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가짜뉴스 시대의 미디어 비평
2016년 옥스퍼드 사전에는 우리가 ‘가짜뉴스(Fake News)’라고 부르는 것의 상징적 용어이기도 한 ‘탈진실(post-truth)’이 국지적 현상이 아닌 이미 세계적 현상이 됐다고 진단했다. 한마디로 ‘진실의 실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속도와 정보시대의 특성이 되어버렸다. 탈진실 시대의 가장 적나라한 민낯으로 나타나는 현상의 하나가 가짜뉴스이다.
한국의 인터넷 환경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 서비스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가짜뉴스 또한 최고 수준의 새로운 사회 문제가 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내놓은 ‘일반 시민이 생각하는 뉴스와 가짜뉴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 시민은 좁은 의미의 가짜뉴스, 즉 페이크 뉴스뿐만 아니라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 서비스를 통해 유통되는 일명 찌라시, 언론사가 생산한 품질 낮은 콘텐츠(낚시성 기사, 어뷰징 기사, 광고성 기사 등)도 가짜뉴스로 인식하고 있다. 또 언론이 충분한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아 만들어지는 오보까지도 대부분의 시민은 가짜뉴스로 간주한다. 사회적 양식을 갖춘 시민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돈벌이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저급한 뉴스 콘텐츠를 모두 가짜뉴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가짜뉴스의 범람은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는 토대가 되며, 공공매체에 대한 신뢰성을 상실하게 한다는 점에서 근원적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필요성이 제기된다.
가짜뉴스에 대응하는 우리 사회의 논의 방향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첫째는 국가가 공적으로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이들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가장 일반적이지만, 가짜뉴스의 범위와 정의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까지 나아가기엔 어려움이 있다. 실제로 지난 해 방송통신위원회가 가짜뉴스 근절 방안을 발표하긴 했지만 논란을 명쾌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는 SNS, 메신저와 같이 가짜뉴스가 주로 유통되는 온라인 공간인 플랫폼 기업에 대한 자율적 규제다. 최근 플랫폼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무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사기업이라는 점에서 이들에게 법적 책무를 묻기까지는 한계가 있다. 세 번째는 미디어 이용자 스스로가 정보의 품질을 평가하고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기르는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방향성이 사회적 차원에서의 노력이라면 마지막 세 번째는 사회구성원의 개별적 매체비평의 안목을 키우는 데서만 가능한 방도이다.
적잖은 시민이 방송이나 신문과 같은 미디어를 통해 얻는 지식을 절대적 지식으로 간주하는 경향성을 여전히 띠고 있다. 매체가 전달하는 모든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는데 길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매체 자체의 속성에서 유래하는 부분도 있지만 매체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교육과 훈련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 크다. 수없이 쏟아지는 가짜뉴스를 제대로 분별할 수 있는 비평적 감식안이 하루아침에 생길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뉴스가 뉴스 제공자와 매체의 성격에 따라 편집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매체 수용자의 비평적 문해력을 고양시키는 문제는 더욱 시급한 과제다. 또한 가짜뉴스의 대척점에 있는 사실보도는 어떤 사회적 함의를 띠는지도 공동체 내에서 활발하게 공론화되어야 하는 중요사안이다.
진실은 늘 호도되고 왜곡되기 일쑤이지만, 공동체는 그렇게 생산되는 공동의 정보와 지식을 소비하면서 사회적 어젠다를 구성해간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 나은 공의와 신뢰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진실 지향의 시대 가치를 실현하려면 미디어 비평 교육이 절실하다. 단순히 진짜냐, 가짜냐의 변별보다는 그것이 사회에 드리우는 그늘을 살피고 매체를 통해 사회를 비평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문해력의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 명칭이 언론 비평이 되었든 매체 비평이 되었든 가짜뉴스가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사회에 대응하는 방식을 만들고, 이를 초극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가짜뉴스도, 진실도 모호해진 세상에서 진실에 대한 맹목적인 추앙보다는 가짜와 진짜에 대한 변증법적 사유와 그것에 대한 비평적 식견만이 우리 사회를 가짜뉴스의 폐해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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