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약점을 뒤집어 보면 개성!
작가의 작업실에서 허락을 구해 조각이나 그림을 만져보는 경우가 있다. 눈으로 보거나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는 재료의 질감을 상상하기 어려울 때다. 독특한 재료나 기법을 쓴 작가들은 먼저 만져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캔버스 위에 밀랍을 매끈하게 덮은 작품은 만져보면 섬세한 굴곡과 촉촉함이 느껴졌고, 폭신해 보이는 모양의 조각은 의외로 딱딱했다. 작품을 이해하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
작품을 만지지 말라고 주의를 주던 전시장에서도 이제 적극적으로 만지라고 권유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반가사유상의 실제 크기 모형과 디지털 촉각 패드 등을 이용한 교육 프로그램을 열었다.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은 시각 경험을 상상하고, 보이는 사람은 촉각에 집중해 본다. 다양한 감각을 쓰며 예술 감상의 폭도 넓어진다. 과연 어떤 것이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한 가지 능력이 우위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편견이다.
그 편견을 깨는 작가가 있다. 10년 전 시력을 잃은 멕시코 예술가 마누엘 솔라노는 캔버스 위에 못과 핀, 줄을 설치하고, 그것을 따라서 손끝으로 그림을 그린다. 주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그려내는데, 오래전에 본 것들이 숙성되어 독특한 장면으로 나타난다. 캔버스에 남은 못과 핀의 자국 또한 대체할 수 없는 개성이다. 시력을 잃고 내면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기 때문에 찾아낸 자기만의 세계다.
한 가지 기준으로만 판단하면 우리는 누구나 어떤 부분에서 약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시선을 바꾸면 약점은 개성이나 강점이 된다. 책 ‘마이너리티 디자인’의 저자 사와다 도모히로는 아들에게 장애가 생긴 뒤 세상을 달리 바라본다. 그는 지체장애인의 ‘보는 기능’과 시각장애인의 ‘걷는 기능’을 공유하는 시스템, 노인의 독특한 저음을 살려 EDM과 접목한 할아버지 아이돌 그룹 등을 만들며 약점을 가능성으로 바꾼다.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리고, 시선의 방향을 바꾸면 힘의 위치가 바뀐다. 우리의 약점은 ‘발견되지 않은 신대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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