동 특유의 화법으로 조리된 이날의 메시지 중 하나는 경복궁이 왕의 고된 일터였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 지낸 세종의 재위 기간(32년)을 비롯해 경복궁이 임진왜란으로 불타기 전까지 조선 전기는 우리 생각만큼 꽉 막혀있지 않았고, 경복궁은 확 트인 언로의 상징이었다고 했다.

이날의 경복궁 역사 나들이는 공식 행사가 아니었다. 청년들의 나눔과 봉사를 위해 만들어진 ‘사단법인 김제동과 어깨동무’는 3월1일 30명을 공개 모집해 비슷한 내용의 나들이를 진행하지만, 김씨는 틈만 나면 알음알음 요청을 받아 이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불국사·무열왕릉·감은사 등에서는 3년 전부터 ‘김제동과 어깨동무’ 회원들과 1박2일 경주 역사 나들이 시간을 가져왔다. 1년 전부터는 진주성에서 남해까지 이순신의 길을 따라가는 역사기행을 했다. 10여년 전 처음 접하게 된 정토회 법륜스님의 불국사 및 동북아역사기행이 불씨가 되었다고 한다.

김제동 강담사가 경복궁 안에서 궁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고경태 기자

“어떻게 공부를 했냐”는 질문에 김씨는 “유튜브와 여러 자료를 보고 짜깁기했다”면서 애써 겸손을 표했지만, 직접 확인한 내공의 깊이로 볼 때 믿기 힘든 말이었다. 습득한 지식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실제 그는 자료 공부뿐 아니라 현장답사를 가고 예행연습 등의 훈련도 한단다. 요즘은 왕조실록 등을 원문으로 읽기 위해 한자 공부도 매일 하고 있다. 그는 “현장에서 사람들과 나눈 교감이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진화시켜준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날 한 참가자는 “경복궁 하면 한복 입고 돌아다니는 관광객만 떠올렸는데 이런 재밌는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경복궁과 광화문을 그냥 지나쳐 가지만 말고 한 번쯤은 쓱 들어와 여러 생각을 하면 괜찮지 않겠냐”고 했다. 역사를 탐구하는 의미와 관련해서는 “살면서 내가 뭘까, 내가 어디서 왔을까에 대한 질문을 진지하게 하는 때가 있는데, 옛 시대를 들여다보면 그런 답이 수월해질 것 같다”고 했다.

김씨의 역사 나들이에 함께하고 싶으면 ‘김제동과 어깨동무’ 누리집을 참고하면 된다. 다른 방법도 있긴 하다. 그는 “제가 세종대왕 동상 앞을 자주 어슬렁거린다. 저를 만나면 언제든 청하라. 실제로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아이들에게 안내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라고 했다.

꽃피는 봄에는 새로운 일정이 많다. 3월 중에 공감에세이 ‘내 말이 그 말이에요’(나무의마음)를 펴낸다. 또한 같은 달 엠비씨에브리원에서 편성하는 ‘고민순삭-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의 진행을 맡는다. 여름 지나 가을이 끝나는 11월엔 4·3 현대사를 현장에서 공부하고 싶어 제주도 답사를 한다. 신라·조선 시대를 넘어 4·3 이야기를 대중들 앞에서 실감 나게 풀어낼 김제동 강담사를 제주에서 곧 만날지도 모르겠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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