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팔아서라도 가고 싶은 '신의 직장' 국회?
이 사람의 직업을 한 번 맞춰보시겠어요?
"저의 연봉은 1억 5700만 원입니다. 매월 1300만 원 정도 됩니다. 만약 제가 개인적인 중대 범죄로 감옥에 들어가는 일이 생기더라도 급여는 계속 받을 수 있습니다. 제 연봉과는 별도로 매월 직원들의 급여(연 4억9000만 원), 식비(연 770만 원), 차량 유지(월 35만 원) 및 유류비(월 110만 원) 등이 제공됩니다. 여기에 활동비, 홍보비, 우편·문자메시지 발송료, 야근 식대, 업무용 택시비 등을 포함해 연간 1억2000만 원 정도의 지원비도 따로 지급됩니다.
45평 정도 되는 개인 사무실을 가지고 있고, 9명의 직원을 두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저의 업무를 지원하기도 하고, 개인 비서나 운전기사 역할도 합니다. 제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는 이발소, 헬스장, 목욕탕 등의 편의시설이 있는데 횟수에 제한 없이 돈을 내지 않고 이용합니다. 내과, 치과, 한의원 등 건물 내 병원에서는 제 가족까지 무료로 진료받을 수 있습니다.
비행기나 KTX를 탈 일이 있으면 항상 비즈니스석이나 특실을 탑니다. 비용은 내지 않습니다. 1년에 최소 두 번 이상 해외 시찰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꽤 호화로운 편입니다. 공항 측에서 귀빈실과 귀빈 주차장을 제공하고 출입국 절차도 간소화해줍니다. 현지에 가면 자동차, 통역, 숙소 등이 모두 준비돼 있습니다. 국내에는 제 가족들까지도 실비로 사용할 수 있는 리조트급 연수원이 강원도에 있습니다.
저는 횡령이나 사기, 뇌물수수 등의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막말로 다른 사람의 명예를 더럽혔지만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저의 직업은 무엇일까요?"
네, 국민의 대표로서 법을 만들고 정치를 하는 '국회의원'입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를 결정하기 위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공천이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과 새로 진입하려는 사람의 이해가 얽히는 일이다 보니 어느 정도의 소란과 갈등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공천 학살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한 가운데 탈당, 단식, 농성 등이 벌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국회의원이 대체 어떤 직업이길래 다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하고 싶어 하는 걸까요?
대한민국 헌법 제44조 ① 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
② 국회의원이 회기 전에 체포 또는 구금된 때에는 현행범인이 아닌 한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된다.
제45조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국회의원에게 주어지는 두 가지의 권리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불체포 특권(제44조)과 면책 특권(제45조)입니다. 국회의원이 부당한 압력을 받지 않고 소신 있는 의정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호한다는 취지입니다. 역사도 오래됐고 수준은 각기 다르지만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제도입니다.
지난해 두 차례에 걸친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계기로 국회의원 특권의 존폐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만, 도입 취지와 남용의 부작용을 함께 고려하는 긴 호흡의 숙의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악마는 디테일 안에 있다는 점입니다. 국회의원이 누리는 크고 작은 혜택이 180여 가지가 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들어가는 세금이 과도하게 많습니다. 2022년 우리나라 1인당 평균 소득(1인당 국민총소득)은 4250만 원 정도 되는데요, 국회의원의 세비는 이보다 약 3.7배나 높습니다. 또 이 중 30% 정도에 해당하는 입법활동비와 특수활동비 등은 비과세로 분류되어 같은 소득 규모를 가진 국민보다 세금을 훨씬 적게 냅니다. ‘비과세 특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 세비에 9명의 보좌 인력의 인건비와 수당 등까지 합하면 한 의원실에 지원되는 세금이 한 해 무려 7억 원에 달하는 상황입니다. 더구나 이 비용은 고스란히 의정활동에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 지역구 관리를 포함한 개인 재선 준비 등 기타 활동에 상당 부분 쓰입니다.
