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순환경제 시대, 농식품 부산물은 없다
새싹이 움트는 봄이 왔다. 우주의 신비는 순환이고 농업이야말로 자연과 밀접한 가장 오래된 산업이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19세기 산업혁명과 20세기 경제성장, 그리고 인구 증가는 21세기 들어 글로벌 기후 위기를 초래했다. 농업부문은 2021년 UN 식품정상회의에서 각국의 현실에 맞는 지속가능한 푸드시스템(food systems)으로 전환키로 합의했다.
올해 페루에서 개최되는 APEC 농업 장관회의 식량 안보 공동 선언문에는 식품 손실과 폐기물 감축에 대한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환경과 기후 이슈에 관한 한 세대간 절박함에 차이가 있다. 그레타 툰베리 같은 십대가 전면에 나서는 까닭이다. 우리의 미래 세대도 환경 감수성이 높다. 해외 경험도 많아서 농식품 부산물 등을 활용한 사업화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내 제도는 이들을 돕기보다 갈라파고스식 규제와 비용으로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감귤쥬스를 짜고 남은 부산물(감귤박)을 활용해 비건 가죽을 만들려던 업체는 폐기물관리법 위반으로 판매를 중단하였다. 배 석세포를 모아 화장품 업체에 공급하는 기업은 산지 위탁 생산하는 사업장이 바뀔 때마다 새로 재활용 환경성 평가를 받아야 한다.
유럽(EU)은 이미 2012년부터 바이오 이코노미를 표방해 왔다. 핵심은 농산물과 임산물 등 바이오 매스를 활용해 석유 시대 이후를 대비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석유제품을 대체하는 천연물을 개발하거나 바이오 매스 자원을 활용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와 폐기물을 보는 시각에서부터 다르다. 즉, 유럽은 활용할 잔존 가치가 있어 가져다 쓰겠다는 수요가 있으면 계속 자원으로 인정하는 반면 우리는 발생원 중심으로 사업 활동에 필요하지 않으면 폐기물이다. 일명 순차적 활용 원칙(cascading principle)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폐기물 종류(W)와 재활용의 유형(R)을 코드로 분류하고 있다.
재활용은 허용된 리스트(W+R)에만 가능한다. 만약 사업화하려는 결합 유형이 없다면 재활용 환경성 평가를 따로 받아야 한다. 과거 커피박으로 스타벅스가 화분을 제조하거나 삼성이 핸드폰 케이스를 만든 사례가 있긴하다. 하지만, 아이디어로 시작한 스타트업이 감당하기에 비용과 시간은 부담이다.
FAO(세계식품농업기구)에 따르면 농산물의 1/3에 해당하는 13억톤이 소비되지 못하고 버려지며 수확 전 단계를 포함하면 40%에 달한다고 한다.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에도 식품 손실(food loss) 저감이 포함되어 있다.
이 방면은 일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2019년부터 식품손실삭감 추진법을 통해 2000년 대비 2030년까지 식품손실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지자체, 기업, 학계, 소비자 등이 참여하는 국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편, 농식품 순환자원화의 경우는 이미 2001년에 식품순환자원의 재생이용 촉진법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농식품 부산물 중에서 식용으로 가능한 것은 폐기물에서 제외하는 한편, 식품폐기물 중에서 유용한 것은 순환자원으로 인정해 재생 이용을 촉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1년 수산부산물 재활용촉진법이 제정된 바 있다. 이를 근거로 굴껍질 등 패각류 6종에 한해 포괄적 예외가 부여되었다. 패각류 재활용 비즈니스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또한 생선뼈와 내장 등으로 확대하려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 반면 농식품분야는 아직 현장 애로 발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농촌진흥청이 업계 간담회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농식품 부산물 업사이클링 분야는 관련 규제, 대량 원료확보·공급시스템 구축, 수거·전처리 단계 비용, 원료의 품질·안전 문제, 양산 규모의 소재화 기술 개발, 업사이클링 인증제도 마련 등을 호소하고 있었다. 장거리 장애물 달리기의 출발선에 선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농식품 순환자원의 재활용이라는 흐름과 경쟁에서 우리가 뒤질 이유는 없다. 오히려 버려지던 농식품 부산물의 새로운 변신, 자원 손실 최소화와 환경 부담 완화, 농가 신규 소득원 확보 및 청년 창업 생태계 조성 등은 시대적 과제인 동시에 공공의 책무이다.
올해는 농식품부, 환경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부처의 전향적 관심과 유기적 협력을 통해 농식품 부산물 업사이클링 산업의 새로운 활로가 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윤동진 국립농업과학원 농식품자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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