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의사는 0.9명의 인력” 복지부 차관 발언이 놓친 ‘진짜’ 현실은…

채윤태 기자 2024. 2. 29. 05: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h:730’을 쳐보세요.

‘여성 의사는 0.9명의 인력.’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최근 의대 증원 정책 근거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해 성차별 논란에 휘말렸다. 여성 의사들은 ‘일하지 않는 여성 의사가 늘어 전체 의사가 부족하다는 의미냐’고 반발했고, 급기야 지난 27일 박 차관의 발언이 성차별적이라며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박 차관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논란을 불러온 박 차관의 발언은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내놓은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인구변화의 노동‧교육‧의료부문 파급효과 전망’ 보고서에 기반해 나온 것이라고 한다. 대체 어떤 근거로 이런 수치가 나온 것인지, 한겨레가 28일 보고서를 꼼꼼히 살펴봤다.

여성 의사를 0.9명의 인력으로 표현한 박 차관의 발언은 지난 20일 의대 증원 정책 근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박 차관은 당시 브리핑에서 “여성 의사 비율 증가, 남성 의사와 여성 의사의 근로시간 차이, 이런 것까지 가정에 다 집어넣어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세밀한 모델을 가지고 추정한 것”이라며,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이 보고서 내용을 언급했다.

박 차관의 말마따나 보고서에는 “여성 의사 인력 1인은 0.9인, 66살 이상 남성 의사 인력 1인은 0.9인으로 치환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보고서는 이런 내용이 2020년 미국에서 나온 논문 ‘미국 의사의 근무시간 추이’의 가정을 적용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참고문헌에는 2002년 나온 논문에선 여성 의사의 노동생산성을 남성 의사 1인의 80%로 간주했다는, 즉 0.8명의 인력으로 볼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보고서는 “여성 의사 인력이 남성 의사 인력에 비해 노동 시장에서 빨리 이탈하고 근로 시간이 적은 경향이 있어 실효 인력 측면에서 전문과목 의사 인력 규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적고 있다.

다만 주목해야 할 건 윗 문장에서도 보다시피, 보고서가 여성 의사들의 노동생산을 낮추는 요인으로 ‘경력 단절’을 지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나아가 여성 의사들이 일찌감치 노동시장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는 건 출산·육아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고도 지적했다. “2017년 말과 2021년 말 여성 활동의사 인력의 연령별 분포 비교 시 30대와 40대 초반 인력의 노동시장 이탈과 재진입이 나타나 출산 및 양육 부담에 따라 여성 의사 인력의 일시적 또는 영구적 노동시장 이탈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한 것이다. 아울러 여성 의사가 노동시장에서 일찍 이탈하는 것이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며 미국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현상”이라고도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 가나가와현의 의료 종사자 확보·양성 계획을 봐도 “여성 의사는 출산이나 육아 때문에 이직이 불가피하거나, 당직·야근이 어려운 상황이 많으므로 이에 대한 지원이 요구된다”는 과제가 제시됐다.

다시 말해, 여성 의사의 노동생산성이 낮게 측정된 것은 여성 의사가 육아·출산 등의 부담으로 업무 시간이 짧고, 이른 나이에 은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이철희 서울대 교수(경제학부)도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 보고서는 ‘원래 여성 의사가 일을 덜 한다’는 것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며 “육아·출산 부담 때문에 여성 의사의 노동시장 이탈이 많다는 게 데이터로 나타났다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여성 의사들의 노동시장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노동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게 포인트”라며 “일·가정 양립이 잘 되어, 여성 의사가 일을 그만두고 나가지 않게 되면 실질적으로 의사 공급이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박 차관이 ‘여성은 0.9명의 인력’이라고 말한 것이 부각돼 논란이 벌어졌지만, 보고서는 일·가정 양립에 남성보다 여성이 더 어려움을 겪는 게 전세계적인 현상이며, 전문직인 의사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P.S. 여기서 생각해볼 포인트 하나! 보고서에 언급됐다시피, 여성을 0.9명의 인력으로 본 건 미국 자료에 기반한 것이다. 한데 2020년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9년 한 해 동안 여성 전공의 4264명 가운데, 출산 휴가를 사용한 전공의는 7.3%(312명)에 불과했다. 또 육아휴직을 사용한 전공의는 남녀 전체 1만1180명 가운데 7명에 불과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2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