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혁의 극적인 순간] 오늘 하루는 조명을 받아도 괜찮아요
리허설 때 양가 어머님 “세상 살면서 이런 조명 받아본 적 없어요”
자식 잘되라며 편지 읽은 두 분… 세상서 가장 아름다운 조명이었다
후배 배우가 결혼식을 한다며 찾아왔다. 사회를 봐달라고 했다. 이왕이면 제대로 도와주고 싶어서 결혼식 대본까지 맡았다. 예식장에 기본으로 정리된 대본이 있었지만 공연을 하는 배우라서 공연처럼 진행하고 싶었다. 결혼식 몇 달 전부터 정기적으로 만나서 대본을 썼다. 신랑 신부 모두 공통된 소원이 있었다. 양가 부모님께서 많은 고생을 하셨기에 자신들보다 부모님들이 더 빛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소원이었다.
몇 가지 좋은 아이디어를 모았다. 신랑 신부가 처음에 나란히 손을 잡고 입장을 한다. 그 후에 양가 부모님들도 나란히 손을 잡고 신랑신부처럼 행진으로 입장을 한다. 두 어머님께서 함께 단상으로 올라와 편지를 읽는다. 신랑 어머님은 신부에게, 신부 어머님은 신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본이 잘 정리되었고 결혼식 당일에 리허설을 했다. 리허설이 순탄하게 잘 진행되었고, 어머님들께서 등장하는 순서가 되었다. 두 분을 모시러 갔더니 놀랍게도 서로 손을 꼬옥 잡고 떨고 계셨다. 가까스로 일어나 몇 걸음 걸어오시더니, 청심환을 드시겠다며 어디론가 달려가셨다.
몇 분 후 다시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단상 위에 조명이 켜졌다. 두 분이 조명 안으로 들어와 편지를 읽으면 된다고 말씀드렸다. 두 분은 그 조명 바깥에서 한동안 빛을 구경하고 계셨다. 어색한 걸음으로 조명 안으로 들어오더니 한동안 마른 침만 삼키다가 천천히 편지를 꺼내셨다. 두 분 모두 편지를 꺼내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시선을 어디로 둬야 할지 몰라서 계속 고개만 숙이고 계셨다. 나는 분위기를 풀어드리려고, 오늘 하루만큼은 배우라고 생각하고 멋지게 하시면 된다고 말했다. 두 어머님 중 한 분께서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나직하게 한 말씀을 하셨다. “미안해요. 살면서 한 번도 이런 빛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 짧은 한마디에 나는 말문을 잃었다. 마음속에서 깊은 울컥함이 밀려왔다. 나는 공연을 하는 사람이었기에 무대의 세상에 익숙했다. 무대 위에서는 누군가가 조명을 받고, 많은 이가 누군가를 주목해주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집중해준다. 하지만 두 어머님께는 그 밝은 빛이, 수많은 사람들이 두 분을 주목하고, 두 분의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이 처음이었을 수도 있었다. 이 시간을 두 분의 인생에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로 만들어드리고 싶었다. “어머님들, 긴장하셔도 괜찮습니다. 신랑 신부가 두 분의 손을 잡고 함께 단상으로 올라갈게요. 조명은 처음부터 켜지 않을게요. 두 분이 편한 자리에 서시면, 그때 조명을 켤게요. 조명 안에서는 꼭 어딘가를 보려고 애쓰시지 않아도 돼요. 조명이 들어오는 순간, 사람들은 모두 그곳을 바라볼 거예요. 두 분께서 아무 말씀도 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사람들은 두 분을 계속 바라보고 있을 거예요. 오늘 하루만큼은 조명을 받아도 괜찮아요.”
결혼식이 시작되고, 마침내 두 분의 순서가 왔다. 놀랍게도 두 분은 신랑 신부의 도움이 필요 없었다. 두 분이 함께 손을 꼭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발맞춰서 행진하듯 단상 위로 올라오셨다. 조명이 켜졌다. 두 분은 그 밝은 빛에 자신들의 얼굴을 밝히지 않았다. 가지고 온 편지를 밝게 비췄다. 밝게 비춰진 편지의 문장을 한 줄 한 줄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인생에서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밝은 조명 안에서도, 두 분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보내는 이야기만을 밝히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목이었다. 하객들의 박수가 그 어느 순간보다 크고 길게 흘러나왔다. 그 순간, 두 어머님도 박수를 치셨다. 자신들을 향한 박수가 아니었다. 신랑 어머님은 신부 어머님을 향해서, 신부 어머님은 신랑 어머님을 향해서, 서로가 서로를 큰 박수 소리로 빛내주고 있었다. 인공의 조명을 넘어서는, 사람이 사람에게 보낼 수 있는 가장 눈부신 조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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