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상징주의 화가도 앓은 위암… 19세기엔 생전에 알 수 없는 병이었다

김철중 기자 2024. 2. 29.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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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속 의학] [99] 귀스타브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모로가 1864년에 고대 그리스의 작가 소포클레스의 희곡을 바탕으로 그린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귀스타브 모로(1826~1898년)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다. 성서 이야기나 신화를 많이 그려 이름을 날렸다. 상징주의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행한 예술 사조이다. 자연주의를 거부하고, 사실주의에서도 벗어났다. 주관을 강조하고, 대상을 상징화하여 표현했다.

모로는 30대 초반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신화적 인물을 통해 인간의 번민과 고통을 형상화했다. 38세 때 그린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로 큰 명성을 얻게 된다. 이 그림은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의 작품을 바탕으로 했다. 오이디푸스왕이 여행 중 스핑크스를 만나는 장면을 묘사했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올바르게 답해야 살 수 있었고, 실패는 죽음을 의미했다. 수수께끼는 “아침에는 네 발, 오후에는 두 발, 밤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인가?”였다. 오이디푸스는 “사람은 어렸을 때 네 발로 기어다니고, 어른이 되어 두 다리로 걷고, 늙어서는 지팡이를 사용한다”며 수수께끼를 맞혔고, 자유를 얻었다는 이야기다.

모로는 8000여 점의 그림을 남기고, 72세에 위암으로 사망했다. 위암은 기원전 1600년경 문서에 기록될 정도로 역사가 깊다. 20세기 초까지 대부분 사망 후 부검을 통해서 위암을 알았다. 위암 진단은 내시경으로 속을 들여다보면서 급속히 발전했다. 가느다란 관을 위 속에 넣는 지금의 위내시경 방식은 1960년대에 등장했다.

냉장고의 보급으로 염장 음식 섭취가 줄면서 전 세계적으로 위암은 줄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한 해 2만명의 환자가 발생한다. 소금과 간장에 삭히고 절인 음식을 여전히 많이 먹는 데다, 위암 발병 주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 감염률이 높은 탓이다. 감염 양성으로 나오면, 제균 치료를 받는 게 좋다.

박찬혁 한양대구리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위암이 위점층에만 있고 림프절 전이가 없는 경우에는 수술이 아닌 내시경 절제술만으로도 완치가 가능하다”며 “그렇게 되려면 증상이 없더라도 최소 2년에 한 번 위내시경 검진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암 문제는 존재하나, 이제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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