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6] 베개 밑에 넣어두고 싶은 것

정수윤 작가·번역가 2024. 2. 2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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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을 꿈속에

고사리 고이 엮어

베는 풀베개

餅[もち]を夢[ゆめ]に折結[おりむす]ぶしだの草枕[くさまくら]

가난한 방랑 시인은 꿈에서도 떡을 본다. 저 희고 쫀득하고 몰캉한 것을 딱 한입만 먹어보고 싶구나. 베개 밑에 떡이 있다고 상상하며 잠이 들면 꿈에서라도 떡을 먹을 수 있을 터. 옛날 에도시대 사람들은 해가 바뀌면 베개 밑에 금은보화가 가득 실린 보물선 그림을 넣어두고 돈 많이 벌 꿈을 꾸게 해달라 빌며 잠이 들었다는데, 풀고사리를 엮어 베개로 쓰는 청빈한 시인에게는 더도 덜도 말고 떡 한 점이 그립다. 길 위의 예술가, 바쇼(芭蕉, 1644~1694)의 하이쿠다. 위대한 시인의 마음도 배고플 땐 우리와 다르지 않다.

바쇼가 이 시를 쓴 건 1681년 정월이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화려한 니혼바시(오늘날 긴자)에 살다가 어떤 연유에서인지 스미다강 건너 적막한 후카가와로 이사와 홀로 처음 맞이한 새해. 떡도 없고 돈도 없고 사람도 없다. 황량한 암자에는 뱃사공이 물결 가르는 소리만 들리고, 위장은 추위에 얼어붙을 듯하다. 풀베개는 여행길에 노숙하며 풀로 엮은 베개, 혹은 여행자의 풋잠을 이르는데, 여기서는 후카가와 암자에서 외로이 잠을 청하는 자신이 양치식물 자란 들판에 몸을 누인 나그네와 같다고 보았다. 바쇼는 이곳에서 쓸쓸하고 한적한 정취를 시적 이념으로 승화시킨 ‘와비(侘び)’ 미의식을 정립했다.

내가 도쿄에 살 때는 베개 밑에 매울 신(辛) 자를 적어 놓고 싶을 정도로 매운맛이 그리웠다. 일본인의 손맛에서는 나올 수 없는 한국인의 통렬한 맛이 있다. 그 맛이 주기적으로 위장에 들어오지 않으면 뭘 먹어도 힘이 안 나 골골댔고 그럴 때면 야마노테센(서울 지하철 2호선과 비슷한 연두색 순환선)에 몸을 싣고 신오쿠보역으로 달려갔다. 신오쿠보는 한국 식당과 마트가 밀집한 거리인데 호떡 파는 노점을 지나 단골 식당에서 맵기 5단계 불닭구이에 새우젓 향 은은한 계란찜을 먹으며 외친다. “그래, 이 맛이야!” 요즘 신오쿠보는 제대로 걸을 수도 없을 만큼 사람이 많다고 한다. 특히 젊은 층이 크게 늘었다고. 다들 맵기 능력치가 올라갔을까.

얼마 전에는 일본 지인이 “일본에 오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게요. 뭘 좋아하세요?” 하고 물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일본 음식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그것은. “낫토요.” “네?” 지인이 당황하여 반문했지만, 나는 정말로 낫토가 먹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신기하다. 그렇게 매운 것을 좋아한 나였는데, 하얀 쌀밥에 겨자소스 살짝 얹어 젓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미끈하고 담백한 실을 자아내 먹는 낫토가 지금은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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