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영]“의사 너무 많으면 의료 질 떨어진다”던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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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나 사회적 합의 없이 결론적인 숫자만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의료개혁을 위해 의대 증원 '2000명'을 깜짝 발표한 정부 들으라고 한 말 같지만 아니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근거를 제공한 연구자 2명을 포함해 모두 10명의 전문가들이 3시간 넘게 토론한 결과 '10년 후엔 의사 1만 명이 부족하다'는 전망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포럼장이나 이후 인터뷰에서 적정 증원 규모로 제시한 숫자는 2000명과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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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정원 줄여야 할 때 대비해 신중히 늘려야
의료개혁을 위해 의대 증원 ‘2000명’을 깜짝 발표한 정부 들으라고 한 말 같지만 아니다. 대통령이 지난해 숫자 빠진 맹탕 연금개혁안을 제시하며 내놓은 해명이다. 연금개혁은 정부 산하 재정추계위원회를 구성해 ‘과학적 근거를 축적했다’면서도 숫자를 제시하지 못했는데, 의대 증원은 세 개의 연구자료를 근거로 ‘2000명’이라는 예상 밖 숫자를 과감하게 내놓았다. 연금이든 의료든 뭐라도 개혁하겠다니 다행이나 진행 과정은 미덥지 못하다.
우선 2000명이라는 숫자가 과학적 근거 없이 갑자기 나왔다. 정부는 지난해 6월 ‘의사 인력 수급체계 전문가 포럼’을 개최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근거를 제공한 연구자 2명을 포함해 모두 10명의 전문가들이 3시간 넘게 토론한 결과 ‘10년 후엔 의사 1만 명이 부족하다’는 전망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포럼장이나 이후 인터뷰에서 적정 증원 규모로 제시한 숫자는 2000명과 거리가 멀었다. 최대 4500명을 늘리자는 한 명을 빼면 4명은 늘리면 안 된다, 5명은 350∼1000명 늘리되 5∼10년마다 추계를 다시 하자고 했다. 인구와 의료 이용량의 변화나 의료기술 발전 등으로 전망치에 오차가 생길 수 있으니 의사 수를 다시 줄여야 할 때를 대비해 점진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정부도 2006년 지금의 의대 정원인 3058명으로 입학정원을 10% 줄일 때는 ‘의사가 과도하게 배출돼 의학 교육이 부실해지고 과거 사회주의 체제 동유럽 국가들처럼 의료 수준이 저하된다’고 했었다. 왜 줄일 때 했던 말과 늘릴 때 하는 말이 다르냐고 따지려는 게 아니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우니 신중히 하자는 것이다.
의사가 늘어나면 국민 부담이 늘고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 난다는 경고도 흘려듣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공급이 늘면 가격이 떨어지는데 의료 시장에선 전문가인 의사가 환자의 의사결정을 대신할 수 있어 이것저것 불필요한 검사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과잉 진료를 하지 않더라도 의사 혼자 2억 원 벌던 시장에 한 명이 추가되면 의사 1인당 수입은 절반이 아닌 60∼70%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정부는 “선진국과 우리나라 연구를 통해 의사 수와 의료비는 상관관계가 없음이 증명됐다”고 하는데 과거 정원을 줄일 땐 “줄이지 않으면 의료비가 상승하고 건보 재정 부담만 커질 우려가 있다”고 다른 말을 했었다.
의사 증원 변수를 제외해도 고령화로 의료비는 폭증하고 저출산으로 수입은 감소해 건강보험 재정은 2년 후엔 적자로 돌아선다. 국회예산정책처 전망으로는 4년 후엔 누적 적립금도 바닥을 드러낸다. 정부는 필수의료 살리기에 5년간 10조 원 이상 투자하겠다고 하는데 전문가들은 필수의료 수가를 원가의 100%로 맞춰주는 데만 그 이상의 재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고령자들 연금 부담에 허덕일 미래 세대가 그들의 병원비 부담까지 떠안게 된다면 세계적인 성공 모델인 건강보험 제도가 유지될 수 있을까.
의료계와의 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에 대통령실은 “대한의사협회가 대표성을 갖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동안 의사협회와 공식 소통 채널을 구성해 28차례 의대 증원을 논의했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대표성을 부인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의대 정원을 감축할 때는 대통령 직속 의료제도발전특별위원회를 구성해 6개월간 치열한 논의를 거쳤다. 지금은 정원을 늘리는 훨씬 어려운 일을 하면서 신뢰할 만한 거버넌스도 없었음을 자인한 셈이다. 그렇게 나온 결론적인 숫자 ‘2000명’을 고집하느라 너무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것 아닌가.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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