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이 외친 ‘운동권 청산’, 왜 이재명이 앞장섰나

박상기 기자 2024. 2. 29.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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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인사이드] 黨의 주류 교체가 목적인가
헬스장 찾은 이재명, 러닝머신 화면에 임종석이…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8일 서울 홍제동의 한 헬스장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러닝머신 이용법을 안내받고 있다. 기구 모니터에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공천 배제 결정에 반발하는 기자회견 생중계 장면이 나오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에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86 운동권’ 대표 주자들이 연이어 공천 배제되거나 탈락 수순을 밟고 있다. 정치권에선 “운동권 청산 슬로건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꺼냈는데, 가장 앞장서서 하는 건 이재명 대표 같다”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 안에선 “이 대표의 진짜 목표는 운동권과 친문이 중심인 당 주류 교체 아니냐”고 하는 인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민주당 주류인 ‘전대협’ 출신 이인영 의원(1기 의장), 임 전 실장(3기 의장), 송갑석 의원(4기 의장)은 줄줄이 탈락하거나 탈락 위기에 몰려있다. 또 다른 주류 김근태(GT)계에선 인재근 의원이 불출마, 기동민 의원은 탈락 직전이다. 노동운동 출신인 4선 홍영표 의원도 ‘하위 10%’를 받아 코너에 몰렸다. ‘교체 대상’으로 지목된 현역 대부분이 이른바 ‘정통 운동권 코스’를 밟은 인사들이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2024년 2월 28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광장에서 송갑석 의원, 홍영표 의원, 윤영찬 의원과 함께 지지자들과 만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많은 선거를 치렀지만 이렇게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면서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 공천은 처음 봤다”며 “이번 기회에 당을 확 갈아엎겠다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 후보를 했고 지금은 당대표다. 그러나 친명계는 “친명은 당 주류가 아니다”라고 해왔다. 여전히 민주당 주류는 운동권이고 친문이라는 얘기다. 친명계 핵심 의원은 “다들 겉으로 친명이라 하지만 진짜 친명은 한 손에 꼽기도 어렵다”며 “이 대표가 궁지에 몰리면 바로 다 돌아설 사람들밖에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이 대표가 ‘체포동의안 가결’ 같은 불상사를 또 일으킬 수 있는 인사들에 대한 ‘솎아내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2023년 9월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0회 국회(정기회) 제8차 본회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총투표소 295표, 가 149표, 부 136표, 기권 6표, 무효 4표로 가결되고 있다. /뉴스1

민주당 주류 교체는 이 대표의 오랜 숙원이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1964년생인 이 대표는 86세대에 속하지만 동년배 86운동권과는 정치 궤적이 전혀 다르다. 임 전 실장 등은 20대에 전국적 인지도를 얻어 30대에 ‘스타 정치인’으로 국회에 입성해 일찌감치 중앙 정치를 시작했다. 이들이 민주화 운동을 할 때, 이 대표는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입학해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에서 운동권 출신들을 만나 뒤늦게 ‘의식화’ 학습을 했다. 86들이 국회에서 각광받을 때 이 대표는 성남 시민 사회에서 활동하는 원외 인사였다. 민주당 한 인사는 “이 대표가 당시 중앙 정치권에 진출한 86들한테 그렇게 깍듯했다”며 “군대로 치면 86들은 엘리트 육사 출신이고 이 대표는 사병 출신 비주류 장교 정도였던 셈”이라고 했다. 이 대표 주변의 핵심들 역시 운동권 변방 출신이거나 인터넷으로 진보를 배운 인사들이 적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대표는 2007년 대선 때 정동영 캠프에서 활동했지만 당시에도 주류 운동권 인사들은 주로 이해찬, 손학규 캠프에 속했다. 후보 간 경쟁이 감정 싸움으로 치달으며 대선은 대패했다. 이 대표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되고 나서부터다. 그러나 이후에도 2017년 대선 경선 때 문재인 후보 측과 격렬한 공방을 주고받으며 줄곧 친문 등 민주당 주류의 배척 대상이었다. 민주당의 한 전직 의원은 “이 대표가 민주당 간판이 된 건 불과 2년 정도밖에 안 됐다”며 “늘 비주류에 머물렀던 일종의 ‘변방 콤플렉스’가 이번 공천에도 반영됐다고 본다”고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두고 친명계에서는 “이재명은 과거의 노무현 같은 면이 있다”는 말도 한다. 영남 출신인 노 전 대통령도 민주당 안에서 동교동계나 GT계 등에 밀려 비주류에 머물다가 2002년 대선 경선에서 깜짝 1위를 차지한 게 비슷하다는 것이다. 대선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동교동계와 갈등을 빚었는데 지금 공천 갈등이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친명 측 주장이다. 그러나 친노 출신의 한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칙과 명분을 중요하게 여겼다”며 “대선에서 진 뒤에 국회의원이 되고 당대표 선거에 나가고,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번복하는 이 대표와 비교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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