이 같은 상황이다 보니 정치개혁의 단골 메뉴가 의원정수 축소라는 게 이해가 갑니다. 선거철이면 국회의원 세비 삭감도 늘 등장하는 이슈죠. 물론 한 번도 실현된 적은 없습니다. 저는 평소 국회의원의 수를 줄이기보다 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막대한 경제적 지원이 정당한지는 정색하고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국회의원 세비 지급의 근거는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입니다. 제1조에서는 이 법의 목적을 "국민에게 봉사하는 국회의원의 직무 활동과 품위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실비를 보전하기 위한 수당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한 사람에게 수억 원의 세금이 들어가는 현실을 떠올려보면 '최소한의 실비'라는 대목이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게다가 국회의원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직업임을 법조문에서 확인하니 새삼스럽네요.
세비에 관한 결정이 이처럼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다 보니 법을 만드는 일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자기 월급을 알아서 올리는 ‘셀프인상’이 되풀이됩니다. 올해 연봉은 작년보다 1.7% 올랐는데요, 민생법안이니 선거제도이니 하는 중대사안들을 제쳐둔 여야가 자신들의 연봉 인상에는 주저 없이 손을 맞잡았습니다. 1인당 GDP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 국회의원의 급여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데, 이마저도 스스로 인상하는 시스템이라니 어이가 없습니다.
선거마다 등장하는 정치개혁이 매번 공염불로 흐지부지되는 건 개혁을 당사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권리를 정치적 책임, 투명성, 민주적 가치에 근거해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조정하기를 바라기에는 우리 정치인들의 수준이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국민의 대표라는 자리에 주어지는 막대한 권력 위에 왜 필요한지 알 수 없는 수많은 특권과 혜택까지 더해지니 국회는 그야말로 '신의 직장'이고, 의원직은 영혼을 팔아서라도 갖고 싶은 직업이 되어버렸습니다.
"저의 연봉은 1억 원 정도입니다. 6만 달러인 1인당 GDP를 기준으로 중상위권 수준입니다. 택시비, 차량 유지비, 야근 식대 등 별도로 지원되는 경비는 없습니다. 출퇴근에는 주로 자전거나 버스를 이용합니다. 업무상 비행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혼자 줄을 서서 시민들과 함께 일반석에 탑승합니다. 제 사무실은 3~4평 정도의 규모이고, 저를 개인적으로 보좌하는 직원은 따로 없습니다. 전화를 받거나 손님에게 차를 내어주는 일도 스스로 합니다. 보통 오전 7~8시에 출근해서 오후 9~10시에 퇴근합니다. 업무 일정이 빡빡한데다 일이 많고 힘들어 다음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동료들이 제법 됩니다. 저는 스웨덴의 국회의원입니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의 인터뷰를 보다가 알게 된 사실입니다. 정치 문화나 제도, 관행 등 국가 간 여러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게 정답이다'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180여 나라 중 2023년 스웨덴의 민주주의 지수가 세계 4위, 부패인식 지수가 세계 6위라는 성적표로 증명되는, 한참 앞서있는 그들의 정치가 부러운 건 사실입니다.
우리도 할 수 있을까요? 국회의원의 수를 줄이자는 논의에 앞서 그들의 권력 과시용 특권을 없애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국회가 '셀프 개혁'에 나설 거라고 곧이곧대로 믿지는 맙시다. 특권을 내려놓고 민생을 돌보는 일에, 국민에게 봉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정치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우리 유권자들입니다.
다행히도 오는 4월에는 선거가 있고 우리에게는 표가 있으니까요. 각자의 지역에서 특권 축소·폐지 약속도 받아내고, 당선된 이후 실천 여부도 감시하고, 또 그 결과에 따라 다음 선거에서 표로 심판하고. 이번 선거가 그렇게 좋은 정치로 향하는 물꼬를 트는 작은 계기라도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박해성 티브릿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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