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택의 그림 에세이 붓으로 그리는 이상향] 70. 한국의 마애불과 어머니

이광택 2024. 2. 2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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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도 뻐기지도 않는 한국미술의 마음씨
중국·일본 대형 규모 마애불 다수
크기·공력으로 사람들 시선 압도
AI가 만든 인조인간 느낌에 불편
한국 마애불 간소미·온화함 내포
한국미술 인위적인 자연 변형 기피
오만함 없이 단정함에 마음도 평안
▲ 이광택 작, 화가가 꿈꾸는 공부방 72.3-48, 2024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불상이 다시 있을까?

경상북도 문경의 관음리에 있는 마애불 반가사유상. 퍽 오래전, 어느 여행책에서였다. 이 마애불(자연의 암벽에 부조나 선각 등으로 불상을 나타낸 것)을 보고는 그냥 한눈에 반해버렸다.

부처님을 앞에 두고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 우리 속담에 ‘예쁜 아내를 얻으면 처가의 말뚝에도 절을 한다’는 게 있다. 당시 나의 심경이 딱 그러한 것이었다. 비록 책 속의 사진이었으나 체면 다 던져버리고 그 앞에서 넙죽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오랜 세월의 풍화에 시달려 마멸이 심한 것은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스럽고 아리땁게 부처님을 조각한 먼 옛날 석공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기우는 햇살에 드러난 저 통통한 얼굴의 넉넉함과 부처님의 자애로운 미소를 보라. 오른손으로 턱을 살짝 받치고 왼손을 무릎 위에 내려놓은 저 음전하고 우아한 자세를 보라. 어찌 사랑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차분하면서도 화사하고 화사한 듯하면서도 상냥하고 고운 이 자태에서 세상의 크고 작은 시름이 무슨 힘을 발휘하겠는가. 이리, 승냥이처럼 흉포한 마음을 가진 그 어떠한 무뢰한도 이 자씨보살(慈氏菩薩) 앞에 서면 저도 모르게 어린아이처럼 착한 마음이 일고 세상을 누긋하게 바라볼 것이 분명하다.

사실 인도를 비롯해 중국이나 일본에는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조각 기술 또한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마애불들이 수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야말로 신품의 경지에서나 나올 수 있다고 그들은 자랑스러워한다. 그렇다. 보는 사람의 시선을 압도하는 그 크기와 들인 공력을 가늠하다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한국 사람이어서일까. 솔직히 말해 위에 열거한 나라의 마애불들은 이상하게 정이 가지 않는다. 뭐라고 해야 할까? 실제 인간보다 신체 비례에서 워낙 차이가 나서인지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다. 살아 있는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따뜻한 피가 돌 것 같지 않고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인조인간 같다. 구중궁궐의 엄숙한 비례미와 장대함은 있을지언정 여염의 서민들에게서 느껴지는 생활미의 순진함이 없다고 비유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어쨌든 문화 전반에 기교가 넘치면 자만이 깃들고 오만해져 겉치레가 는다. 호들갑스럽고 번잡한 허세만이 기름기처럼 문화에 밴다. 이것은 진리이다. 음식으로 치면 장식은 요란한데 정작 제일 중요한 맛이 없는 것과 같다.

바로 여기에서 한국미술의 특질이 나온다. 한국의 미술은 화려하지 않고 뻐기지 않는다. 언제나 담담하다. 욕심이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의 재료, 있으면 있는 대로의 솜씨로 꾸밈없이 드러내 놓는다. 있는 대로의 자연을 인위적으로 크게 변형하는 것을 극히 기피했다. 그래서 다채롭지도, 수다스럽지도 않은 덤덤한 매무새가 우리 한국미술의 마음씨인 것이다.

이 한 점의 마애불만 예로 들어도 충분하다. 한국의 간소미와 온화한 성정이 잘 담겨 있지 않은가. 비약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마애불을 보면 한국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배꽃처럼 해맑고 자세 단정한 어머니가. 햇빛 속에 앉아 있을 때 비 갠 가을 아침의 한 포기 깨끗한 화초 같은 어머니가. 그리고 돌아가신 내 어머니가! 재산은 넉넉하지 않아 아주 조금은 슬퍼 보이지만, 오만은 단 한 점도 깃들어 있지 않아서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이 마애불을 그림에 그려보았다.

그윽한 색깔의 단풍이 소문도 없이 묽게 들어 있다. 조촐한 마애불과 잘 어울린다. 잘 익은 늦가을의 저녁, 머지않아 뒷산 위로 내가 좋아하는 반달이 뜨겠다. 그 달빛과 어두움이 세상의 소란스러움을 삭여줄 것이다. 맑은 바람도 솔솔 불어오는데 아내가 산의 에움길을 돌아 걸어온다. 얼굴을 마주하면 유난히 뼛속이 환하게 밝아질 것 같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는 강아지의 잠처럼 주위가 적막하다. 내가 마음속에 그리는 공부방 정경이다.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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